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느림보

여기저기에 배움이 있었다

by 그럼에도

2년 만에 대면 강의를 듣고 왔다. 어제, 오늘 두 분의 저자님의 직강을 들을 기회가 생겼고, 놓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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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교수님 강의 중 크게 와닿는 단어가 있었다. 심리적 심폐소생술.


어떤 상황으로 인하여 분노가 참을 수 없는 상태로 치달으면 사람의 마음에도 심정지와 같은 위기가 찾아온다. 심리적 심폐소생술의 방법은 일단 좋은 음식으로 잘 먹고, 몸을 마사지나 반신욕으로 잘 풀어준다. 그리고 걱정은 일단 놔두고 잘 자는 것이 3가지 심리적 심폐소생술이다. 너무 간단해 보이지만 정말 화가 나면 먹을 수도 잘 수도 없다. 몸을 마사지하는 단계까지 가기도 어렵다ㅠㅠ


즉, 몸 챙김이 마음 챙김! 2년간 교수님 온라인 강의와 책만 읽었는데 드디어 실물로 뵐 수 있었다. 유튜브에서 강의를 워낙 많이 들어서 인지 처음 뵙지만 자주 만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온라인의 짧은 강의로 들었던 내용을 90분 강의로 몰아 듣고 나니, 큰 그림이 그려졌다. 이래서 대면 강의는 필요한 것이고 소중한 것이다.


비대면 시대에도 대면은 필요한 것이다. 코로나가 끝나도 비대면 세상은 끝나지 않겠지만 정말 중요한 자리는 대면이 필요함을 인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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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들은 강의는 '공학의 쓸모와 즐거움'이었다. IT의 역사와 현재, 미래를 밀도 있게 설명해주셨다. 그리고 궁금했던 점을 질문드렸다. 너무나 창의적인 질문이라서, 교수님을 조금 난감하게 만들었다. 수포자의 수학 공부법이라니... 나의 질문의 답은 쉽지 않았다. 그리고 원래 그 강의의 주제는 청소년을 위한 것이었다. 청소년과 옆에 계신 학부모님의 질문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드린 질문이었다.


일단 수학의 기본 개념과 원리를 알아야 코딩이든, 머신러닝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주셨다. 난 그 답변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리고 교수님의 당황스러운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그동안 내가 들었던 모든 대면 강의의 청중은 학부모님이었다. 강의 주제가 글쓰기, 데이터 마이닝, 뇌과학, 건축 등등 강의 주제는 다양하게 달랐지만 신기하게도 청중의 구성원은 같았고, 강의 후 질문 내용도 어디서나 똑같았다. '그럼 우리 아이는 지금 어떤 것을 가르쳐야 할까요?', '지금은 너무 늦었나요?', '어떤 전공을 해야 할까요?' 등등.


청중에 맞는 강의를 준비해야 하기도 하고, 대부분의 강의는 학부모님을 대상으로 한다. 오늘 내가 한 질문은 "저는 저를 잘 키우고 싶습니다. 그럼 수학은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할까요?"라는 순수하고, 어이없는 질문은 듣는 이에게 신선한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다들 왜 애들만 키우려고 할까? 나는 성장하고 싶지 않은 걸까? 아니면 사람들 말처럼 나는 아이가 없어서 뭘 몰라도 너무 모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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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나는 애를 키우지 않았으니 육아에 대한 고민이 없다. 단지 나를 어떻게 잘 키워야 할지 나에 대한 고민의 총량이 많다. 배우고 싶은 게 하나도 없었을 때는 나에 대한 고민보다 타인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았다. 배울 게 한참 많았던 시기에는 배우려 하지 않았다. 눈을 감고 살았던 거 같다.

작년부터 뭔가 배워야겠다고 생각하니, 소개팅남의 한 마디 한 마디에서도 배울 점을 발견하게 된다. 예전엔 이런 만남에서 '나와 잘 맞는지'만 바라봤다. 그리고 그 사람의 단점으로 보일 요소가 더 크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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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짐이 바뀌어서인지, 그 사람의 장점에 더 눈이 가고, 마음이 간다. 작년에 만났던 분은 공부를 많이 하신 분이었다. 그 분과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그분이 말했던 코스를 따라서 신청했다. 몇 달 전 만난 소개팅남이 장난처럼 했던 유튜브 얘기에 나도 상상만 했던 일들을 실행 보기 위해 조금씩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난 강의를 하고 싶다. 최근 스피치 코스도 수강했지만 회사에서 하는 업무적 내용을 빼고는 발표를 할 일이 없다. 그래서 셀프 강의를 위해 유튜브를 열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소개팅남에게는 열등감을 발견했다. (이렇게 말하니 많은 분을 만난 것 같지만 2년간 3번의 소개팅) 비싼 차와 명품 옷, 골프 자랑을 한참 늘어놓았지만 나는 반대로 그 사람이 감추고 싶어 하는 열등감을 보았다. 열등감은 키가 크다. 감추려 할수록 허세와 함께 더 큰 키로 다가온다. 게다가 열등감이라는 녀석은 순식간에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속성이 있다.


취미로 음악 얘기를 하는데 갑자기 키가 작은 뮤지션을 강하게 '디스'했다. 내가 너무 사랑하는 뮤지션을 디스 한 것도 충격이지만 그렇게 말하는 본인은... 할 말을 잃었다. (키가 작은 나와 소개팅남은 눈높이가 같았다^^;;) 두 번의 만남 내내 골프, 인맥을 자랑했다. 골프가 재밌는 운동이라기보다는 현실을 도피하고, 그 시간을 사람들과의 만남과 웃음으로 채우려는 것 같았다. 소개팅남의 직장은 뉴스에서 보았다. 인수 직전의 상황이라 한가로이 취미 생활을 할 분위기가 아니라고 뉴스를 본 사람은 다 알만한 곳이었다. 취미일까, 도피일까? 사람의 단점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너무나 크게 보였다. 타인의 모습에서 나를 보았기 때문이다. 타인의 너무 싫은 단점은 사실은 내가 가진 단점이었다.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 나는 현실 도피와 허영심이 가득했다. 같이 다닌 사람들과 나는 똑같았다. 소개팅남과 다른 게 있다면 나는 골프 대신 맛집과 쇼핑이었다. 허한 마음을 웃음과 소비로 채웠다. 그렇지만 '밑 빠진 독'처럼 허한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다.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나쁜 관계로 도피한다'는 김정운 작가님의 말씀처럼 나는 그렇게 사람들 속에서 지냈다. 혼자 있기보다는 늘 사람들 속에 있었다. 몸이 힘들어도 모든 모임에 참석하고, 번개를 했다. 번아웃이 온 줄도 모르고, 그게 에너지를 충전하는 방법으로 잘못 생각했다.


골프 중독 소개팅남을 보면서 씁쓸했던 예전의 내 모습이 보였고, 대화가 두 마디 이상 오고 가지 않는 답답함으로 만남은 거기에서 끝났다. 예전에 배울 게 더 많았을 때도 안 보이던 것이 최근에야 보이기 시작했다. 관점이 바뀌니,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올해 나는 안 해보던 도전을 하게 되는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사람은 사람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그렇게 배움은 소리 소문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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