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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Mar 26. 2022

독박의 기억

에른스트프리트 하니슈, '모기 뒤에 숨은 코끼리'

p.67

 사소한 일에 이유 없이 흥분하는 사람은 없다. 시기적으로 가까운 사건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면 흥분하는 이유를 쉽게 설명할 수 있다. 말하자면 총체적으로 볼 때 사소한 일이 아닌 스트레스 요인이 축적되었기 때문이다. 또는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이 사소한 계기에 부여된 깊은 의미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씁쓸한 마음엔 달콤함이 보약

 이 공식은 모기가 흥분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근본적인 코끼리가 흥분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마치 빙산처럼 처음에는 몸을 감췄던 우리의 코끼리가 막연한 위협적 존재가 되어 우리에게 감지되는 것처럼 말이다.


 최근 문화 공간에서 진행하는 OO소모임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20대 사이에서 내가 끼어도 되나 하는 생각이 있었지만 다른 연령 사이에서 배울 점이 많을 것 같았다. 소모임에서 시에서 지원하는 프로젝트까지 이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좋은 기회지만 조금 걱정이 되었다. 그 프로젝트는 '청년'을 위해서 특별히 준비된 것인데 나는 청년의 나이가... 아니었다.


 운영진으로 참여는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유령 같은 존재다. 운영진이 될 수는 있지만... 어디에도 흔적을 남기기 애매한... 기획을 해도, 티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참여 자체에 의미를 두고, 배움에 동참할 수도 있다. 이름이 뭐가 그리 중요하길래, 내가 이렇게 고민을 할까?


 나이는 '모기'같은 존재였다. 더 큰 불안감은 모기 뒤에 숨은 코끼리였다. 나에겐 과거 '독박의 기억'이 있다. 아이디어를 내고, 일을 진행하고, 결과는 누군가에게 뺏겼던 '재주 부리는 곰'같은 기억. 그런 모종의 아픈 기억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가 이번에 우르르  몰려나왔다. 이번에도 '재주는 스케이북이 부리고, 성과는 다른 사람이 가져가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먹구름처럼 둘러쌓다.

 또 남 좋은 일 하는 거 아닌가? 그럼에도 참여한다면 나에게 어떤 배움의 의미가 있을까?
현명한 선택은 어떤 걸까?


  나이가 들면 저절로 현명한 선택을 쉽게 하는 줄 알았다. 나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매번 선택은 어렵고 과거의 피곤한 기억이 발목을 잡곤 한다. 독박의 기억. 일한 사람은 기억하고, 성과물을 가져간 사람은 기억이 없는 옛날이야기들.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서 나왔던 '낙화'라는 시가 떠오른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아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구절이 떠오른다. 나의 의욕이 과도했는지도 모른다. 올해가 이 도시에 근무하는 마지막 해다. 그동안 코로나로 외부 활동을 극도로 줄여웠는데 올해는 조심스럽지만 서서히 참여해보고 싶었다. 마음이 바빴다. 남은 시간을 카운트 다운하는 지금 내 마음이 가장 큰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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