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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Dec 28. 2021

완벽하지 않아도 대체할 수 없는

김혜령, '내 마음을 돌보는 시간'

 p.225

 그러다 깨달았습니다. '믿을 만한 나'를 위해서 그토록 열심히 살아왔다는 것을요. 저에게 필요했던 건 '자신에 대한 믿음'이었던 겁니다. 내가 나를 믿을 수 없으면 외부로부터 위기가 주어졌을 때 쉽게 무너진다는 걸 알았습니다.


 겁이 많고 자존감이 낮았던 저로서는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자기 행동 말고는 믿을 게 없었습니다. 끊임없이 선택하고 고민하고 나아가야 하는 삶에서 게으르고 나태한 저 자신을 의지하면서 살 수는 없었으니까요. 


 적극적으로 활동한다는 건 능동적으로 모든 경험을 맞이한다는 겁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자발적으로 누리고 충실하게 살아낸다는 것입니다. 어떤 괴로움이든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경험은 고통을 수반하니까요.


 일상을 적극적으로 살아냈던 시간들이 모여서 나 자신을 믿을 만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돌아봅니다. 금수저도 아니고 백도 없는 저에게 기댈 존재는 나 자신뿐이었으니까요. 


 열심히 살면 결국엔 뭔가가 달라집니다. 성과로 나타날 수도 있고, 시험에 합격하거나 마라톤을 완주할 수도 있습니다. 멈춰서 두 손을 놓고 있을 때에는 주어지지 않는 것들이죠. 그런 모든 행위들이 모여서 나를 믿는 근거가 됩니다. 


 생일이 다가오기 한 시간 전, 생일 축하 노래를 들었다. 그것도 중국어로!

 미뤄둔 중국어 발음 인강을 드디어 오늘 들었다. 수업이 끝나갈 무렵 갑자기 '생일 축하 노래'가 흘러나왔다.(중국어 발음 연습에 좋은 노래다) 어쩜, 이렇게 뜬끔없고, 갑작스러운 생일 축하 노래라니!


 미루고 미룬 나의 숙제 첫날인데 이렇게 감동스러운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21살에 처음 중국어를 배웠고, 2년간 전공 수업을 간신히 듣고 미련 없이 이별했었다. 취업이 잘 된다는 경영학 수업을 들어야 해서, 나에게 중국어는 2년간 잠시 스쳐 지나간 친구였다.


 간단한 중국어 발음 기호가 익숙한 듯 낯설었다. 정말 한 번도 중국어를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다시 중국어를 배우고 싶어졌다. 영어와 중국어를 한다면 내가 볼 수 있는 세상이 조금 더 재밌어질 거 같아서. 김연경이 중국에서 배구를 시작했다. 식빵 언니 김연경 영상을 재밌게 보려면 해설자의 말을 알아들어야 한다 ㅎㅎ

 

 혼자서 모든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불안감이 뭉쳐서 늘 나를 괴롭혔다. 지금도 내가 아침에 눈 떠서 움직이기 전까지 그런 감정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특히 나는 열등감이 심하다. 지금도 그 녀석은 내 마음속 한가운데에서 키가 컸다가 작아지기를 반복 중이다. 


 주변엔 신기하게도 중산층 이상이거나 금수저의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그들의 환경도 부럽지만 더 부러운 건 모나지 않은 여유로운 마음과  분위기였다. 부유한 환경은 사람을 동글동글한 성격으로 만들어주는 걸까? 유난히 모나고 소심한 나와 블랙 앤 화이트처럼 대비가 되어 보였다. 돈은 많은 걸로 사람을 작아지게 만들었다.


 얼마 전 고종사촌이 결혼을 했다. 평소 왕래는 없지만 엄마를 통해서 자주 소식을 듣는다. 나와는 정반대의 금수저의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이어갈 사촌들. 


  내가 고모의 딸로 태어났다면? 나도 고모의 딸과 비슷하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필요한 모든 것을 부모님이 해결해주셨고, 결혼 후에도 집부터 받고 시작하는 그런 모습. 내가 열심히 살아가야 할 이유는 너무나 많지만 환경적인 부분도 그 중 한 이유였다. 


 어쩌면 내가 앞으로의 미래 세상이며 현재 트렌드를 배우는 것도, 동생들에게 이런저런 잔소리와 조언을 하는 이유는 하나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야 한다. 신기한 건, 엄마나 내가 부러워했던 고모가 나를 꽤 미워한다는 것이다. 고모의 속마음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고모의 아들딸이 가지지 못한 어떤 요소를 내가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고모는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솔직함이 있으니까.


 대신 나는 아빠에게 무형의 자산을 물려받았다. 그건 '눈썰미'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직관'이라는 단어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지만 나는 아빠의 장점을 물려받았다. 아빠는 농촌의 작은 동네에서 일찍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허드렛일로 7남매와 할머니와 살았다고 하셨다. 홍콩영화가 유행하던 아빠의 20대, 20살에 아빠 주변의 사람들은 오토바이를 몰고, 영화 장면을 따라 했다. 반대로 아빠는 영화 속 오토바이를 보면서 '이거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길로 바로 서울에 올라와서 열정 페이로 기술을 배웠다. 그렇게 고생 끝에 창업을 했다. 아빠의 예감은 정확했다. 아빠는 학교를 오래 다니지 못했지만 누구보다도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한 눈썰미와 배우는 속도가 빨랐다.


 최근 5년간 나의 다른 시선이 도드라지는 일을 경험할 일이 많았다. 그런 다른 시선은 요새 주목받기 시작했다. 내 아이디어의 원천은 관찰력이다. 사람들이 움직이는 동선, 시선, 사람들의 대화에서 많은 것을 발견한다.


 직업이 마케터나 카피라이터는 아니지만 재밌는 소스를 발견하고, 다시 다듬어본다. 역으로 마케팅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아이디어를 공유한다. 남들과 다른 시선은 나 스스로에게는 무거움 짐이었다. 같은 장면에서 더 많은 걸 본다는 건,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쉽게 탈진된다.(사람들의 뒷담화에도 가끔 내가 출연하게 된다. 운만 좋은 스케치북~, 튀고 싶니?스케치북~등등 ㅋ)


 유병욱 카피라이터의 글 속 한 문장이 떠오른다. 이제는 이런 완벽하지 않은 나라도 대체할 수 없는 내가 되기를 나의 생일에 바래본다. 나에게 두 번째 생일 축하 노래는 내가 불러본다. 축하한다~스케치북!


 단단한 내가 되길 바래~그리고 나는 해낼 수 있어. 나를 믿고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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