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것을 넘어선 탁월함에는 다름이 있었다. 이번 동계올림픽을 보다가 '최민정 존'이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곡선의 스케이팅을 하는 방법과 다르게 최민정은 직각의 스케이팅을 하면서 경쟁의 틀을 벗어나버린다. 진정한 마이웨이를 달렸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탁월함은 독보적인 것, 남과 다름이 비결이었다.
어제는 연극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한 주 결석의 여파는 컸다. 이미 배역도 정해져 있고, 대사 중간중간이 수정이 들어간 상황이었다. 당황한 얼굴로 서있는 결석생에게 선생님은 사람들이 연습하는 동안 대본 하나를 빌려서 빨리 베끼라고 말씀하셨다.
귀여운 외모의 열정 있는 남자분의 대본을 베끼다가 깜짝 놀랐다. 본인 배역의 대사 중간중간에 감정선의 변화를 화살표로 사이사이 표시한 것을 보았다. 이건 1등의 비법 노트를 훔쳐보는 느낌이었다. 배우는 모습도 열정적이라고 생각했는데, 확실히 대본부터 달랐다.
거기다 배역도 딱이었다. 연극 '리어왕'은 믿었던 두 딸에게 배신당하고, 미워했던 막내딸에 대한 후회를 하는 내용의 비극이다.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 나는 리어왕의 이름만 알았을 뿐, 내용은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대본을 쭉 읽어가다가 에드먼드 역할의 대사가 시선이 고정되었다. 정말 상식을 뛰어넘는 표현에 당황스럽고, 재밌었다. 주인공보다 더 마음에 가는 캐릭터였다.
내가 베꼈던 대본의 남자분은 '에드먼드'역할이었고 매력적으로 위에 대사를 소화했다. 잘은 모르지만 나와 같은 취미 생활이 아닌 뭔가 제대로 배움을 시작하는 사람 같았다. 배우려는 진지한 태도, 눈빛 연기, 집중력은 연기를 모르는 내 눈에도 보였다.
반대로 나는 시작은 했지만 대강 대강하는 평소 습관이 묻어 나왔다. 시작했다는 도전에 만족하고 거기에서 멈춰있는 나, 대본을 베끼다가 많은 생각이 스쳐간다. 에드먼드 님에게 부끄럽기도 하고, 배울 점이 많았다. 이왕이면 제대로. 시작점에서 멈춤 금지!
역할 중에 악역을 맡고 싶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독하게 말해보고, 에너지를 뿜어내는 역할을 해보고 싶었다. 비극의 특성상 악역이 한 명이 아니라서 운 좋게 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전 보았던 드라마 '악마 판사'에서 김민정배우님이나 장영남 배우님처럼 발음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연극은 큰 목소리로, 몸짓으로 감정을 크게 표현해야 했다.
연극은 특히 사극은 어려웠다. 거기다 연극반에서도 나는 홀로 최고령이다. 20대의 사람들 사이에서 우두커니 이모 느낌의 내가 섞여 있다는... 20대에 나는 문화적인 경험도, 관심도 없었다. 그저 친구들과 커피숍과 식당을 분주히 오고 갔는데, 같은 반에 있는 사람들은 굉장히 앞서간다. 나와 비교할 수 없는 여기 사람들.
소심한 마음과 빡빡한 시간으로 대화는 해보지 못했지만 늘 부러운 마음으로 바라본다. 20대부터 채워나가는 문화적 경험과 체험 자산은 지금 내 나이가 된다면 얼마나 커질까? 이런 마음을 조용히 감추고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신기한 건 사람들과 있을 때는 내향성이 극대화되어 소심하게 있다가도, 대사를 하는 순간에는 큰 소리가 쉽게 나왔다~당황스럽지만 재밌었다. 선생님도 살짝 놀라신 느낌이었다. 평소 분위기와 다른 발성은 내가 원했던 바였다. 평소와 달라지고 싶어서 연극반에 들어왔으니까.
그리고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리어왕 아빠~미안해요! 20대 아빠보다 훨씬 나이 많은 딸이라니 ㅠㅠ(눈 감고 연기해도 화 안 낼게요)
전반부의 아빠와 딸의 사랑스러운 대화는 20대 귀여운 여자분이, 후반부의 화내는 대사는 스케치북이 하니, 마음 풀어주세요. 얼굴 보면서 배신감 느끼고, 화내기에 더 좋을 수도~완전히 몰입되실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