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명숙,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인생은 'B' birth와 'D'death 사이의 'C' choice다.
- 장 폴 사르트르 -
(전자책 18%)
이탈리아에서 사는 삶이 어떤지 물으니 철학자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들에 신경 쓰며 고통받고 싶지 않아요.
내가 해결할 수 없으니까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을 잘 골라서 최선을 다해 살고 싶어요.
사랑하는 가족과 저녁 늦게라도 함께할 수 있는 지금 이 삶이 소중해요.
나이지리아 친구와 필리핀 친구는 내가 예상하지 못한 인생의 큰 교훈을 주었다.
애초에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불평하지 않는 것. 가장 단순하고 평범하지만 가장 비범한 진리였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걸 심사숙고해 선택하여 그 택한 일에 후회하지 말자.
나의 행복을 스스로 지켜나가자.
회사 사람들이 말한 나에 대한 이야기, 곧 있을 인사이동에 관련한 예상과 소문은 틀린 것으로 판명되었다.
한 달 동안 간절히 바랬던 어떤 일도 나의 마음, 기대와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요 근래 마음은 무겁고, 소심하고 또 슬펐다. 사람들이 말하는 이야기는 신경은 쓰여도 그다지 마음을 아프게 하지는 않았다. 내가 아팠던 건, 간절히 바랬던 일이 틀렸다는 직감이었다. 그때부터 불안해졌다. 그 후에 직감이 확인되던 순간부터 마음 한 편이 내려앉았다. 기대도 무너졌다.
바람과 착각, 그리고 일련의 시간이 빚어낸 소설 속에 내가 주인공으로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설은 시작도 하기 전에 종료되었다.
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걸까? 매일 또는 2~3일에 한 번씩 글을 올려도 고정값처럼 같은 숫자였던 구독자님이 오히려 글을 쓰지 않았던 시기에 늘어났다. 내가 해왔던 일과 결과는 이렇게 상관관계가 없는 것일까?
돌아보면 내가 겪은 일들은 예측불허, 우당탕 코메디였거나 슬픈 드라마였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맹숭맹숭한 일상에서도 자잘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고 일어났고, 바라 왔던 일은 무심히 지나갔다. 그리고 어떤 날은 피곤하게 시작했지만 의외로 멋진 선물이었다.
2년 전 지금의 자리로 환경이 변하면서 드러났던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의 면면이 드러났다. 환경의 변화와 마침 그때 나에게 일어났던 마음 아픈 일들이 한 번에 벌어지면서 롤러코스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는 듯한 충격이 있었다. 전속력으로 추락하는 것처럼 느꼈던 그 장면이 아니었다면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일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해도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일이 글쓰기였다. 나에게 글 쓰는 일이란 어렵고, 두렵고, 낯선 세계였다.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만 해볼 수 있는 일이라고 나름 단정 지었던 때였다.
마음 안에 쌓이고 쌓인 감정은 말이 아닌 글로 표현되었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하소연하는 습관을 이곳에서는 할 수가 없었던 것이 시작점이었다. 아는 사람도 없고, 통화하던 친구들도 갑자기 낯선 존재가 되어 버렸던 시기에 브런치가 친구가 되었다.
한 달간 내 마음을 요동치게 했던 일은 이렇게 자연 소멸되어 간다. 아무 일도 없었다. 그저 나 한 사람의 마음만 바쁘고, 흥분되었다가, 다소 실망했다가, 씁쓸하게 가라앉았다. 인생은 내 마음 같지 않고, 나의 생각대로 가지도 않았다. 타인과 비교하지 말라는 글과 영상을 수도 없이 보았지만 내 주변에 평화로운 일상의 사람들이 자꾸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보색 대비처럼 지금 나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아직 미련이라는 한 조각이 남았지만 나를 기다리는 밀린 한 꾸러미의 과제와 일들로 곧 잊을 것이다. 잊고 새로운 생각을 마음에 가득 담아볼 것이다. 그동안 나, 스케치북은 애썼다. 그리고 잘했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신나는 순간과 흥분감이 있었으니, 결괏값만을 기억하는 오류는 범하지 말자고~
나의 행복을 만드는 것도 + 지키는 것도 셀프!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또 그 둘의 차이를 구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 라인홀드 니부어, '평온을 비는 기도' 中 -
https://youtube.com/watch?v=56xXltkEl6I&feature=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