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총량이 있다면, 불행에도 총량이 있을까?
예전 한 영상에서 '행복은 한 그릇이다'라는 내용을 보았다. 밖에서 보기에는 좋아 보여도 집집마다 각각의 아픔과 고통이 있다고.
설날이라는 명절에 덕담이 오고 가는 대신에 우리 집에는, 더 정확히 아빠는 분노했다. 폭탄이 떨어졌다. 그날 저녁 집에서는 '사건에 대한 분노와 그다음의 해결할 일'에 대해서 딸들과 아빠의 설전이 밤늦도록 이어졌다.
아빠는 늘 말씀하셨다. "언젠가는 내 인생을 책으로 쓸 거야!"
아빠의 파란만장한 성장 과정과 슬픈 이야기는 그 세대에게 흔한 이야기라고 그렇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집과 다름이 하나 있다면 과거완료가 아닌 그것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아빠는 형제가 많다. 그런데 늘 문제를 일으키는 형제들이 있다.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은 정해져 있고, 뒷수습을 하는 사람도 정해져 있다. 아빠와 아빠의 동생 중 한 명, 여기서는 S님이라고 적겠다. 즉 두 명은 뒷수습 담당이었다. 그런 동생 S님은 아빠의 자랑이고, 자신감이고, 존경의 대상이었다.
이번에는 S님이 문제의 원인이 되었다. 베풂을 행하는 기부천사에서 일종의 가해자(?)가 된 것이다. 아빠도 이 일에 연관될 뻔했었다. 다행이었던 건, 평소에 대화가 없는 부녀지간임에도 찜찜한 그 일에 대해서 아빠가 나에게 상의를 하셨다. 재테크를 몰라도 그건 너무나 눈에 보이는 뻔한 것이었다. 당연히 거절해야 하는 것이었다. 아빠는 단칼에 거절하는 데에 나의 논리가 많은 기여 했다. 아빠는 스케치북이 너무 반대해서 부탁을 들어줄 수 없다고 너무나 솔직한 답변을 하셨다. 그렇게 나는 S님의 눈엣가시 조카가 되었다.
몇 년 전인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때 아빠를 설득했던 그 이유가 현실이 되어 돌아왔다. 내 예상이 틀렸다면 얼마나 좋을까. 좋았을까.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 그전부터 소소한 문제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큰 문제가 발생했다. 명절날, 사건의 피해를 입은 동생의 눈물은 또 아빠를 전사로 만들었다.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앞장서서 해결하고자 했다. 당사자는 이번에도 아빠에게 문제 해결을 떠넘겼다.
아빠의 분노는 가해자 S였다. 나의 분노는 본인의 상황을 또 아빠에게 전가시킨 피해를 입은 그 분과 가해자 S, 해결사로 나서는 아빠를 포함한 3인이었다. 그래서인지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도 해결 방안도 달랐다.
아빠는 본인 인생의 무게 외에도 언제나 문제를 일으키는 형제, 가끔은 조카들까지 뒷감당하느라 바빴다. 뒷감당은 동생 나이가 50이 넘어도 끝나지 않았다. 그 어떤 사건사고에서도 달라지지 않는 동생과 뒷감당에 지쳐가는 아빠, 그걸 지켜보면서 화를 삭이는 엄마와 나까지. 나이를 먹지 않는 피터팬이 있다면, 집안에는 철들지 않고 영원히 문제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고통의 총량이 커서였을까? 아빠가 낳은 자식들이 문제다운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성장했지만 아빠는 그럼에도 마음 편안하게 살 수 없는 날들이 많았다.
미워하던 아빠가 혼잣말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난 부모복도 없는데, 형제 복도 없어. 난 전생에 얼마나 죄를 지어서 이렇게 사나?'라고 쓸쓸하게 되뇌셨다. 그 모습은 아빠에 대한 나의 분노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아빠는 전생에 어떤 큰 죄를 지었길래, 나이 60이 넘어도 이렇게 시달릴까. 아무리 베풀어도 상대는 고마워하거나 따르기는커녕 이용하기만 하는데. 어쩌면 가장 오랜 세월 이용당한 사람은 아빠였다.
나는 엄마보다 아빠 형제들과 가깝고, 아빠보다는 멀리 떨어져 있다. 당사자가 아니기에 사건의 다른 장면이 보이고, 그다음 단계가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사랑에 빠지면 콩깍지가 씌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당사자들 눈에는 현실을 즉시 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결국 작년부터 나와 동생은 SNS에서 보이는 S님의 어쩌다가 아닌 진정 화려한 일상, 형제를 이용한 대가로 얻는 금전 수익을 어림짐작이지만 공개했다. 일종의 팩트 체크가 시작되었다. 아빠가 안다고 믿었던 것과는너무나 다른 장면들. 말 한마디에 금세 달라질 아빠는 아니었지만 실망 한 조각은 더해졌다. 강해 보이는 모습과는 다르게 아빠 마음을 한 구석을 무너지게 했을 수도 있다. 정말이지 나는 효녀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다.
사랑하는 동생 S가 감춰온 민낯, 엊그제 아빠의 호통에는 다양한 재료가 뒤섞여 있었다. 결과에 대한 분노, 믿었던 동생의 배신, 피해를 받은 동생에 대한 안타까움, 더 도와줄 수 없는 아픔까지 더해졌고, 불같이 화를 냈다. 아닌 밤중의 홍두깨처럼 S님도 당황하고, 아빠처럼 화를 냈다. 전화상 통화였지만 그 분노는 며칠을 타올랐다. 그 장면을 지켜본 나 역시 며칠 째 마음 한 구석에 불길이 일고 있다.
감사일기를 쓰지 않는데, 그나마 감사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아빠가 딸들과 상의했다는 것이다. 물론 딸들의 이야기가 모두 반영되지 않지만 참고 자료가 되었다. 그리고 눈에 씐 콩깍지의 일부를 걷어냈다는 것. 현실은 가혹하다. 그리고 아빠의 행동으로 딸인 나에게도 영향과 어쩌면 문제 해결에 나 역시 동원(?)될 수도 있음에 더 조심스럽다. 좋을 때는 연락 한 번 하지 않다가, 문제만 생기면 찾는 아빠의 형제들. '책임과 공감'이라는 단어가 업보보다 더 무서운 굴레임을 보여준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현실 인지' 부족과 '누군가는 해결해주겠지'라는 헛된 기대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본인 문제의 실타래는 본인만이 풀 수 있다. 당사가가 알던, 알지 못하건 간에 그건 변하지 않는 진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