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느림보

꿈 보다 현실

by 그럼에도

엄마 배 안에 있던 임신 초기에 아빠는 태몽을 꾸었다고 하셨다.


"노란 용이 하늘을 날고 있었어." 하늘을 날던 노란 용을 보면서 분명 아들일 거라고 장담하셨다고 했다.

하지만 노란 용은 잠이 많은 아가였으며 딸이었다. 태동이 거의 없어서, 엄마는 어딘가 아픈 아이가 아닌지 걱정했다고 했다. 다행히 일반적인 모습의 아기가 태어났는데 성장이(?) 남달랐다고 했다.


또래 아이들이 걷는 걸 옆에서 보고 가만히 있었다고 했다. 걸어다닐 생각도 하지 않고, 말도 늦고, 유난히 낯가림이 심한 아이라고 했다.


태몽과 현실은 정반대였다. 날아다니기는커녕 가만히 앉아서 노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다고 한다. 그래서 어렸을 때 책 읽는 습관이 쉽게 생겼던 것 같다. 타고난 것은 후천적인 것을 앞서는 걸까?


내가 살아온 길과 과정은 늘 주변보다 늦고도 또 늦었다. 그럼에도 사회생활도 어찌어찌하고는 있지만 남보다 빨리 달리는 그런 장면은 잘 없었다. 지금 나의 취미와 취향을 보자면 옆 길로, 딴 길로 샜다고 볼 수도 있다.


NFT 책은 작년에 읽었는데, 미루고 미루던 민팅이라는 것을 해보았다. 좋아하는 장면을 그리고 끝에 어린 용을 그렸다. 좋아하는 장면을 옆에서 바라보고 있는 어린 용. 어쩌면 좋아하는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한 살 아이 때 나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었다.


돈을 번다기보다는 어딘가에 나를 표현할 수 있고,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는 점이 신기했다. 신문 기사에 실리는 사람들처럼 유명한 사람이 아니기에 인지도는 전혀 없지만 오픈 씨에 전시하는 데 문제는 없었다.

나이를 거꾸로 먹는 것 같다. 얼마 전 인스타에 이런 메모 글을 보았다. '나이가 들면 줄어드는 것' 3가지. 호기심, 낭만, 그다음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위에 2가지를 기억하는 이유는 현재 나와 반대여서 였다. 난 20대에 호기심과 낭만과 같은 감성 요소가 없었다. 신기하게 몇 년 전부터 호기심과 낭만이라는 감정이 살며시 차오르고 있다. 갑자기 왜 그런 걸까?


여러 상황으로 정말 혼자만 남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호기심과 낭만'이 부풀어 올랐다. 모순, 이해할 수 없는 나라는 사람.


오늘 사서 고생을 했다. 알고 있는 분야가 아니라 알고 싶은 분야를 주제로 발표 파일을 만들었다. 주제도 몇 번이나 바꿨다. 발표를 위해서 민팅을 도전해 보았다. 그럼에도 발표 파일은 허술했다. 시간 상 2배 이상 분량을 늘려야 한다.


과제를 잘하려는 마음을 버리기로 일주일 전부터 다짐하고 있다. 잘하려고 하니 부담스럽고, 계속하기가 싫어진다. 적당히, 시간에 맞춰서 내는 것에 의미를 두기로 했다. 좀 망하면, 사람들 앞에서 한 번 창피하면 되는데, 다시 볼 사람들도 아니라고 나를 위로 중이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말해도 부담감은 줄어들지 않았다.


포기만 하지 말고 완주하는 데 의미를 두기로 했다. 잘하지 않아도 이만큼 온 게 어디냐는 마음으로. 예전 같으면 시도 자체도 없었을 나니까. 이만하면 괜찮은 거 아닌가? 그렇게 나를 토닥토닥, 중간중간 초콜릿 과자를 먹으면서 달래고 있다.

행운과 행복이 함께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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