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는 자연스러운 것이고 화가 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슬기롭게 화를 내야 한다.
그 차이는 감정의 경계선을 그을 줄 아느냐, 모르느냐에 달려 있다.
제멋대로 선을 넘나드는 감정을 컨트롤하고 싶다면 경계선을 긋자.
p.94
마음이 헝클어지고 감정이 엉망일 때, 머릿속이 복잡하고 생각이 많을 때, 스트레스와 분노가 가슴을 짓눌러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 때, 그냥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와 천천히 혹은 빠르게 걸어 보자. 생각보다 많은 것이 좋아질 것이다.
- 김경일, '적정한 삶' -
불안이 일상을 삼켜버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의 투표권 행사가 시작된 것은 5년 전부터였다. 그만큼 정치에 무관심했고, 무지했다. 재미가 없었다. 그런 정치가 그럼에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투표의 시작이었다. 나름 중도, 부동층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정당에도 특별한 관심이 없었던.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누가 좋다, 싫다,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었다. 특히 한 분의 공약은 현재 나의 먹고사니즘과 엄청난 관련이 있었다. 그분이 당선되었다. 그리고 나는 요 며칠 불안과 우울의 쓰나미가 덮쳤다.
MBA와 자기 계발서의 공통점이 있다. 그건 바로 '일반적인 사례'를 중심으로 쓰이고 다룬다는 것이다. 경영전략 시간의 발표 내용은 회사만 다르지, 결론은 비슷했다. 회사 상황이 어려워지면 구조조정을 하고, 조직을 슬림화하며, 에자일 한 의사결정과 실행이었다. 잘 나가는 회사는 성공의 이유를 발표했고, 망하고 있는 회사는 구조조정이 대안이라고 발표했다.
일반적인 경우는 그랬다. 회사가 매우 잘 나가는 경우와 같은 이례적인 상황은 다뤄본 적이 없었다. 그런 경우를 맞이하는 일은 좀처럼 없으니까. 회사는 어려워야만 구조조정을 하는 것일까? 정답은 잘 나가도 구조조정을 할 수 있다. 직원이 더이상 필요하지 않다. 즉 너무 어렵거나, 너무 잘 나가는 양 극단의 상황의 결론은 동일하다. 이런 상황을 어떤 교수님도 설명해주신 적이 없었다.
회사는 팬데믹 상황이 호재가 되어 호황을 누리고 있다. 반대로 호황을 누리는 회사의 직원은 감원을 걱정하고 있다. 사람이 없어도 잘 굴러가는 시스템이 되었으니까. 한 후보의 발언은 고용 유연화 및 OO공약을 주장했다. OO공약의 회사는 내가 근무하는 곳이다. 안 그래도 잘 나가는데... 굳이 도와주실 이유가... '사장님을 위한 학문'이라고 내 맘대로 부르는 MBA 관점으로 보자면, 감원의 규모를 더 크게 할 수 있는 회사의 호재가 될 것이다. 이래저래 회사에게는 '나이스 타이밍, 시의적절, 나이스 샷' 등등으로 부를만한 소식을 한 아름 안겨준 분이 대통령이 되었다.
누군가의 제보에 따르면 감원은 하반기라고 하니, 온전한 월급이 입금되는 시간은 6개월도 남지 않았다. 자기 계발서 좀 읽었다고 자부하던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나는 우울했고, 무기력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걸 예상했으면서도 막상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 패닉이었다.
아무리 슬프고 힘든 일이 찾아와도 사라지지 않던 식욕이 사라졌다. 예민한 미각의 일부가 작동하지 않았다. 코로나 후유증 중에 '미각 상실'과 '브레인 포그(Brain fog)'라고 하는 인지 기능 문제가 생긴다던데, 지금 나는 코로나 없이도 인지 기능과 이성의 일부가 마비된 것 같았다.
주중 근무를 마치고, 주말에 만난 반려견들과 이틀을 내리 걷고 또 걸었다. 걷다가 경칩을 지나서 나온 두꺼비 가족들도 만나고, 봄비도 맞았다. 놓아버린 정신이 되돌아오지는 않았지만 한숨은 멈출 수 있었다.
코로나라는 위기로 인간관계를 되돌아보고 정리하는 기회가 되었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가까이 들여다보는 시간도 되었다. 남들에게 들었거나, 간접 경험, 그냥 눈으로 보는 경험에서 '체험'의 시간도 맞이했다. 팬데믹의 끝은 구조조정이 이었다.
완벽한 인생의 구조조정이 시작되는 건가? 이직하면 그만일 수도 있지만 나는 자생력을 갖고 있지 않다. 한 회사에서 오랜 시간, 한 자리에 있었다. 소홀한 자기 계발이라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현재를 침범했다.
애매하다. 재능도 애매하고, 나이는 많고, 거기다 재테크가 안되어 있으니 '노동 소득'에만 기대는 내가 새삼 한심했다. 갑자기 유부 동기들이 부러웠다. 퇴직금을 받고, 소일거리를 해도 삶에 부담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 마음이 궁해지니, 여러모로 소심해지고 생각이 삐딱해진다. 갖고 있지 않은 것에 더 눈이 갔다.
"정신 차려~스케치북!"
일단은 일상의 루틴을 다시 찾기로 했다. 남은 몇 달의 시간을 미친 듯이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동안의 자기 계발은 양심적으로 백화점 문화센터를 다니듯 가볍게, 재밌게 했었다. 이제는 치열하게 해야 하는데, 확실한 분야를 잡지 못했다.
김영하 작가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사랑받는 이야기의 주인공은 3요소가 있다고. '충분한 시련, 확실한 목표, 적어도 1번 이상의 기회'. 지금 나에게 시련은 차고 넘친다. 다른 점은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서 목표가 모호하다. 이직이 가능할지, 남은 시간 동안 창업 아이템을 찾아야 하는 것인지 여러 모로 헷갈린다. 둘 다 가능성이 높지 않다. 그래서 더 우울하고, 못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3월의 봄날에 마음에는 12월 한파가 불어닥쳤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을 쓸 수 있는 주인공으로 살 수 있을까? 그게 나일 수 있을까?
반려견들도 내 인생도 책임지려면 돈이 필요하니까. 돈 벌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창의적이다. 내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알고리즘이 유튜브인 것처럼. 가장 상업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 그리고 정치가 내 삶에 끼치는 영향은 강력하고 빠르다. 평소 혜택에서 소외된 싱글로서 나와는 무관한 세상 같았다. 청약, 청년 주택 등등 나는 이런저런 혜택에서 제외되고 순수하게 납세 의무자로만 보였다. 정책을 들여다보고 신중하게 결정했던 선거였지만 결과는 나에겐 혜택이 없으며, 불이익은 컸다. 현실은 잔인하다.
지금부터의 자기 계발은 절박함이다. 똑바로 살아야겠다. 너무 늦었지만 더 늦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