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느림보

무대 체질

by 그럼에도

근 3개월의 연습 후 공연으로 한 분기가 끝났다. 3개월 동안 몇 명이 그만두고, 중간에 코로나 확진으로 못 나오신 분들과 여러 사정으로 대본 수정은 공연 당일까지 이루어졌다.


공부는 싫어하지만 시험 직전에는 공부를 한다.

연습은 피곤하지만 공연 직전에는 연기에 몰입한다!


평소 연습을 소홀히 했는데 공연 직전에 벼락치기 연습으로 대사를 모두 외웠다. 실전이 없다면 나와 같은 게으름뱅이는 쭉~ 미루었을 거다! 언젠가는 하겠지 모드.


선생님의 연기 지도에도 못 느꼈던 감성을 혼자 연습하다가 느꼈다. 사랑하는 딸들에게 왕위와 재산 상속 후 버려진 리어왕 이야기. 나는 딸, 공주 역할을 맡았다. 재산을 얻기 위해 아첨하다가 원하는 것을 얻고 배신하는 캐릭터. 연습 중간 갑자기 송송이가 떠올랐다.


친하게 지내자며 다가왔다가 원하는 것을 얻고 난 후 돌변했던 송송이. 송송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하니, 연기가 자연스러워졌다. 애교와 분노, 냉철함이 물 흐르듯 연결되었다.


내 역할 외에도 다른 캐릭터에도 누군가가 보였다. 형과 아버지 사이를 이간질하며 음모를 꾸몄던 에드먼드, 나와 윗 상사 사이를 오고 가며 이간질했던 케이가 떠올랐다. 다른 배역 역시 현실 세계에 닮은 사람들이 많았다.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는 그냥 사극이려니 했다. 공연 직전 주말에 대본을 천천히 읽었다. 읽다 보니, 어리석은(?) 리어왕과 현실 세계의 나는 많이 닮아있다는 씁쓸한 진실을 발견했다.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도 누군가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였으니까. 글에 담았던 마음이, 어느새 연기가 되었다. 그리고 주말에 이어 오늘 스케치를 시작했다. 그리다 보면 또 다른 세상이 찾아오지 않을까.


분노가 글이 되고, 연기가 되고, 그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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