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느림보

시험 전날엔 공부 빼고 다 재밌어

by 그럼에도

바쁜 일은 왜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일까?


토요일 수업 ppt도 새로 만들어야 하고, 밀린 인강, 기말고사 준비 등등...


바쁠 이유는 없었다. 이미 예정된 일이었고 다만 미루고 또 미룬 나의 게으름이 작은 눈덩이를 산처럼 쌓아놓았으니까. 미루고 미룬 것을 하루에 몰아서 하려고 보니, 갑자기 핸드폰이 마법을 부렸다. 요샌 유튜브도 볼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관심 분야 영상이 쏟아지듯(?) 올라왔다.


다 재밌고, 다 궁금하고, 여기서 멈춰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두 시간이 20분처럼 쏜살같이 흘러버렸다. 인스타에는 갑자기 공모전 관련 광고가 뜬다. 공모전이라고 해봐야 공모를 한 적도 할 생각도 없었는데 갑자기 눈이 갔다. 그러다 사진만 올리는 비교적 간단한 여행 사진 공모전에는 지원 버튼을 눌렀다. 또 한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버렸다.


갑자기 댄스 영상이 올라왔다. 날씬한 주인공들 보니 1월 3일부터 멈춘 다이어트가 떠올랐다. 운동을 새로 등록해볼까라는 마음에 동네 시설을 검색했다. 이렇게 또 시간이 흘렀다.


지난 주말 나의 모습이었다. 이번 주중에 못다 한 것을 다하지 못하였고 결국 시험 전날이 되었다. 달달한 과자가 당기고 그냥 포기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번에 못하면 한 학기 더 다니면 된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떠올랐다. 포기는 '감자칩'과 닮았다. 선택까지는 좋았는데 먹고 나면 후회하는 감자칩처럼 포기를 막상 하고 나면 쓰라린 후회가 감자칩 먹은 것보다 더 오래 남는다. 시험에는 응시했지만 그중 한 과목은 결과가 심히 우울할 것 같다.


그중에 더 아이러니한 것은 과목 중에 정말 재미없다고 느꼈던 한 과목이 시험 전전날 갑자기 원리가 한꺼번에 이해가 되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나 원래 재능이 있나'라는 착각이 들만큼. 아마 시험 직전의 초조함과 긴장감이 불러온 잠깐의 몰입은 효과가 있었다. 길고 지루한 인강마저 꽤 괜찮게 들리는 마법이 펼쳐졌다. 이렇게 일주일 전에 미리 했다면 이번 학기 장학생일 텐데...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항상 늦은 때였다.


시험 반절이 남았다. 오늘은 엉망인 집안을 청소하고, 새 마음 새 각오로 다시 책상에 앉았다.


난 왜 이 공부를 시작하게 된 건지를 생각해보았다. 이 분야와 현재 나의 커리어는 관련이 없다. 마침 그때의 필요와 코로나 시기라는 비대면 세상에 사이버교육은 딱 맞아떨어졌다. 그렇게 2년이 되었다.

sticker sticker

주변에 망나니(?)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있다. 흥청망청, 욜로 라이프를 사는 베짱이가 떠오르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나는 망나니보다는 조금 낫다고 말도 안 되는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다. 2년 전 망나니가 그렇게 바쁘게 노는 와중에도 커리어가 높아지고, 박사 과정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한 마디로 망나니가 아닌 다방면에 우수한 인재였던 것이다. 내가 본모습은 술자리 사진이라는 전부였다면 실제 모습은 노는 것과 공부, 커리어 등 다양한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부러움을 넘어서 샘이 났다. 부러워서 찾아보았다. 그럼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망나니는 커리어를 한 방향으로 잘 키웠다면 나는 커리어와는 무관하게 다양한 분야를 조금씩 만들어갔다. 일종의 들꽃 정원처럼. 무심하게, 다양하게. 나머지는 취미에 가깝고 학위가 생기는 현재 과정은 곧 졸업을 앞두고 있다.


내가 공부를 시작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 '부러워서 따라한 거다'라는 문장도 있다. 나의 정신 승리이기도 한 막연한 우월감 뒤에 있는 열등감에 주목했다. 내 마음속 키가 큰 녀석의 이름은 열등감.


그때 마침 읽은 자기 계발서와 저자의 동영상에 추천했던 내용으로 이 과정을 가볍게 시작했고, 적응을 못해서 중도 포기를 고민하다가 2년이 흘렀다.


올해 3월 자기 계발서 작가님의 강연에 참석했었다. 책과 영상에 추천했던 방법을 시도했고, 결과물이 있었다. 이런 점을 커리어와 어떻게 연결할지를 질문했다가... 예상치 못한 답변을 들었다. (강연엔 많은 참석자와 유튜브 생중계가 되는 중이었다) 나의 질문엔 작가님은 '지금 몇 살이세요? 아~ 그렇게 10년 해보세요. 그럼 직업이 생길지도 ㅋㅋ'라는 차가운 미소를 머금고 답을 했다.


당황했다. 지금 같으면 한 마디 쏘아붙일 텐데, 너무 놀라서 또 몸과 입이 굳어버렸다. 그다음 질문은 NFT아티스트에 관련한 질문이었다. '그건 유명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는 어쩌면 당연한 답을 주셨다.

sticker sticker


3개월이 지난 지금 NFT 민팅 한 작품이 전부지만 나보다 6개월 먼지 시작한 분 중에는 아티스트로 활발히 활동하고 거래를 하고 있는 일반인을 모임에서 알게 되었다. 팔리니 더 열심히 활동하는 워킹맘이자 아티스트. 그리고 나는 직업이 새로 생기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시도(?)가 이력이 되어서 토요일에 배우는 과정에 합격하게 되었다.


자기 계발서 작가님이 나에게 던진 말은 틀렸지만 책은 분명 도움이 되는 아이러니. 3월 강연을 듣고난 후 또 우울감이 몰려왔다. '난 역시 안돼. 나이도 많고, 거기다...'이라는 문장들이 먹구름처럼 몰려왔다. 다행히 정신없는 나의 취미 활동이 먹구름을 물러가게 만들었지만.


최근 오랜만에 사람들과 긴 대화를 해보니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생망', 이번 생은 망했다고 하는 말이 유행하기도 전부터 내 마음에는 '이생망'이라는 무의식이 깊게 자리잡고 있었다. '다들 잘 사는데 나는 왜 이렇게 낮고 또 낮은걸까?'라는 열등감과 '해도 안될 거'라는 비관주의가 반반 섞여서.

멈춘 줄 알았는데, 2년만에 새 순이 돋아난 몬스테라~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고 살았던 이유에는 게으름 외에 뿌리 깊은 '이생망'이라는 어둠이 있었다. BTS의 신곡이 새로 나왔다. 'Yet to come' 제목부터 마음을 사로잡았다. 노래처럼 나에게도 좋은 날이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잘된다면 어쩌면 성공까지 한다면 '대기만성'이라는 고사성어의 주인공은 내가 아닐까.


망하던 망하지 않던 그냥 해보기로 했다. 잘되면 좋고 안돼도 너무 나를 탓하지 않기로 했다. 발자국이 모여서 길을 만들 때까지!


My moment is yet to come~ Yet to come~

In the hush of night, we won't stop moving~

- BTS, 'Yet to come' 가사 -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꿈 보다 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