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 '열두 발자국'
만약 자신의 모든 환경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거나
지속적으로 행운이 따라준다면,
인간은 결코 미신의 희생양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 스피노자, '신학-정치론' -
p.179
[볼프람 슐츠의 보상심리 실험]
: 원숭이에게 오렌지주스를 보상으로 제시하고, 예측과 기대 여부에 따른 두뇌반응을 측정했다. 예측하지 않은 보상을 받았을 때, '쾌락의 중추'로 알려진 측좌핵 신경세포의 활동이 가장 활발히 증가했다.
이 실험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메시지는 뭘까요?
행복은 예측할 수 없을 때 더 크게 다가오고,
불행은 예측할 수 없을 때 감당할 만한다.
행복은 예측할 수 없는 뜻밖의 상황에서 기대 이상의 무언가를 얻었을 때 우리에게 찾아오고요, 이미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면 기대감이 사라진 상황에선 어떤 것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월급날 월급이 들어올 때보다 지금 강연장을 나가다 복도에서 5만 원짜리 지폐를 주웠을 때 더 기쁜 것처럼, 행복은 보상의 크기에 비례하지 않고 기대와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따라서 미래를 알 수 있다면 행복도 사라질 겁니다.
반면 불행을 미리 안다면 그 크기가 엄청날 겁니다. 우리가 불행이 닥친다는 사실을 몰랐을 때에는 결국 견디고 감내하지만, 예고된 불행은 그 순간 더 큰 불행의 시작이 됩니다. 당산이 5년 후에 치매에 걸린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상상해보세요. 지금부터 5년 동안 어떤 삶을 살게 될까요? 아마 치매보다 더 큰 고통에 시달리게 될 겁니다.
+ 중략
미신과 징크스는 미래를 통제하고 싶은 욕망에서 시작되지만, 미래를 통제하는 것이 결코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
결국 중요한 건 '삶의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과학적인 사고, 이성적인 판단, 논리적인 추론이 우리의 일상으로 좀 더 들어왔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합리적인 삶의 태도란 논리적인 관점에서 상황을 들여다보고 원인과 결과를 명확히 찾고자 노력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30대가 된 후, 미래의 불안과 호기심으로 1년에 한 번은 친구나 지인 추천을 받은 곳에 갔었다. 5년 전, 1월에 친구가 추천과 동생 추천의 점집 2곳을 다녀왔다. 그리고 그 후로 다시는 점집에 가지 않게 되었다.
나의 삶의 태도의 변화는 과학적인 사고와 이성적인 판단의 결과물이 아니었다. 동생 추천의 점집에서 너무나 슬픈 미래를 말하더니 갑자기 굿을 꼭 해야 한다고 했다. 비용은 300만 원! 너무 당황스럽기도 했고, 마침 대학원 등록금 납부로 통장도 마음도 비어버린 상황이라, 작은 목소리로 "지금 등록금 내고, 너무 힘든 상황인데요ㅠㅠ"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갑자기 굿 비용은 '90만 원'으로 대폭 세일되었다.(단, 90만 원은 정성이 부족해서 약발이 약하다는 조건과 함께) 행운을 기대하며 간 곳에서 충격만 받고 나왔다. 뭔가에 홀린 기분이었다. 그렇게 슬픈 미래를 이야기하면서 멘털을 흔들더니, 산속에서 '굿'이라는 처방전을 제시하고, 그 가격은 바로 디스카운트?
정말 내 미래가 그렇게 꽉 막힌 걸까? 아님 그날 출근 차림의 옷차림에서 어떤 재력이 느껴진 걸까?
친구한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본인과 회사 사람들이 다녀오고 검증되었다는 다른 점집을 추천했다. 집에서 꽤 멀었던 그곳은 첫 번째 집보다 조금 약한 수위였지만 여기도 불운한 미래를 이야기했다. 이번에도 해결책은 '굿', 비용은 300만 원. 돈이 없다 하니, 여기도 90만 원 OK! 우리나라 굿 가격은 어떤 가격 담합이 있는 것일까? 가까운 동네도 아닌데 같은 가격, 같은 할인율!
그럼 그 해 나는 어떤 불운한 일이 일어났을까?
대학원 입학이라는 행운과 회사와 학교 생활 병행이라는 불편함(?) 빼고는 없었다. 그럼에도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았고, 접촉 사고 한 번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특별한 행운도 없었다. 그저 무탈한, 바쁜, 잠이 부족한 나날을 보냈다.
가끔 뉴스에서 무당에 속아서 사기를 당했다거나, 고액의 굿으로 곤란한 사례가 나온다. 뉴스로 볼 때는 그런 데 왜 속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막상 내가 그 상황에 들어가 보니, 갑자기 어딘가에 홀린 듯 그 말에 빠져들었다.
회사를 다니며 단조로운 하루를 보내는 삶에서 어떤 햇살 같은 행운과 행복이 있을지 궁금해서 간 곳이었다. 만약 내가 사업이 망했거나, 집안에 누군가 아픈 사람이 있었다면, 나 역시 굿에 동의하지 않았을까? 나처럼 행운을 기대한 사람도 있지만 보통 점집에 갈 때는 불안감, 여러 가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찾는 곳이다.
불운한 미래에 해결책이 단 하나라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절박한 사람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특유의 단호함과 무엇이든지 다 안다는 자신감, 점집 특유의 분위기가 더해져서 사람의 마음을 빼앗기 좋은 3요소가 형성된다. 나의 멘털이 강했다기보다는 그때 나의 상황은 굿을 할 만큼 절박하지 않았다. 하지만 슬픈 미래를 듣고 나온 후 너무 놀래서 그날 저녁에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있다. 점쟁이가 말한 불운한 미래가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그때 흘린 눈물만 기억하는 5년 후 지금!
결론은 두 점집은 나에게 행운을 가져다주었다. 나의 미신에 대한 소박한 믿음을 깨 주었다. 내 미래를 무당보다 나에게 묻고 스스로 답하는 과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떤 불편하거나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원인과 과정, 결과를 다시 되짚어본다.
지성주의란 하나의 사상이나 생각에
몰입하지 않고,
우리 모두가 계속 생각하는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지성주의에 의지한다면
미신이나 초과학적인 현상에
쉽게 열광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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