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느림보

움직여야만 보이는 것

by 그럼에도
너 자신을 알라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 님의 말씀은 짧고도 늘 어렵기만 하다.

나도 나를 잘 알지 못한다. 지금의 나이에도 나의 일부분을 알았고, 다른 부분은 알아가는 중이다. 그런데 종이에 나를 소개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그래서 자기소개서를 써야만 했던 회사와 대학원이 싫었다. 그렇지만 '합격'이라는 목표와 약간의 기술을 더해서 적당한 단어와 내용 구성으로 어려운 고비를 통과했다.


회사에서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교육 이외에 여기저기에 교육 채널과 연계된 프로그램이 있다고는 알고 있지만 웹사이트를 열어보지도 않았다. 이따금 제목만 보고 지나기를 몇 년이다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교육이라는 원대한 목표는 아니어도 '영어 타이핑'이나 늘릴 겸 교육내용을 워드에 타이핑해보는 것은 어떨까? 갑자기 왜 이런 기특한 생각이 났는지 모르겠지만 딱 2번 적어 보았다.


처음은 지난주 월요일, 두 번째는 오늘이었다. 영어 싫어하는 나라는 사람은 A4 한 장도 되지 않는 작은 분분량을 쓰고 만족해했다. 겸손하게 영어를 못하는 게 아니라, 정말 울렁증이 있다. 지금 상황에서 외국에 여행 갈 일도 없고, 업무상 출장 갈 일은 원래 없다. 그러니 정말 필요한 능력은 어쩌면 회화보다 잘 읽고, 잘 쓰기가 아닐까? 한국에서 영어를 쓸 기회라는 것은.

웹 페이지를 워드에 따라적기

쉬운 단어로 쓰였을 것 같은 영어 페이지를 펼쳤다. 이름하여 'Career management'. 4~5년 전에 만든 것이었으며 코스도 짧아 보였다. 커리어를 위해서가 아닌 순수한 영어 타이핑 능력 향상과 영작을 위해 옮겨 적다가 '현타(현실 자각 타임)'이 왔다.


Regularly take the time to know yourself!


나를 알기 위해 시간을 가져라!


나를 안다는 것은 고등학교 때 문과와 이과로 나뉘는 시점부터 했던 고민이었다. 흥미는 이과, 수학 점수가 가리키는 것은 문과. 예전의 수능 시험은 전과목을 잘해야 하니, 나는 수능 점수를 더 잘 받을 수 있는 문과로 선택했다. 나이가 훌쩍 많아진 지금도 비슷하다. 꿈과 현실이라는 경계선처럼 생각은 크고, 반대로 현실은 왜소하다.


나를 아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방법은 오로지 '경험'이다. 대학교에 갔을 때 어른들이 '놀아본 사람이 결혼도 잘한다', '어릴 때 많이 놀아봐라' 등등의 말씀을 하셨는지 이제야(?) 이해를 하게 된다. 그때 내가 생각하고, 놀았던 방식이라고는 친구들과 커피숍을 가거나, 친구 집에 놀러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수다를 떠는 것이 전부였다. 놀았지만 '경험'이라는 체험이 빠져 있었다. (요리체험은 제외하고)


20대, 30대 초반에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과의 인간관계, 문화적 경험,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과 공부 등등 일련의 시간이 생략되어 있었다. 나름 사람들과 잘 지낸다고 생각했지만 소수의 친구들과 많은 회사 사람들과만 공유하는 생각과 경험이란?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했다고 생각했지만 정확히는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왔다. 다만 그 우물이 꽤 컸다. 아쿠아리움 수준이라서 내가 갇혀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30대 중반에 대학원에 진학했다. MBA라는 곳은 재밌는 공간이다. 다양한 업계의 다양한 부서 사람들과 한 자리에서 수업을 듣는다는 경험이. 고등학교 때부터 문과와 이과, 대학교는 같은 전공이거나 같은 수업, 회사에서도 같은 팀 사람들만 보는 단조로움이 20년째였다. 이렇게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함께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신선함과 충격이었다. 설레는 마음보다 과연 내가 잘할까라는 부담감도 컸고, 과정도 힘들었다. 언제나 수동적이고, 어떤 자리에서 역할을 한 번도 맡아보지 않았는데... 여기에서 이상한 일이 시작됐다. 수업이나 모임에서 반장이나 조장 같은 역할이 주어졌다. 그러다 학생회라는 적극적 참여 공간까지 접수하게 되었다.


졸업을 할 때쯤에는 이런 일련의 경험을 깊이 후회했다. 그냥 조용히 학교 수업만 들을걸. 비율로 볼 때, 즐거움이 3이라면 피곤함과 힘듦이 7이었다.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거기다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인맥으로 사업을 하는 사람도 아닌데 내가 왜 이렇게 살았을까? 일만 하고 남는 건 후회와 번아웃이었다. 등록금 내고 사서 고생까지 하다니 ㅠㅠ 남들은 이직에, 결혼에, 인맥으로 업무에 도움까지 받는데, 나에게 돌아온 건 졸업장 하나가 전부였다. 인맥이라는 이름은 졸업과 동시에 조용히 로그아웃되었다.


어리숙한 나와 일련의 문제들은 브런치 글감으로는 좋았지만 마음에는 상처가 나고, 일부는 작은 흉터로 남았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20대에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늦게라도 경험해본 게 다행히 아닐까?


다양한 사람과 경험은 나름 의미가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일정한 공통점이 있었다. 화나게 하거나 뒤통수를 치는 사람들도 일정한 특징, 즉 패턴이 있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은 정말 소수라는 것과 그러한 매력에 내가 오래 감동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나의 생각과 기획하는 방법이 주변과 많이 다름을 알 수 있었고, 또 그러함이 자신감이 되었다. 학교 행사를 백화점 문화센터의 형식으로 기획하고 진행해보았다. 회사에서 해보지 않았던 경험이었다. 평소에 문화센터에서 원데이 클래스를 좋아하던 취향을 학교라는 공간에 적용해보았다. 그런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더해지고 새로운 진행 방법을 보면서 많이 배웠다. 유튜브나 매체에서 보았던 일들을 내가 만들다니!


보람도 있었지만 그때 결심한 게 있었다. 준비 과정과 끝 마무리에서 힘든 일들이 많았다. 사람에게 배신감도 크게 느꼈고, 나는 그저 일할 때만 동원되는 존재라는 사실에 충격이 컸었다. 다시는 어디에서도 이런 역할을 맡지 않겠다고. 좋은 기회가 있다면 구성원으로서만 활동하겠다는 결심, 그 결심을 오늘 수정했다.


코로나 환경이라 쉽지 않지만 소소한 문화체험을 기획하고 진행할 수 있는 기회에 도전했다. 막상 도착해보니 나는 최고령이었다ㅠㅠ.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20대 중반으로 보였다. 나는 너무 일찍 태어난 것 같다. 나의 관심사와 흥미는 실제 나이와 10살 이상 차이가 난다는 불편한 진실. 그래서 또래 사람들과의 대화가 어색하고 불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오늘 만난 사람들에게도 불편함을 주었을 수도 있고...

나를 알기 위해 새로운 경험을 해보기로 했다. 분명 이번에도 선택을 후회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후회도, 기쁨도 체험 자산이 되어서 인생의 일부를 채워나갈 것이다. 대학원 때 눈여겨봤던 피아노도, 코딩도, 법률도(개인정보법의 존재를 배웠다), 그때 시작했던 책모임이 지금의 일상이 되었다. 인간관계의 분노는 심리학 책과 인강을 열심히 보고, 읽게 되는 원동력이 되었다.


방역지침을 준수하며 소소한 배움을 만들어가고 싶다. 나를 알려면 일련의 체험과 사고가 동반되어야 한다. 그때 20대의 나에게 되돌아간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스케치북~네가 늘 자신 없고, 불안하고, 나라는 사람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몰랐을만해. 그때 너는 스스로의 생각과 체험이 없이 사람들의 말들로 인생의 중요한 선택을 했으니까. 더 늦고, 더 헤매는 이유는 너만의 기준이 없었으니까. 틀려도 된다는 그런 배짱이 없었으니까.' 빨리 적응하는 것보다 느려도 내 길을 찾았더라면 좋았겠지만 이미 떠난 시간.


'좀 단순해지고, 더 재밌고 가벼워지면 안 될까?' 요즘 나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다. 갈수록 묵직해지고, 팍팍해지는 머리와 마음을 슬림하게 만들어주고 싶다. 마음도 몸처럼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그건 3월 다가오는 봄에 대한 예의가 될 것이다. 겨울바람 같은 차가운 마음을 고이 보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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