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kXpOEzNZ8hQ
https://www.youtube.com/watch?v=rwPqfU6dVxM
일주일 간 나의 배경음악은 위의 두 곡이었다. 듣고 또 들으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중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시험, 발표 과제에 이어 오늘은 연극 수업까지 종료했다.(물론 발표는 중간발표이지만) 모두 내가 선택한 것들이었지만 일정이 겹치는 순간부터 머리와 마음이 복잡하게 엉켜버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자신만만하다가 어느 순간 다 놓아버리고 싶었다. 나라는 사람은 일만 벌이고 뒷수습을 못하는 구제불능 같았다.
내가 왜 이렇게 많은 일들을 벌였을까? 물론 주변 내 또래인 워킹맘들의 삶에 비하자면 정말 단순한 일상이지만... 나라는 사람의 아무 일도 없는 일상에서 더해진 활동은 복잡했다. 단조로운 삶에 새로움은 활력을 주다가 어느 순간 한도 초과의 용량이 되어 버렸다.
이런다고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커리어가 갑자기 달라지는 것은 없다. 회사 생활의 승진 가능성과도 아무런 관련이 없다.
새로움이 주는 신선함에 취해 있었다. 마치 캔에 든 정크푸드만 먹다가 신선한 야채를 처음 먹어본 것처럼, 상큼했다.
그러다 상큼함이 덜해지고, 깊이가 필요한 순간에 갑자기 부담스러워졌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가장 늦게 시작한 주말 과정이 특히 그랬다. 막상 들어가 보니 사람들의 스펙이 어마어마했다. 내가 여기에 끼어도 되는지 조심스럽기까지 했다. 내가 어떻게 합격을 한 건지 궁금할 만큼. 박사 학위 중이거나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소심함에 또 불을 부었다. 신기한 건, 그럼에도 수업이 재밌었다. 옆자리의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모든 게 새로운 나는 '순수한 원시인'상태였다. 듣는 건 재밌었다. 문제는 내가 발표로 있어가는 순간에 터졌다. 나의 허술한 실력이 모든 사람 앞에 드러날 것이라는 공포가 밀려왔다. 관련 책을 읽고, 영상을 아무리 보아도 조급했다. 눈에도, 귀에도 들리지 않았다.
모래성 같은 내 실력이 바닷물 앞에 한 번에 사라질 것 같았다. 아침에는 꿈도 꾸었다. 중간발표였지만 토요일 평범한 피드백을 받았음에도 감사했다. 나의 목표는 일등이 아니라 무사히 과정을 수료하는 것이니까.
마음이 바쁘다는 핑계로 연극 수업을 가장 소홀히 했다. 이번엔 결석도 몇 번 있었다. 마지막 수업이자 즉석 공연이었던 오늘 마음이 섭섭하기는커녕 시원했다. 밀린 과제를 마무리한 느낌이었다. 발표에서도, 연극에서도 나의 문제는 같았다. 저음의 목소리를 가진 나, 고음이 부족하다 보니 감정 표현의 한계가 있었다. 자연스러움이 떨어졌다. 발표에 있어서도 순간적인 고음으로 사람들을 집중시키는 힘이 떨어졌다.
오늘 보니 전혀 다른 세 가지가 알게 모르게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세상을, 사람을 조금 더 알아가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싫어, 못해~'라는 감정을 세세히 분리하는 작업을 온몸으로 해내는 중이었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무지의 상태였을 때의 내 모습은 자신만만했다.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자부했다. 세상 일에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조금 느꼈을 때부터는 외면했다. 사람들과의 모임이나 맛집 찾아다니는 활동으로 '나를 마주 보는 시간'을 최대한 차단했다.
나이가 들어서가 아닌 정말 혼자인 시간이 되었을 때야 조금씩 바라보게 되었다. 그것은 나의 정신적 성숙이 아닌 온전히 환경의 영향이었다. 지방 발령, 미혼, 코로나라는 세 가지 요소가 나를 완벽한 고립의 상태로 만들었다.
아무도 없는 도시에 혼자 있던 첫 6개월의 시간은 마치 버려진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었다. 같은 한국이지만 낯선 사투리와 낯선 지역이 주는 이질감이 더 차갑게 느껴졌다. 20살, 상경한 내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잊고 있었던 장면이 다시 눈 앞에 펼쳐지는 데자뷰.
안 좋은 일들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던 그때 처음엔 분노, 우울, 체념의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본 영상을 보고 나서 다르게 바라볼 수 있었다.
이 시간이 나에게 주는 어떤 의미가 있겠지
그때 내가 적었던 이 문장을 3년 후에 바라보니 정말 그랬다. 그때 나에게 온 시련은 의미가 있었고 살아온 길의 정반대로 걷는 시작점이 되었다. 그때 그런 일들이 한 번에 일어나지 않았다면 나는 그때 그 부정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투덜이 스머프로 함께 투덜거리며 2022년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위에 적었던 3가지 중에 그 어떤 것도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난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미래는 바꿀 수 없다는 생각, '이생망'의 마음이었으니까.
브런치의 시작은 고립이라는 환경과 분노라는 감정의 결과물이다. 자기계발과는 무관한 영역이었다. '해우소'이자 대나무밭이된 나의 공간, 브런치.
요새 즐겨보는 유튜버 이연님의 영상에 이 문장을 만났다.
사실은 나 이거에 재능 있는 사람이 아닐까?
오래전부터 날 기다리고 있던
정말 운명 같은 일 일수 있어요.
무언가 새로 시작할 때 이런 마음을 갖고 있다고 했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정반대의 시선이었다. 새롭고 재밌다가 금방 지쳐버린 초보인 나는 '재능'의 영역까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나에게 덮친 쓰나미를 '인생의 어떤 의미'로 다르게 받아들였던 것처럼 지금의 시기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지질함과 불안, 우울이 겹친 초보 도전자에게 '재능 그리고 운명'이라는 단어로 새롭게 정의해보았다. 물론 도전한 영역에 재능이 없다 할지라도 어딘가에 깊숙이 숨겨진 나의 보물, 나의 재능의 단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삼 주일을 전전긍긍하다 드디어 집 나간 정신이 오늘 집에 돌아온 기념일! 드디어 자유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