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느림보

일머리처럼 글머리가 있다면(문해력)

by 그럼에도

몇 달째 같은 곡을 연습하고 있다. 하프를 피아노로 연주하는 것 같은 아름답고, 몽환적인 곡인데 내가 연주하는 소리는 마치 군악대의 음악처럼 딱딱하게 들린다. 레슨도 받고 있지만 그럼에도 제자리걸음이다. 유튜브에 마침 연습하는 곡의 스킬과 관련한 영상이 있었다. 레슨 영상을 보고 나니 들었던 생각이 있었다.


나는 악보의 계이름을 따라가기도 바쁘고, 손은 느리다. 작곡가가 전달하고 싶은 음악이 아니라 악보에 쓰인 목적지까지 걷느라 지금 어디를 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바쁘기만 하다. 하프처럼 연주하려면 이미 악보의 음을 모두 외운 후에 손목에 힘을 빼고, 또렷한 소리가 아닌 건반을 가볍게 터치해야 했다. 같은 곡, 다른 느낌의 비결!


피아노 연주는 '문해력'과 정말 닮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ArU7T_i6_-A

JTBD, '차이나는 클라스'- 문해력'

문해력이 중요하다는 말도 들었고, 요새는 문해력 관련 영상을 몇 개 보았다. 단락 중에서 글을 쓴 사람의 전하고 싶은 핵심 문장을 찾는 것이었는데 출연진 대부분이 실패했다. 또는 비슷하게 찾아냈지만 요약을 하기 어려워했다. 책 한 권을 요약해서 정리하고 싶었는데, 늘 그게 어려웠다. 핵심만 추출하는 능력, 그리고 핵심을 짧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능력이 아쉽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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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력이 떨어진다면 살아가는데 문제가 있을까?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걸까?


문해력을 가진 사람은 글의 요약 능력만 갖고 있지 않았다. 글에 대한 비판 능력, 글의 앞뒤를 살피는 '맥락'을 읽을 수 있었다. 흔히 '행간을 읽는다'라고 하는 말처럼. 숨겨진 의미를 보물찾기 하듯 찾아낼 수 있었다.


정보가 넘쳐나고, 거기다 가짜 뉴스가 뒤섞인 세상에서 문해력은 개인의 생존에 정말 필요하다. 또한 문해력이 높은 인재가 많다면 문화적으로 성숙해질 수 있다. 가짜 뉴스가 설 자리가 적어지고, 콘텐츠가 충실한 기사가 많아질 것이고, 독자도 정보를 얻기가 쉬워진다.


굳이 글이 아닐지라도 일상에서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라고 평가받는 사람들이 있다. 눈치가 부족하기보다는 말의 앞뒤와 상황의 흐름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다. 본인이 들었을 때 꽂히는 한 문장에 집착하거나, 단어 그대로 받아 들기에 반어법이나 완곡하게 돌려서 표현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말귀를 못 알아듣거나' , '문해력이 떨어지는 경우'는 개인에게는 비극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희극, 굉장한 메리트, 장점이 된다. 어떠한 지시에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따르게 될 것이고, 누군가가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전달하는 가짜 뉴스를 믿게 될 것이다. '카더라' 험담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전달하고, 본인도 강력하게 믿게 되는 슬픈 알고리즘에 걸려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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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게, 순진한(?)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물건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미니멀리스트'처럼 아름다운 말이 아니다. 한때 교육부 나 OO이라는 사람이 '국민은 개돼지'라는 발언에 그때는 어이없고 분노했지만 시간이 지나서 보니, 말한 이의 의도를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개인이 생각하는 능력이 높지 않고, 그저 납세의 의무나 충실히 지키고, 하라는 데로만 충실히 할 수 있는 정도의 조선시대의 '백성'이라는 명칭처럼 보고 있는 그 사람을. 문해력이 높은 사람은 개인의 일상도, 세상도 변화시킨다. 그런 사람을 기존의 기득권(?)의 입장에서 반갑지 않다. 내 말에 물음표를 제기하고, 틀렸음을 알고 있는 아랫사람 또는 외부 세력이 기분 좋을 리 없으니까. 회사에서 제일 먼저 승진하는 사람이 능력자보다는 줄을 잘 섰다는 특정 라인의 사람들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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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문해력으로 돌아와서 문해력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은 글을 읽어야 한다. 자주, 많이 읽어야 한다. 새해 목표로 책 읽자가 아닌 일상에서 글을 읽는 것이 자연스러워야 한다. 글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사람에게 한 문장의 글을 요약까지 시키는 일은 고문이다. 그렇다면 다시 책을 읽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일상의 짧은 메모 글에서 에세이로, 짧은 단편, 장편으로 긴 글을 읽는 연습을 해야 한다. 글을 읽음으로써 익숙해지고, 작가가 전하고 싶은 말이 궁금해지고, 어떤 장면에서인가부터 깨닫게 된다. 신문 기사를 읽을 때에도 앞뒤를 생각하면 새로운 세상이 보인다.

몇 년 전도 아니고 분명 얼마 전까지도 집값 상승이라는 소재에 경제지는 '벼락 거지, 청년은 집 못 사나~, 대출 규제로 집 못 산다~'라는 기사 제목이었다. 기사를 읽지 않아도 제목부터 자괴감을 주는 이 슬픔 ㅠㅠ. 요새는 같은 집값 상승임에도 '재계발, 재건축 훈풍', '~건축 봄바람&훈풍, 호가 오름'으로 도배가 되어 있다.


같은 경제기사인데 최근 집값 상승에 쓰였던 제목을 기억한다면 '지금 내가 읽고 있는 경제지는 경제지가 아니라 정치 잡지구나'라며 쓴웃음을 짓게 된다. 금융 문맹 벗어나겠다고 읽고 있는 경제 기사에서 갑자기 문해력이 상승하는 이 기분...


현명한 선택에는 많은 재료가 필요하다. 문해력, 맥락, 정보, 타이밍, 선택할 수 있는 분별력과 판단력의 복합적인 결과물이다. 평균 수명이 나날이 길어지고 있다. 더 오래 살아간다는 것은 더 많은 선택을 끊임없이 해야 함을 의미한다. 현명해지고 싶다. 지식과 현명함이 결합된 '지식 자본가'가 되고 싶다. 요새 필사하고 있는 웹페이지 글에서 가장 인상 깊은 말이 있었다.


It's up to you make it happen.


그렇게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나에게 달렸다. 경력 계발에 관련한 글을 필사하고 있는데 마음을 울리는 문장을 만났다. 필사하고 있는 시리즈의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위에 글로 설명할 수 있다. 난 바뀔 수 있다고.




https://www.pinterest.co.kr/pin/95771929566547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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