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은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든다. 3월에 연기했던 리어왕은 믿고 의지했던 두 딸의 배신이 시작이 되어 이야기가 반전된다. 반전은 이야기가 되고, 이야기는 무대에 오른다.
브런치에 메인에 걸리는 글을 읽다 보면 반전이 보인다. ‘지나친 내향성이라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렵다’고 말하면서도 결혼은 했다고 쓰거나 아니면 그럼에도 회사 생활은 잘하고 있다는 내용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또는 ‘사람들은 나의 조건을 부럽다고 하지만 실상 내 마음은 외롭고 불안하고 힘들다’는 내용의 글이 브런치 메인에 걸려 있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과 글의 내용이 반대일 때 이야기는 흥미로운 구성이 된다. 책 제목 중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처럼 강렬한 반전, 뻔하지 않은 반전의 묘미.
나의 내향성은 흥미로운 글이 될 수 있을까? 일부는 흥미롭고, 일부는 너무 뻔해서 일기장에만 적을 수 있다. 내가 일기장에 적는 글은 나는 내향성이 너무 심하다, 외로움과 허전함을 잘 느낀다, 인간관계는 늘 어렵다, 나는 현재 미혼이다라는 일관된 흐름과 내용은 쓰는 나도, 읽는 독자에게도 지루함을 안겨준다.
브런치에 가끔씩 적는 배움에 관련한 글은 나에게는 일종의 반전이다. 초내향성을 가지고, 새로운 시도라고는... 늘 같은 메뉴를 먹고, 늘 똑같은 사람들만 만나던 내가 코로나를 기점으로 살아온 인생의 정반대로 살고 있다. '일기도 거의 써보지 않았던 내가 브런치에 글을 적는다!'는 것은 반전이다.
오늘은 도서관의 원어민 강좌 수업을 다녀온 길이다. 누군가의 결원으로 나에게 자리가 왔다. 원어민 수업이라니... 영어는 처음이다. 지금 나이에 부끄러워서 말할 수 없는 이야기.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데 말 같지 않은 이야기...
회사에 나와 같은 동명이인이 몇 년 전 입사했다. 그날부터 가끔씩 발음도 할 수 없는 동남아나 유럽으로 추정되는 이름의 사람이 제품 허가 관련 메일을 보낸다. 내 이름, 세 글자는 본사 지침을 제외하고 한국어로만 된 이메일이 오는데, 동명이인 그분은 늘 영어로 긴급한 메일이 온다. 이메일 내용은 토익 시험 part 6,7에 자주 출제되는 형식이고, 내용이다. 토익 시험 문제는 알고 보니 정말 생활에 유용한 내용이었다. 나는 짤막하게 답신을 보낸다. 동명이인에게 잘못 보냈으며, 이 메일은 oo로 보내라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
수업은 영어책을 읽고, 이해되지 않는 구절을 묻고, 질문하는 50분 수업이었다. 난 어떤 내용으로 진행된지도 모르고 온 첫날이고, 다른 사람은 2회 차였다. 수업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수업 참석하신 분들이 흥미로웠다. 15명 중 14명이 여자였고, 한 두 분을 제외하면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40대 후반 또는 50대였다. 새로운 곳에 가면 늘 나이가 많아서 부담스러웠다면 이번엔 상대적으로 어린(?)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거기다 오늘 온 도서관도 내가 처음 와본 곳이었다. 퇴근길에 지나면서도 궁금했지만 들어와 보지 않은 곳을 3년 만에 들어와 봤다. 신기한 세상이 있구나.
다시 태어난 것 같다. 내가 살았던 세상과 2022년은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다. 코로나 시기에 나의 내향성을 이해했고, 피아노며, 인강, 사이버과정까지 자기 계발에 나름 충실했다고 생각했는데, 바쁜 일상과 달리 마음은 사막 한가운데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다. 똑같은 충격에도 사람들도 웃어넘길 때, 나는 울고 있을 만큼.
미혼이지만 결혼한 사람들을 부러워해본 적이 없다. 결혼 적령기가 지나도 결혼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별개의 세계 같았다. 팬데믹, 단절의 시기에 정말 가까운 사람, 가족의 의미를 더 많이 깨달았다. 인맥의 부질없음과 오랜 친구들의 매몰찬 대화에 새삼스럽게 질려 버렸다. 혼자 남겨진 시간, 둘을 생각했고, 세상에 나올 준비를 했다.
발표할 일도 없고, 나설 일도 없는데 작년엔 스피치 인강을 듣고, 지금은 강연자 과정을 이수하고 있다. 연극 아카데미도 등록하고, 가끔 그림 수업, 오늘처럼 영어책 모임처럼 새로운 곳에 도착했다. 살면서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것을 올해 시작하고 있다. 원동력은 결핍, 외로움, 불안의 에너지다. 내가 조금만 더 충만했다면, 안정되었다면 그 세계를 깨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전형적인 안정 추구형이니까. 나를 처음 본 사람들은 모두 직업이 '공무원'이라고 어림짐작하는 인상을 가진 딱 봐도 그런 사람.
그다음은 어떤 반전이 기다릴까? 반전을 기획하지 않았지만 결과론적으로 반전의 인생을 살고 있다. 반전은 나를 어디로 데려갈까? 상황과 시스템이 맞물려서 반전을 만들었다. 적당한 임계점을 지나서 사람인 내가 달라지고 있다. 특이점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