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금의 여행지는 도서관이었다.
퇴근과 동시에 이 도시에서 가장 큰 도서관으로 향했다. 1시간가량 책을 필사하다가 잠이 들었다. 그리고 한 시간을 숙면하고 일어나서 잠깐 노트북을 보고 나오는 길이다.
이 도시에 와서 도서관에서 책을 보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나에게 도서관이란 사실은 열람실에 불과했다. 과제나 숙제를 하러 오는 장소가 도서관이었다. 동네 북카페도 가끔 가보았지만 도서관의 분위기가 좋아서 열람실 이용을 위해 분기에 한 번 꼴로 오는 곳이었다.
이 도시의 문화의 진수, 도서관을 알려준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서울에서 발령받아 온 직원 A, 한 마디로 외지인이었다. 나는 그동안 서점에서 책을 사서만 읽었는데, A는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는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보고 싶은 신간은 신청하면 바로바로 도착한다면서~특히 이 도시는 책에 관해서는 정말 TOP이라고 말했다. 정말 그랬다.
이 도시에 와서 신간 신청도 해보았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읽게 되었다. 빨리 읽고 싶거나 아니면 조정래 소설처럼 소장하고 싶은 책만 사게 되었다. 작년에는 도서관 독후감 공모전에도 참여했다. 이 도시를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바다를 떠올리겠지만 나는 이 도시를 '문화의 도시'라고 특히 책을 사랑하는 도시라고 말하고 싶다.
집에서 가까운 도서관 대신 이 도시에서 가장 큰 도서관에 온 이유는 갤러리에 온 듯한 인테리어가 좋았고 그다음은 낯설어서 좋았다. 몇 번을 왔지만 구석구석 어떤 책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몇 번이나 헤매는 동선으로 배치가 되어있다. 시간이 여유가 있어서인지 그런 보물찾기 같은 구성이 재밌다.
어떤 날은 다른 책으로 찾으러 갔다가 코너에서 마음을 한 번에 사로잡은 제목을 가진 책을 빌려오기도 한다. 그러다 보물 같은 구절을 만나고, 진짜 보물을 찾은 것 같은 즐거움을 준다. 오늘은 한 주의 피곤함을 가진 몽롱한 눈으로 책 코너를 지나다가 재밌는 곳을 발견했다.
나이에 관련한 책이 한 곳에 모여있는 코너였다. 나이라는 숫자는 사람들에게 호기심과 불안, 공포를 가져다준다. 30, 40, 50에 관련한 책들이 대다수였다. 특히 40이라는 숫자가 주는 의미가 깊어서인지 가장 많은 수의 책이 꽂혀 있었다.
나이라는 숫자만큼 사람이 현명해진다면 숫자는 행복일 텐데. 나를 보자면 숫자와 현명함의 비례는 모르겠고 불안감은 나이만큼 커진다는 점은 확실했다.
나이도 불안한데 현실은 더욱 불안한 구간에 진입하게 되었다. 본사에서 메일이 날아왔고 한국의 조직은 한 번에 바뀌게 되었다. 조직 개편 이야기는 몇 년째 소문으로 무성했는데 드디어 이번 주 현실이 되어서 이메일로 날아왔다.
새로운 조직과 직무가 생겨난다고 한다. 사람들의 숫자보다 훨씬 적은 규모로. 현재의 인력 중 소수는 새로운 자리에 배치가 될 것이며 다수는 자리를 잃을 것이다. 눈앞의 현실은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다수에게는 위기이고 위험이다.
나는 어떤 일이 닥치면 나를 탓하는 못된 습관이 있다. 오늘 필사한 책에서 알려주기를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이 모든 문제를 스스로에게 돌리는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고 했다. 나의 병명을 알려준 책에게 감사를 전하며, 이 일은 어디까지나 환경 탓이다. 회사는 잘 나가고 있으며 사람은 많이 필요하지 않은 슬림한 구조. 나도 미루고 있는 다이어트를 회사는 먼저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슬림한 목표를 가지고.
이번에는 나 스스로를 '긁지 않은 복권'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새로운 자리에 그것도 원하는 직무로 과감하게 지원할 예정이다. 분명 나의 스펙은 부족하지만 굴하지 않기로 했다. 평소 관심이 있지만 지원할 기회조차 충분치 않았던 부서에 면접을 볼 것이다. 내가 응모한 복권이 꽝일 수도 있지만 당첨일 수도 있지 않을까? 아직 가지 않은 길이고, 아주 적은 가능성이지만 일단은 질러볼 예정이다.
팀 사람들은 가능성이 높은 자리에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만약 나의 기존 커리어를 생각하면 사람들이 많이 지원하는 자리에 나도 지원해야 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기존 잘했던 업무 말고, 고생스러워도 새로운 업무를 배우고 싶다. 아킬레스 건이 있다면 '나이'가 걸린다. 그리고 전공도. 지원자는 많고 자리는 부족한 현실, 오징어 게임이 시작됐다. 나의 자리가 이곳에 있을까?
다시 24살이 되었다. 구직 준비에 몰두하던 그 시기. 같은 회사지만 다른 부서에 지원하려면 원서를 내고, 면접을 거쳐야 한다. 정말이지, 나는 어려질 일만 남았다.
예전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2022년 7월의 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