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대한민국이 떨리는 날, 수능날이다.
매년 한파가 찾아오는 날이지만 신기하게도 오늘은 따뜻함이 가득한 11월 수능날이었다. 12년간의 정규 교육 과정을 한 번의 시험으로 평가받는다는 건, 어이없기도 하고 그래서 더 떨리는 날이다. 지금은 수시와 내신처럼 평소에 여러 가지를 동시에 잘 해내야 하지만, 예전의 나는 수능 하나로도 대학에 갈 수 있는 전형이 있었다.
수능만 보면 모든 게 한 번에 되는 줄 알았다. 평소에 고3 담임만 10년 넘게 한 배테랑이라면서 자랑하던 전문가, 담임선생님도 그랬고, TV에 나오는 드라마 속에 캠퍼스와 CC 같은 단어도 그랬다. 수능 보고, 대학만 가면 모든 게 달라질 거야!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수능을 보고 오니, 담임선생님은 반에서 1~3등까지만 집중하고, 나머지(?) 학생은 직접 가고 싶은 학교에 원서를 내라고 하셨다. "너네들까지 신경 써 줄 시간이 없다면서..."그렇게 3등밖에 있는 나는 알아서 어디로 쓸지를 고민했다. 며칠 후, 옆반에 친하게 지내던 유유가 말했다. "너는 OO 쓰면 되겠다~"물론 내 점수도 모르고, 그냥 한 말이었다. 마침 비슷한 점수대의 학교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원서는 유유가 말한 학교에 그냥 냈다. 이유는 없음. 그냥 그러고 싶었고, 신기하게도 특차라는 전형에 덜컥 붙어버렸다.
그게 시작이었다. 나의 얼렁뚱땅 라이프. 막상 그렇게 용하게 추천해준 유유는 원서를 낸 학교에 떨어졌다. 지금의 회사도 우연히 갔던 취업설명회를 계기로 입사했다. 몇 년 전 다녔던 대학원은 내가 존경하는 선배 같은 후배, 콩콩이가 가고 싶은 학교였다. 우연히 내 등 뒤에서 성과 그래프를 보던 콩콩이는 혼잣말을 했다. 나라면 'OOMBA에 지원해보겠다' 청각이 유난히 발달한 나는 평소답지 않게 원서를 냈고, 다니게 되었다. 계획도 없이 그냥 걸어간 길이 지금의 일상을 만들어냈다. 물론 드라마나 영화 속 주인공처럼 성공했거나 하는 화려한 모습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지만…
계획이라는 것은 찾아볼 수 없는 우연과 우연의 인생이랄까. 특별한 생각 없이 살다가 누군가의 한 마디로 인생의 다른 길을 걸었다. 물론 이렇게 한 마디에 예민한 탓에 남들보다 오래 상처를 갖고 고민을 하는 아킬레스 건도 갖고 있지만.
'20살은 어른이야, 30살이 되면 마음가짐이 달라져야 해, 40살이 되면 인생을 알게 돼, 50살이 되면 노후를 준비해야 돼' 등등... 책의 제목이고, 사람들의 흔히 하는 말이다. 정말 그런 걸까? 몇 번의 구간을 거쳤지만 나는 위 문장의 의미를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대나무처럼 키는 컸지만 속은 비어있다고나 할까. 가끔 서점에 가면 늘 마주치는 나이의 공식을 볼 때마다 쓴웃음을 짓는다. 30살, 30으로 시작하는 책 한아름 사 왔던 적이 있다. 대부분은 큰 도움이 되지 않았고, 3권째부터는 비슷한 책의 카피가 의심스러운 구절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음에는 나이와 관련한 책을 사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고.
사람들이 정해 놓은 공식, 많은 사람들은 비슷한 나이에 비슷한 고민을 한다. 그 고민을 벗어난 사람들은 아웃사이더, 종종 외롭고 다른 길을 걷게 된다. 현재의 나이, 미혼, 나이와 비례하지 않은 재력은 주변의 사람들과 거리를 갖게 된다. 그런 내가 종종 보는 유튜브 영상의 주인공들은 나보다 10살쯤 어린 사람들이다. 또래의 사람에게서 받지 못한 공감과 마음을 나이가 어린 친구들에게 위로받는다. 어쩜 20대에 고민했어야 할 문제, 30대를 맞이하면서 가졌어야 할 숙제와 해결점 없이 살아온 인생은 20대, 30대 초반이 갖고 있는 마음과 닮아있는지도 모른다. 닮고 싶은 건 외모인데, 마음만 닮았다는 문제도...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 나이가 어린 친구에게 조언을 한다면 어떨까? 듣고 싶은 마음이 생길까?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나라는 사람이 나보다 어린 친구에 할 수 있는 말은
바라보고 싶지 않더라도, 너의 문제는 그때그때 해결해야 돼.
풀지 못한 숙제는 영원히 반복되는 마법이 있어. 마법을 풀어주는 건, 동화 속에 나오는 멋진 왕자님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라는 것. 누군가의 도움도, 가족의 사랑도 마법을 풀어주지 못한다는 걸 꼭 알았으면 좋겠어. 저절로 해결되는 마법은 존재하지 않아. 가끔 운이 좋아서 스르륵~풀리는 순간도 있지만 어떤 날은 힘든 날이 쓰나미처럼 몰려오기도 하거든.

11개 반에서 가장 예쁘고, 거기다 전교 1등이었던 가장 완벽한 존재였던 이름만 아는 OO의 슬픈 소식을 들었다. 480명 중에 가장 앞서 달리던 존재의 비보. 성적이 전부였던 그 순간을 지나 다른 인생의 구간을 지났을 때 교과서 같은 말이 떠올랐다. '인생에 성적이 전부가 아니야.' 더 중요한 건 유일무이한 나를 지키고, 보듬어주면서 살아가는 것. 그리고 그때그때 닥치는 어떤 일들을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그리고 어려운 일, 어렴풋한 일들은 글로 적어보아야 한다는 사실도.
글을 쓰다 보면 모호한 덩어리가 또렷해진다. 어렴풋한 감정을 잘 몰라서 용한 점집을 찾는 것보다 용한 내 글에 위로를 받아보는 건 어떤지. 글을 쓰다 보면, 쓴다고 도깨비방망이처럼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의 지도는 그릴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스스로 지도를 들고, 어디로 가야 할지를 생각하게 된다.
인류의 모든 문제는 인간이 혼자 방에 조용히 앉아 있을 수 없어서 생긴다.
- 수학자, 블레이즈 파스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