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북은 평생 무직으로 살아갈 거 같아
"스케치북은 학교를 문화센터처럼 다녀~", "스케치북은 졸업하고 바로 결혼할 건가 봐" 등등... 대학생 시절, 나를 보는 친구들의 솔직한 피드백이었다.

학부 때, 가까이서 나를 본 친구들이 만든 별명은 '집사람'이었다.
들었을 때 딱 떠오르는 배우자의 개념이 아니라 '집에만 있는 사람'의 줄임말, 그냥 집사람이었다. 20대 초반, 내향적, 내성적, 수동적인 일상은 학교와 기숙사를 오고 가는 초단순한 삶이었다. 전공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았다. 어학연수가 필수이던 어학 전공생 중, 나만 유일하게 현지에 가지 않은 학생이었다. 수업은 취업에 도움 되는 어학이나 경영학 수업을 멀리하고, 문학 수업을 골라 듣고, 사학과가 가는 문화 탐방에 따라가기도 했다.
그때 남자 친구가 없었음에도 우리 중에 가장 빨리 결혼할 것 같은 사람 1위는 스케치북, 나라고 했다. 하지만 결론은 정반대였다. 아마도 독신으로 살지 않을까 했던 용용이가 1등, 1위라 예상했던 나만 유일하게 미혼이며, 거기다 졸업 전에 취직을 했다.
물론 저렇게 보이는 결과 뒤에 숨은 장면이 있다. 철도 없고 생각도 없던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4학년 1학기까지 토익도 없는 엉망의 스펙을 회개함과 동시에 바로 휴학을 했다. 1년간 어학과 컴퓨터 자격증, 토론 스터디, 몇몇의 인사부 담당자들이 만든 사 모임이었던 면접 스터디를 두루 통과했다. 물론 그 안에서도 나의 자리는 없었다. 화려한 스펙의 사람들이 넘쳐났고, 모의 면접에서도 나는 숫자를 채우는 들러리에 불과했다. 그렇게 투명인간처럼 무시를 받았지만 그 와중에 배운 점이 있었다.
모 케이블 방송 아나운서 출신 취준생과 같은 무대에서 모의면접을 봤다. 아나운서 출신인 옆에 언니는 발음과 답변이 남달랐다. 정확한 발음으로 대답을 한다는 것은 같은 문장도 남다르게, 깊이 있게 들리게 하는 마법이 있었다. 모의 면접관은 그 언니의 답변이 듣고 싶어서 일부로 질문을 길게, 많이 했다. 그 옆에서 나도 조용히 경청만 하다가 모의면접은 끝나버렸다.
아나운서 준비생이 하는 교육은 모르지만 나도 그날 이후부터 말의 속도를 늦추고, 또박또박 발음하는 법, 이력서에 키워드를 설정하는 법을 알고, 사용하게 되었다.
지금 회사의 면접을 볼 때는 '아나운서 준비'를 하다가 온 취준생으로 면접관이 오해를 하셨다. 아나운서 언니의 발음을 앵무새처럼 따라 하고, 강당이라는 무대에 3번을 오르고 나서 가까스로 취업을 했다.
그렇게 어렵게 연마한 언어는 회사 입사 후 사라졌다. 정확히는 못하게 되었다. 입사하자마자 신입사원이 당돌하게 했던 한 마디로 나는 발령받기로 했던 팀에서 방출되었다. 6주간 교육받은 팀에서 밀려나, 사내에서 가장 평균 연령이 높고, 군기(?), 서열 문화가 강한 곳으로 떨어졌다. 이곳에서는 연차가 어린 사람은 조용히 웃고, 무조건 따르는 미덕이 있었다. 결국 나도 그 문화에 동화되었다.
첫 시작이 꼬였고, 계속 꼬였다. 그리고 말수가 줄어든 만큼 자신감도 사라졌다. 아무리 좋은 성과를 내도 줄어든 자신감을 올라오지 않았다.
"스케치북이 대학원 졸업 후로 말을 잘해", "대학원 졸업하고 나서 질문을 하네"라는 말을 회사에서 들었다.
학교에서 배웠다기보다는 자신감이 생기는 기회가 있었다. 토론과 발표 배틀로 유명한 수업을 수강 신청했다. 학점은 중요하지 않은 평소 나의 성격처럼 그저 구경하기(?) 위해 신청했다. 그러다 어느새 그 수업 한가운데 맨 앞에서 발표와 질문 공격을 시작하는 사람이 되었다. 가장 날카로운 질문을 하던 직업이 컨설턴트라고 했던 분의 집중 공격을 모두 받아치기 시작했다. 나한테 이런 초능력이 있다니?

기쁘다기보다는 신기했다. 나는 말에 자신이 없었다. 내 말에 논리가 있는지도 스스로 의심스러웠다. 토론에서 이기는 것보다 더 기뻤던 것은 내 말에 논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 수업은 말 연습이 되었고, 너무나 떨려하던 질문을 한 번씩 시작해보는 일이 되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장면과 다르게 감춰진 진짜 장면은 이런 것이다. 누가 알려준 말하기가 아닌 상황에 닥치니, 하게 되고, 늘게 된 말이었다. 말문이 트인다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내 말에 대한 믿음의 표현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칭찬보다는 질책과 비난에 익숙했다. 그렇게 성장한 나는 내가 잘할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너무나 오랜 시간 굳어져서, '당연히 난 못할 거야'라는 생각이 의식과 무의식이 깊게 새겨졌다. 살면서 이런저런 노력으로 좋은 결과를 나온 순간에도 그저 '운'이라 여긴 적도 있었다.
“스케치북은 잘못 될거야!” 새로운 아이디어를 냈을 때 회사 사람들 멘트였고, 결과는 그 반대였다.
어이없는 피드백에 화가 났지만 정작 나도 나를 믿지 못했다. 난 잘할 수 있을까? 못하면 어떡하지?
사이버과정이지만 학사 과정을 등록했다. 커리어에 목표를 갖고 한 도전은 아니었다. 마침 관련된 개인적인 일들이 생겼고, 코로나 세상이라 퇴근 후 집콕만 하니 그냥 해보았다.
대학원을 다닐 때도 몰랐던 병이 생겼다. 공부 두드러기! 책상에 15분 앉아있지를 못하고, 그새 핸드폰에서 음악을 듣고, 예능을 찾아보는 나를 발견했다. 냉장고 문을 수시로 열고, 인터넷 쇼핑을 시작하기도 하고...
기말고사를 앞둔 일주일 전 밀린 인강을 몰 아들은 지 1주일 만에 입가에 뭔가가 나고, 인후염 증상이 생겼다. 시기가 시기인만큼 pcr검사를 받았더니 음성, 단순 감기였다. 결론은 공부 두드러기(?). 하기 싫은 공부를 하려니, 온몸에서 거부하는 마음의 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상에 앉아서 기말고사 준비(?)를 하려고 마음의 준비만 한 시간을 하고 있다. 나의 한계는 이렇게 뻔한 것임에도 그래도 도전한다. 학습된 오랜 무기력과 실망으로 다져진 나를 일으켜 세우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봐야 할 책은 보기 싫고, 갑자기 유튜브가 보고 싶고, 안 좋은 기억, 온갖 잡생각이 용솟음친다. 가장 많이 떠오른 두 문장. "난 너무 늦었어", "진작에 이런 공부나 일상을 20대부터 살았다면 성공했을 텐데."
주변에서 나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 내가 나에게 하는 가장 많은 문장은 '늦었다'이다. 결혼도 늦었고, 재테크도, 회사에서 다른 보직이나 승진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 늦어도 너무 늦은 상태. 얼마 전, 만난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회사에서 업무로 아이디어 내지 말고, 그런 생각으로 돈 벌 생각을 해요. 그리고 결혼은 이미 늦었으니 이젠 노후나 준비해요~언니"라고 말했다. 뭔가 틀린 말은 아니지만 듣고 나서 기분이 상했다.
회사에서, 주변에서 자주 듣는 말이지만 들을 때마다 새롭게 힘이 빠지는 말
넌 너무 늦었어
타인이 나를 어떻게 정의하든, 내가 나를 새롭게 정의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나는 해보기로 했다.
어이없는 도전이라 해도 나는 해봤고,
그렇게 말하는 너는 해본 적도 없으니까.
사람들이 정의하는 '괜찮다'는 기준에 나는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에 나는 내가 생각하는 괜찮다는 기준에 들어섰다. 그 이유는 무언가를 잘해서가 아니다. 무언가를 하기 시작해서다. 더하여 그 무언가를 잘해보고, 더 깊이 해보고 싶다.
여전히 공부 두드러기와 스마트폰 금단 증세와 싸우고 있지만 그럼에도 책상 앞에 앉아있다. 예쁘게 꾸민 나의 서재, 안방이 드디어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