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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Apr 01. 2022

싫어하는 걸까? 안 해본 걸까?

 괜찮겠어요? 취미로 배우는데 너무 전공자 스타일로 연주하려고 하는 거 아니에요? 이러다 곧 슬럼프 올 거 같은데...

 오늘은 피아노 레슨이 있는 날이었다. 도레미부터 시작한 날로부터 오늘은 3년 정도가 되는 날이다. 중간에 9개월 넘게 피아노를 쉰(?) 기간을 제외하고 보니 대략 36개월이 되는 날이었다.


 3년 동안 어떤 일이 있었을까?

 처음 피아노를 배우겠다고 간 음악학원에서 원장님은 환영을, 담당하게 된 선생님은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당황스러워 보였다. 성인이 배우는 경우도 적지만 보통은 어렸을 때 어느 정도 연주했던 사람들인데, 나는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초등학생처럼 커리큘럼을 이수하게 할 수도 없고, 난감해하시다가 동요 악보 한 부를 복사해오셨다. 그렇게 피아노 기초를 배웠다. 그다음 곡은 동네 서점에 가서 초보도 가능하게 편곡된 쉬운 악보집 한 권을 사 왔다. 나는 거기서 그다음 몇 곡을 배웠다. 그렇게 아주 기초 중의 기초를 연주했다.


 한 번은 친구를 기다리다가 들었던 카페의 음악 소리가 좋았다. 피아노 학원에서 많이 듣던 소나티네 악보를 연주한 곡이었다. 그다음 날, 소나티네 악보를 서점에서 샀다. 선생님께 배우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을 때, 내 또래의 선생님을 또 당황시켰다. 그중에서 가장 쉬운 곡 위주로 골라주셨고, 선생님은 답답함을 참아가며 가르쳐주셨다.


 한 마디로 나와 같은 경우는 거의 없으며 선생님에게는 역대급 수강생이었다. 다음 등록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눈빛이 강하게 느껴질 만큼. 피아노가 재밌다가도 어렵고, 머리로 악보는 이해했지만 30대 후반의 딱딱한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학원에 들어온 첫날, 선생님도 절대로 못 친다고 했던 곡을 학원에 온 지 6개월 만에 독학으로 완성했다. 깜짝 이벤트로 선생님을 놀라게 했다. 


 어렵게 배운 곡을 오래 쉬다가, 다시 시작하고 얼마 안돼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상을 뒤흔들었다. 나는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 지금 다니는 학원은 이런 나의 상태를 거의 모르는 상황이었다. 전에 배웠던 악보로 보았을 때 어느 정도 연주한다고 판단하셨던 것 같다. 나의 솔직 토크와 느린 왼손의 여파로 곧 아셨지만...


 성인이 악기를 배우는 경우 대부분은 재즈 피아노를 배운다고 한다. 악보도 비교적 쉽고, 취미로 적당하다고 했다. 그전에 모든 학원은 나에게 재즈를 권유했지만 그럴수록 클래식이 배우고 싶었다. 평소에 클래식 음악은 고사하고 발라드보다는 걸그룹, 록 음악을 즐겨 듣는다. 학원에서 다른 수강생들 음악을 듣다 보니 나도 초등학생, 중학생처럼 클래식을 배우고 싶었다^^;; 


 오늘 원장님의 만류에도 한 번 도전해보겠다고~다음엔 쉬운 곡으로 해보겠다고 말씀 드렸다. 나와 같은 경우는 원장님 인생에도 처음 경험해보는 유형이라고 하셨다. 기초 과정도 없이, 유튜브에서 듣기 좋았던 클래식 악보를 사오고, 배우고 싶어하는^^;; 지금 악보는 취미생과 전공생의 중간 과정이라고, 당황스럽다고 하셨다. 


 난 늘 주변을 당황시키는 그런 고유함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가장 싫어하는 과목에 등수를 매기자면 

1. 체육  2. 음악  3. 미술  4. 수학 5. 물리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대학교 합격보다 위에 다섯 과목을 다시 배우지 않는다는 게 더 좋았다.


  지금은 오랜 시간 정말 싫다고 느꼈던 것, 해본 적도 없는 것에 눈과 마음이 간다. 사람 일은 모른다더니, 그게 나였다.


 피아노 레슨이 끝나고, 줌으로 프로크리에이트 앱으로 그림 그리는 과정을 구경했다. 그렇게 싫어하던 음악과 미술을 하고, 요새는 만보 걷기 미션으로 여기저기를 걸어 다닌다. 집에서는 엘베보다 계단을 이용할 만큼. 전에는 움직이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나란 사람이 요새는 많이 걷는다. 손이 가볍거나 낮 시간인 경우에는 지하철 한 정거장 먼저 내려서 걷는다. 도시는 칙칙한 회색빛인데 봄을 맞아서 파스텔 색으로 바뀌고 있다. 건물 옆으로 벚꽃과 동백꽃이 화사하다. 걷다 보면, 아무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아진다. 예쁘다는 건, 정말 매력적이다.


 그동안 내가 정말 싫어한다고 생각한 건 정말 싫어서일까? 


 오래 미워했던 동글이. 물론 나를 곤경에 빠뜨린 특정한 사건도 있었지만 난 여러모로 동글이를 부러워했다. 스타일링과 대화 센스, 환하게 웃는 미소가 그랬다. 분명 잘못한 행동이 많은데, 막상 얼굴 보고 이야기하려고 하면 정말 스무스(?)하게 넘어가는 동글이에게 당황한 건 나였다. 일은 내가 다 해놓았는데, 막상 대놓고 말하자니 속 좁아 보이는 느낌이랄까? 어떤 면에서는 동글이가 부러웠다. 내가 갖고 있지 않은 능력이, 매력이. 동글이에 대한 내 마음에는 미움과 질투가 섞여 있었던 것 같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보니.


  최근 몇 년 취향과 경험을 쌓아가면서 깨달은 점이 있다. 나는 해보지 않은 것을 당연히 못할 것이고, 당연히 싫어한다고 오해하고 있었다. 그런 나만의 frame이 스스로를 가두고 있었다. 깨달았을 때는 지금보다 어렸던 내가 밉기도 했고, 안타깝기도 하고, 타임머신이 있다면 돌아가서 로또번호만큼이나 frame을 고치라고 말하고 싶다.


 정말 좋은지, 나쁜지는 경험으로만 알 수 있다. 막상 좋아 보였던 것, 사람들이 다 좋다고 추천했던 것 중에 나와 맞는 것은 많지 않았다. 사람들과 나의 기준점이 너무나 달랐다. 그래서 부산에서 계약한 집 주소에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었나 보다. 서울 사람들이 부산에 오면 집을 얻는 동네는 늘 바닷가 근처인데, 나는 내륙 깊숙이~사람들과는 확연히 다른 취향이었다. 문화시설, 교통, 치안, 그리고 밤에 조용한 동네가 나의 첫 번째 조건이었다.


 집에 이사 온 후에 알았다. 내가 생각한 조건은 결론은... 우연의 일치인지 학군이 좋다는 곳이었다. 아이도 없는데, 내가 생각한 조건이 학군과 일치할 줄은 몰랐다... 나만의 취향을 발견했다. 수도권에서는 어림없을 일이지만^^;;


 좋은 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류시화 시인의 책 제목은 한 번 보고도 바로 마음에 새겨졌다. 좋은 지, 나쁜지는 경험과 시간으로만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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