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느림보

읽고 쓰기의 쓸모

by 그럼에도

오랜만에 토익 시험을 본 날이다. 일요일 늦게 일어나기의 습관은 토익 시험 시작 2시간 전 기상, 급한 준비와 10분 아침 식사로 시작했다. 아무리 급해도 아침밥은 먹고 보는 나의 사랑스러운 의식^^;;


오랜만에 토익 방송을 들으니 반갑게 느껴지는 이런 신기한 감정이라니... 주변엔 모두 대학생 또는 취준생으로 보였다. 초집중하는 모습과 달리 나는 동네 산책 나온 어르신 같았다. 여유와 미소. 아이폰으로 바꾼 지 얼마 안 되었는지, 전원 끄기 기능을 모르는 수험생을 도와주기까지 했다


나만의 특이한 습관이 있다. 언어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시험을 먼저 본다. 그것도 공부 없이, 순수한 그 상태 그대로. 다이어트 시작 전, 인바디를 측정하는 것과 같다. 어디에서 본 건 아니지만 그냥 나만의 독특한 취향이다. 그렇게 토익과 HSK를 만났다.


내가 갑작스럽게 토익 시험을 접수한 이유는 남궁인 작가의 책을 읽다가 본 구절 덕분이었다.


습득한 외국어를 놀리지 않도록 틈날 때마다 읽고 쓰고 기억해본다. 당장 사용할 일이 없어도 관련된 책을 읽거나 펴서 떠올려보는 것으로 회로가 유지된다. 당장 사용할 일이 없어도 관련된 책을 읽거나 펴서 떠올려보는 것으로 회로가 유지된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공부해서 어학시험에 응시해본다.
반드시 필요한 일은 아니지만 언젠가 그로 인해 도움받을 일이 생길 것이다.

- 남궁인, '제법 안온한 날들' -


12월 중순 이후부터 한가할 예정이므로 마침 시간이 있었다. 시작하기 전에 시험부터 보는 나의 습관을 시작하기 좋은 기회. 그렇게 충동적으로 접수하고, 오늘 시험을 봤다.


5년 전, 대학원 원서 접수에 필요해서 시험을 본 게 마지막이었다. 그마저도 점수가 중요한 게 아닌 그저 첨부 기능이었기에 책 한 권 보고 시험을 본 게 마지막이었다. 준비를 안 해서인지, 긴박함이 없어서인지 시험이 시작해도 전혀 긴장되지 않았다. 그런 마음이 오히려 집중하기에 좋았다.


예전 토익 강의에서 파트 1 Direction을 읽어줄 때, 파트 5,6을 풀라는 설명이 생각났다. 이번엔 무시했다. 파트 3의 문제를 읽어보았다. 하나의 지문으로 3개의 문제를 만들어냈다. 눈으로 보다 보니, 일련의 흐름이 보였다. 3개 문제가 공통적으로 어울리는 단어가 보였다. 예를 들면 '1번 문항: 인테리어, 2번 질문 : 기한이 늦은 이유, 3번 문항:문의 색'


이야기의 흐름이 보였다. 그렇게 내용을 미리 예상하고 듣기를 듣고, 독해 문제 지문을 읽어나갔다. 마킹을 끝내고 보니, 시험 종료 6분 전이었다. 공부를 열심히 했을 때도 늘 3~4문제를 다 못 풀어서 찍기 신공을 발휘했었다. 순수한 한글 실력으로 이렇게 시험 시간을 단축하다니?!


시험 결과까지 좋아야 진짜 나의 한글 실력, 문해력이 영어에서도 빛을 발한다고 자부할 텐데^^;;

작년부터 독서를 제대로 시작했다. 브런치에 쓸 말이 필요해서 책을 찾다가, 책을 더 읽게 되었다. 읽고 쓰다 보니 글의 흐름, 문맥을 파악하는 경험이 늘게 되었다. 읽고 쓰기의 경험은 순수한 한글이었다. 하지만 순수한 문해력은 영어 시험에서도 나름 힘을 발휘했다.


업무에서 영어를 쓸 일이 거의 없다. 물론 찾아보면 영어 메일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본사 중요 메일은 완벽한 한글 번역본으로 날아온다. 작년부터 코로나 뉴스에 관심을 가지면서 BBC 방송의 3분 토막 뉴스를 유튜브로 보기 시작했다. 영국을 보면 코로나 상황으로 의료 붕괴가 되었고, 봉쇄령, 백신 접종을 하고, 백신 의무화 반대 투쟁을 한다. 남의 일이지만 그런 뉴스는 시간이 흘러 한국에서도 비슷한 형태를 이루었다. 나의 짧아도 너무 짧은 영어 실력에도 코로나 뉴스 내용에 나오는 한정된 영어 단어는 대강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정확하지 않지만. 작년에는 K방역이 잠깐잠깐 언급되어서 가슴을 뭉클하게 해주기도 했다. '대한민국 만세~'ㅎㅎ


매일은 아니었지만 2~3일의 한 번씩 5분 분량의 코로나 뉴스를 본 힘이었을까? 오늘 시험을 가볍게 보고 나왔다. 새로운 경험은 시작이 어렵고, 움직이고 나면 가뿐한 그 무엇이 있다.

sticker sticker

P.S : 이런 신비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도와준 남궁인 작가님께 무한 애정과 깊은 팬심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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