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글쓰기는 우리의 고유한 시선을 찾아나가며, 그 시선 안에 머무르는 일이다. 우리는 시선의 존재가 되기 위해 글을 쓴다. 나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응시하고, 그 응시의 기록을 남기고자 글을 쓴다.
- 정지우,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p.27
글을 쓰면 쓸수록 나는 수다쟁이가 된다. 누군가 나의 하루를 본다면 '이렇게 단순한 장면에서 어떻게 글이 나오지?'라는 생각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글을 쓴다. 이 글을 가장 많이 읽고, 기억할 나를 위해서!
연극 수업에서 가장 오래된 수강생이 이번 학기에 돌아왔다. 개인적인 대화는 해본 적 없지만 이 반의 소수의 남자이며, 남자 주인공이다. 남자가 귀하니, 여자들이 남자의 배역 중 일부를 소화하는 현실에서 남자 수강생은 무조건 주인공 당첨이다.
내가 처음 이 반에 들어왔을 때,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몇 학기째 듣고 있는 장기 수강생이었다. 나를 비롯한 몇몇의 신입들이 더 있었지만 다들 중도 포기를 하고, 마지막엔 나만 남게 되었다. 수업도 낯설지만 사람들의 무리에서 혼자만 우두커니 떨어진 곳에서 3개월을 출석하는 일이 더 힘들었다. 나보다 10살은 어린 사람들이 대놓고 텃세를 부리거나 어떤 말을 한 적은 없지만... 차가운 눈빛과 경계하는 시선, 연습하는 내내 한파보다 더 차가운 공기가 흘렀다.
불편한 3개월이 흐른 후 다음 학기는 장기 수강생은 나와 한 명의 여자분을 제외하고 모두 그만두었다. 새로운 사람들이 나머지 자리를 채웠다. 다시 3개월이 흘렀고 예전의 장기 수강생 중에 한 명이 돌아왔다. 반갑게 인사하는 나에게 그분은 가벼운 목례와 함께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잠시 잊고 있었던 1월의 한기가 느껴졌다. 장기수강생과 신입의 만남에서 보았던 경계의 눈빛. 딱히 그 사람의 인정이나 협력이 필요하지도 않았음에도 나는 무조건 반사처럼 인사를 했다. 너무나 당연해서 의식하지 않았던 인사, 어쩌면 진정한 '소울리스좌'는 내가 아닐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흔히 말하는 '쎄~한 느낌과 인상'을 주는 사람이 돌아왔다. 딱히 나와 상관은 없지만 그 알 수 없는 느낌에 시선이 간다. 이건 그동안의 경험이 알려주는 보호 본능이다. 나를 보호해야 한다는 내 몸의 직감.
무조건 반응에서 조건반응으로 나의 의식을 바꾸려 한다. 상대가 원치 않은 인사나 배려도 문제가 아닐까? 그리고 그 알 수 없는 눈빛에서 수동 공격성'이 느껴진다. 오래 보았던 주변의 '수동 공격성'의 대명사, 김땡땡이 떠오른다. 어쩌면 둘은 외모까지 닮았다. 거기다 조용조용한 특유의 말투까지도.
엉뚱하고 당황스러운 모습은 일상 곳곳에 가득하니 글감이 마를 날이 없다. 이상하지만 별 일 아닌 일도 글로 남길 수 있음을, 오늘은 어떤 이벤트가 아닌 나의 직감에 대한 글을 쓴다. 세상은 넓고 나의 이야기는 가득하다.
-투머치토커, 셀프 스토리텔러 스케치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