톨스토이,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p.61
우리의 삶은
매 순간 일어나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변화들로 이루어진다.
이런 변화가 시작되던 때 우리는 어린아이였다.
그리고 변화가 끝날 때 죽음이 찾아온다.
죽음은 우리 영혼이 살아가는 틀이 바뀌는 것이다.
틀을 내용과 혼동하지 말라.
출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인생은
그다음에 오게 될 더 큰 삶을 모르는 채
지금이 전부라고 착각하는 한바탕 꿈이지는 않을까
[내가 무대에 서야 할 이유]
사람들은 그리고 책에서는 말했다.
나는 내 인생의 주인이라고.
하지만 주인공으로 오롯이 서 있는 공간, 시간은 살면서 거의(?) 없었다. 사회생활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출연진이 등장하는 그곳에서 나는 어쩌다 주연이 될 때도 있지만 대개는 조연이거나 어떤 곳에서는 대사 한 마디 없는 엑스트라였다. '나'라는 개인보다는 '전체'라는 이름이 더 중요한 곳에서 주인공이 될 기회는 거의 없었다.
처음 피아노를 배우고, 3개월 만에 학원에서 열리는 음악회에 참여했다. 3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처음이었다. 내가 성인이 되고, 온전히 주인공이 되어서 무대에 서 있다는 것이. 그때는 사람들 앞이라 떨리고, 틀릴까 봐 긴장하느라 그 순간을 즐기지 못했다. 끝나고 나니 뿌듯하기도 하고, 너무 허무하기도 했던 복합적인 감정이 밀려왔다. 그럼에도 내가 온전히 주인공이 되는 경험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주변에 땡땡님이 지금 배우고 있는 악기로 언젠가 '버스킹'하는 꿈을 이야기했다. 나는 그 꿈이 언젠가가 아닌 '곧', '얼마 후'에 이루어지길 바란다. 부캐라는 거창한 단어가 아니어도 오롯이 주인공이 되는 그 순간과 경험을 느껴보길 바란다. 3분의 경험도 강렬한데, 30분이라면 그 마음은 어떨까?
오롯이 나로서, 주인공으로서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 그 무대가 길거리 한복판일지라도 나는 땡땡 님이 주인공이 되길 바란다. 버스킹의 매력, 공연자는 그 공간과 시간의 주인공이니까.
나비의 날갯짓처럼 미미한 시작일지라도 작은 변화의 바람이 살랑거리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