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느림보

말이 돼? 말이 재밌어지는 시간

by 그럼에도


어제는 대권주자의 4명의 토론이 있었다. 토론이나 청문회와 같은 영상보다는 예능 프로그램 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 굳이 찾아보지도 않았고, 누군가의 시청 소감 역시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제는 달랐다. 어제는 할 일을 제쳐두고 보았다. 물론 초집중까지 한 것은 아니지만 영상을 끝까지 본 유일한 토론이었다. 토론은 왜 하는 것일까? 달변가로서 능수능란한 말솜씨를 보여주는 자리일까? 상대방이 나쁘다면서 옳지 않음을 공격하는 좋은 기회일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나의 생각을 설득하는 자리일까?


정답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후보가 나온 이유가 모두 달라 보였다. 새로운 지지자를 원하는 사람도 보였고, 기존 지지자들이 좋아하는 방향을 콕 찍어서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


예전에 들었던 토론 수업을 듣기 전후로 나라는 사람이 토론을 보는 관점과 방식이 달라졌다. 이름은 수업이었지만 사실은 배틀, 한마디로 전쟁이었다. 같은 주제로 우선 두 조가 발표하면서 각각의 조가 서로 어필하는 경쟁과 지켜보는 사람의 질문을 빙자한 공격이 지금 여야의 싸움처럼 벌어졌다. 그리고 이런 공격과 방어가 포인트로 환산되어 학점이 되었다.


한 학기 그런 배틀을 벌이다 보니, 그 사람과 친하게 지내지 않아도 사람의 성향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성적인 논리에 접근하는 사람 논리형, 발표 내용의 부실함을 밤새워서 준비했다는 노력과 정성을 강조하는 감정형, 잘 알지 못하면서 다 안다고 떠드는 허세형, 내용의 허점을 귀신같이 잡아내는 관찰자형 등등 30명 남짓한 사람의 다양한 유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한 번은 내가 발표하게 되었다. 시작 직전에 알았다. 논리가 반대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최대한 다른 부분을 강조하거나 시간을 끌고, 그 부분을 빠르게 넘어가리라 다짐했다. 발표는 생각대로 잘 넘어갔는데, 결국 교수님께 걸려버렸다. 이런저런 경험이 쌓이고 보니, 준비가 부족한 사람의 임기응변을 내 몸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이런 경우 발표 시간이 짧다는 것은 엄청난 자원이 된다. 즉 발표나 답변의 시간이 짧을수록 임기응변이 빛을 발한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 여지없이 속이 다 드러난다. 예를 들면 회사에서 타운홀 미팅을 하는데 임원에게 커리어 계발에 대한 구체적 질문을 한다. 하지만 임원도 회사도 그런 계획이 없다면?(나의 눈에는 없어 보였다) 그럴 때 임원은 자기 계발서의 문장처럼 다양성과 꿈이라는 모호한 단어를 사용한다. '꿈과 목표를 향해서 정진하고, 매일의 small win이 쌓다 보면 어느새 높은 곳에 도착할 것이다'라고 멋들어지게 답변을. 언뜻 들으면 좋은 말! 곱씹어보면 그래서 뭐 어쩌라는 것인지, 또 어떻게 small win을 할 것인지에 대한 진짜 콘텐츠가 빠져 있다. 다른 예시를 들자면 현재 당면한 문제에 집중하라 답변을 할 수도 있다. 즉, 질문에 동문서답하거나 질문을 다른 방향으로 바꿔버리는 방법이다. 이런 '치고 빠지기'의 기술을 사용하기에 가장 좋은 순간은 답변 시간이 짧을 때다. 짧은 시간은 임기응변에 최고의 무기다.


어제 특정 후보에게서 이런 임기응변이 유독 많이 보였다. 누군가는 그런 모습이 멋있다고 많은 댓글이 달렸다. 아마도 예전의 나라면 나 역시 동의했을 것이다. 토론 수업을 듣기 전이라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내 생각은 그 댓글과 정반대였다.


구체적인 계획이 있거나 다양한 이해관계자에 대한 요소를 감안해서 답변한다면? 짧은 답변 시간은 최악의 상황이 된다. YES와 NO를 그 자리에서 할 수도 없으며, 해서도 안 되는 민감하고 복잡한 상황, 특히 외교와 국방은 그런 상황이 아닐까? 우리나라처럼 반도라는 지리적 특성과 휴전이라는 상황의 특수성을 감안한다면 말이다.


북한에서 미사일을 쏘아 올리면 바로 외국에서 오는 임원들의 방문이 연기되거나 취소가 된다. 한국사람으로서 전혀 느끼지 못하는 전쟁의 공포와 위협을 외국사람들은 아주 심각하게 보는구나를 그제야 깨닫게 된다. 한마디로 우리는 생각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꽤 굳건하게 잘 살고 있다는 뜻이다.


어제 나는 4명의 후보를 토론 수업 참여 점수로 포인트를 주던 조교와 교수님의 눈으로 보고자 했다. 토론은 나의 말을 누군가에게 설득하려는 중요한 목표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의 3요소를 아래와 같이 말씀하셨다.

말이 3요소이지 사실 차지하는 비율은 너무나 차이가 크다. 설득의 우선순위는 이렇다. 첫째로 신뢰감과 호감, 에토스이다. 사람을 믿으면 그 어떤 논리도, 감정도 통하지 않는다. 특정 후보가 좋으면 그 어떤 망언에도 지지하는 것처럼...


그다음은 사람의 마음을 자극하는 감정이다. 이성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토론 수업에서도 밤을 새우는 노력과 충혈된 눈동자를 보았을 때 사람들의 공격이 줄어들었다. 슬픈 건, 설득에 가장 중요할 수도 있지만 가장 낮게 차지하는 비율인 로고스, 즉 논리다. 즉, 말이 돼야 한다.


어제 나는 4명의 후보의 '로고스'에 집중해서 바라보았다. 말이 되는 걸까? 그 공약이 현실적으로 만들 수 있는 걸까? 특정 집단에게 지나친 특혜가 아닌가? 청년세대처럼 특별한 보호와 지원이 필요한 세대를 제외한다면 어떤 공약은 특정 집단에게 지나친 이익을 보장하는 것처럼 보여줬다.


논란이 많은 이슈 영역보다는 특정 영역에 집중해서 보았다. 나는 '안보'와 '환경', '일자리'에 특히 관심이 갔다. 논란이 있는 분야가 아니라 정말 후보자 본인의 생각과 판단을 제대로 지켜볼 수 있는 영역이었다. 짧은 답변에도 여실히 민낯이 드러났다. 준비 시간을 꽤 들였을 첫 토론인데, 시작하자마자 논리는커녕 용어부터 삐걱거리거나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 말을 돌리는 경우도 있었다. 전형적인 '치고 빠지기' 수법.


평소 대선주자들의 영상이나 논란 등의 이슈를 잘 찾아보지 않았다. 어제 토론은 백화점처럼 한 자리에서 쇼핑하는 마음으로 4명을 동시에 비교하고, 관찰할 수 있는 재밌는 시간이었다. 답변 시간이 짧아서 그건 너무 아쉬웠다. 누군가에게는 그래서 더 좋았겠지만 가능하다면 한 질문에 5분씩 답변 시간이 주어졌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게는 행복이고, 누군가에게는 불행의 시작이 되겠지만 여실히 드러날 것이다. 누구에게 투표하는 것이 코로나 이후 세상을 이끌 수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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