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느림보

비주류, 유학 그리고 종교

by 그럼에도


인생은 요리와 같습니다.
좋아하는 게 뭔지 알려면
일단 모두 맛부터 봐야 하죠.

- 파울로 코엘료, '마법의 순간' -


설 연휴에 연극을 보러 갔다. 평소 연극을 즐겨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연극 아카데미에 수업을 듣고 연극에 관심이 생긴 경우였다. '리처드 3세'는 배우 황정민이 연기하는 모습을 라이브로 볼 수 있다는 것과 악마 판사에서 빠져들었던 배우 장영남이 출연했기에 더 몰입해서 보았다. 예전에 그저 대사와 연기가 전부라면, 이번에는 어떻게 발음하는지, 몸짓을 어떻게 하는지에 더 관심이 갔다.

1월에는 임현정 피아노 콘서트에 다녀왔다. 그 이유는 내가 연주하는 곡을 유튜브에서 피아니스트 임현정이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반해서였다. 난 모든 게 정반대였다. 그 분야를 좋아하다가 배운다는 내용의 시나리오가 아니라 배우다가 그 분야가 더 궁금해지는 시나리오를 가진 사람이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아는 나와 현실 세계의 나는 이렇게 달랐다. 이러한 일련의 경험 속에서 나라는 사람을 알아가고, 배워간다.


나는 비주류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비주류와 주류의 기준은 철저히 '나'와 '내 주변 환경'에 근거한다. 내 주변은 나를 제외하고 모두 기혼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1~2명의 소수 미혼이 있지만 워낙 다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기에 결혼 유무로 비교할 수 없다. 흔히 말하는 금수저로서 늘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으니까.


나는 주변에서 여러모로 제외되고, 소외된 이웃이다^^;; 회사에서도, 회사 밖에서도 어느 순간부터 대화에서 소외되었다. '시댁과 육아 talk'에 동참할 수 없다는 것은 과거에 아무리 친했던 사이였을지라도 휴전선 철조망 같은 장벽이 세워졌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장벽은 더 높아져 가고 있다.


어떤 날은 비주류의 삶을 산다는 이유로 만만하게 대하다가, 어떤 날은 나의 문화생활에 시기심을 드러내며 발톱을 보이는 고양이 같은 자세로 다가온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도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걸까? 가끔은 화가 치밀어 오를 때도 있었다.


본격적으로 소외되기 시작하고 얼마 후에 코로나가 찾아왔다. 이때부터 나는 주변 사람들보다 더 심각하게 불안해했고 무서웠다. 한두 달 지나고 이런 답답한 속마음을 친구에게 털어놓았을 때,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챙겨야 할 가족의 마스크 숫자만큼 걱정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나의 예상은 완전히 틀렸다. 기혼의 친구들은 의외로 침착했고, 어린이집에 보내지 못하는 것에 분통을 터트릴 뿐이었다. 너무 힘든 육아가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웠던 것이다.


그때는 코로나에 대한 공포와 어쩌면 닥쳐올지도 모르는 '구조조정' 이슈를 말해버린 나 스스로가 창피했다. 그리고 궁금했다. '가정을 이루면 마음의 불안이 작아지는 걸까?'라는 생각이 불쑥 떠올랐다. 나의 민감성이 유난했는지도 모르지만 대화에 참가한 친구들도, 회사 동료들도 모두 나만큼 힘들어하지 않았다.


내가 유난히 다르다고 느낀 시점이었다. 그전에 신종플루도, 사스를 겪었을 때도 나는 그리 불안해하지도 당황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와 정반대였다. 가장 불안해했고, 가장 뉴스 기사에 빠른 사람이었다. 결국 감염내과 교수님의 강의 내용을 정리하고, 일부는 업무에 활용하는 수준까지 다가갔다. 같은 시기인데 나는 정말 유별나게 달랐다.


그 유별난 행동 중 하나는 사람들과 (회사사람들과)사적 모임을 거의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당연히 기대했다. '미혼이면서, 낯선 지역에서 새롭게 근무를 시작했다 = 아무 때나 불러내도 된다'라는 동의어로 생각했다. 거기다 평소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과 '프로 참석 러'라는 평판이 더해졌으니, 나는 퇴근 시간 이후에도 회사 사람들의 부름을 받는 위치였다.


2020년 2월을 기점으로 'NO, 회사 모임'을 선언했다. 처음에는 바이러스를 두려워하는 건강염려증으로 알다가 작년부터는 사적 모임을 극도로(?) 피한다는 것을 대놓고 선언했다. 소심쟁이가 프로거 절러로 바뀐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더 이상 매이지 않겠어!


사기업이지만 장기근속이 당연한 회사였다. 내가 신입이던 시절, 선임 선배님들은 폼나지 않지만 안정적인 장기근속을 자랑하고 회사 복지를 마음껏 활용하셨다. 명예보다는 실리를 추구한다고 할까.


내가 과장을 넘어서고 차장이 된 시점에 회사는 더 이상 장기근속이 가능한 곳이 아니었다. 당연히 아는 사실이었지만 코로나로 인해서 제대로 현실을 바라보게 되었다. 회사에서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했던 것은 낮은 자존감이라는 내부 요소 외에도 장기근속에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싶었던 속마음이었다.


그런데 장기근속이 불가능하다면? 내가 언제까지 다닐지도 모르는데 예의상(?)이라는 단어로 불려 다닌 모임과 대신 떠맡은 업무가 억울하고, 속상했다. 싱글은 일을 취미로 하나? 싱글이라는 조건은 다른 사람들이 기피하는 지역과 추가 업무에 내 이름은 1순위로 불려졌다. 인정도 받지 못하고, 승진과도 관련 없는 ‘일복’ 당첨!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역으로 멘털이 강해졌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올라왔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까지 모두 챙기던 경조사비가 10년이 넘어서야 이제야 생각났다. 난 결혼을 하지 않았으니 돌려받은 일은 없었다. 여기저기에 뿌려진 나의 월급들~10년 후에도 볼 사람이 아니면, 경조사를 챙기지 않기로 했다.


불편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사적인 이야기를 최소화하고 업무 이야기만 정확히. 나의 포지셔닝이 바뀌었다. 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에 '호기심 천국'을 만들어가기로 했다. 난 이 지역에 정확히 유학을 왔다고 다르게 생각하기로 했다. 아는 사람도 없고, 새롭게 알아가야만 하고. 왜 자꾸 20살의 내가 떠오르는 걸까? 자꾸 20살, 서울에 올라왔던 날 차가운 풍경이 떠오른다. 어느 날 운전 중에 갑자기 깨달았다. 면단위의 작은 동네에서 서울에 올라왔던 막막하고 외로웠던 내가 왜 떠올랐는지. 지금 낯선 지역에 혼자만 던져진 장면이 과거 20살의 나를 불러들였다.


그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나이와 돈이다. 정신연령(?)은 비슷하지만 용돈 대신 월급이 달랐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취향을 알아가고 문화를 누릴 수 있게 해 준다. 천원이 아쉬웠던 대학생과 지금의 나는 다를 수밖에.


낯선 근무지를 '유학'이라는 관점으로 바꾸어 보기 시작했다. 그러니 낯선 사투리도, 풍경도 웃으면서 바라보게 되었다. '내가 언제 이렇게 이 지역에 살아볼 수 있을까'라는 마음을 갖고 보니, 눈에 콩깍지가 씌웠다. 오히려 더 알아가고 싶었다. 옆 동네 재래시장에는 한 달에 2번은 가본다. 제철 야채나 생선도 사보고, 유튜브를 보면서 요리를 배워간다. 서울에서도 안 가봤던 독립서점에도 가보고, 미술관도 가보고, 가끔은 일부로 버스를 타고 시내를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톳으로 만든 톳전

당연한 출근길에서도 새로움이 보인다. 이 지역에서 많이 쓰는 단어가 보이고 동네 곳곳에 문화 행사도 눈여겨보게 된다. 그렇게 보니 외로운 날은 있지만 심심한 날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하나 둘 새로운 분야를 시작했다. 시작한 게 많은데 결과물은 부족하다. 'N 잡러'가 되보겠다고 도전한 이모티콘 그리기 강좌도, NFT 강좌도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다. 유일하게 진도 나가는 것은 브런치 글 쓰기... 올해 안에 학위 따는 것을 목표도 가까스로 따라가고 있고... 비주류의 삶을 내밀하고, 단단하게 만듦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22년 새로 돋아나는 고무나무 새싹

비주류의 삶, 현재 나이에 미혼으로서 살면서 좋은 점은 나에게 충실한 것, 모든 시간과 자원을 나에게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점은 역시나 자유로움으로 인한 게으름과 무기력이었다. 그리고 순간순간 찾아오는 불안감도. 가장의 책임감을 말하는 사람들은 그 책임감과 무게가 원동력이 되어서 더 열심히 일하는 것 같다. 회사 안에서도, 온라인 세상에서도 '~맘. ~파파'들의 활약은 그래 보였다. 무게를 분담할 수 있는 가정은 코로나보다 더한 위기에도 늘 단단했다. 물론 화목한 가정이라는 전제 하에.


현재 '유학 기간(?)'인 지금의 나는 유학 전보다 영어가 늘지는 않았지만^^;; 마음에 종교가 생겼다. 그건 나. 나를 믿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학 기간 학업에 열중하기로 했다. 곧 유학 기간이 끝나간다. 과정에만 만족하지 말고, 유학의 결과물을 만들 시간이 다가온다. 그리고 코로나와도 이별할 시간이 다가온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터널에도 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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