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느림보

시간이 주는 고민들

by 그럼에도

사춘기처럼 특정 나이가 되면, 특정한 고민의 시기가 찾아오는 걸까?


"나를 찾고 싶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방금 전 비대면 공간, zep에서 책모임을 했고 처음 만난 누군가가 했던 말이었다. 워킹맘으로 사느라 아무것도 못했고, 그런 자신을 위해 자기 계발을 위해 휴직을 하고, 드로잉부터 이런저런 배움에 열심이었던 분의 이야기였다.


듣다 보니 나의 이야기였다. 소모임 안에서 나와 T님은 책 이야기에서 다른 곳으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나이를 물어보지 않았지만 목소리로 비슷한 나이임이 느껴졌다. 난 아이, 남편이 아닌 나를 위해 살았는데도,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살았음에도 '나'를 모르고 살고 있었다.


코로나 직전 겪었던 여러 가지 삶의 마찰과 코로나라는 팬데믹 시기로 인생에 브레이크가 걸리고 나서야 살아오던 쳇바퀴를 멈추게 되었다. 그제야 내가 나를 위해서가 아닌, '남들과 비슷한 취향'으로 비슷한 장소를 오고 가는 쳇바퀴 속 다람쥐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살아오던 방향의 정반대로 살기 시작했다. 마치, 끝이 며칠 남지 않은 사람이 위시리스트를 해보듯, 새로운 곳, 궁금한 곳은 두드려 보았다. 그래서 조금씩 취향을 알게 되고, 생기게 되고, 알아가게 되었다.


피아노를 시작하면서 듣지 않았던 클래식이 좋아지기 시작했고, 연극반에 들어간 후부터 오디오북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일반적인 방향의 정반대로 모든 걸 시작하게 되었다.


피아노 학원 원장님은 살면서 처음 보는 유형의 수강생이라고 하셨다. 중간과정이나 기본기도 없이 여기까지 온 유일한 케이스라고 하셨던 것처럼. 너무 평범해서 보이지 않는 존재 같다고 여겼는데, 최근 3년 사이에 나를 알게 된 사람들은 처음 보는 유형의 사람으로 나를 부른다. 나 역시 '처음 살아보는 코스'를 살아가고 있다.


어떤 나이가 주는 깨달음일까? 압박감이 있는 걸까? 특정 나이에 정반대의 조건의 사람이 오늘 같은 주제에 공감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을.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오히려 편안했다. 나를 안다고 하는 사람들의 선입관이나 어떤 편견이 없이, '그렇구나'라고 인정하면서 넘기는 그런 당연함과 느슨한 고리가 편안했다.


물론 조금 전 이후로 다음에 만날 기회는 없겠지만 그래서 더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했는지도 모른다. 성당에 '고해성사'를 하러 온 신도처럼.


살아온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산다고 하셨던 T님은 지금 다시 태어난 것 같다고 하셨다. 휴직기간 동안 'NFT' 아티스트로서 공부를 열심히 하셨다고. 난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지금 사는 집은 3년 전 처음 이 도시에 왔을 때 보러 왔던 단지였다. 옆 동에 집을 보러 온 적이 있었다. 그때는 집 앞에 펼쳐진 예쁜 공원마저도 '좌천'되어 낙향한 사람이 보는 자연처럼 우울하고 슬프게 보였다. 그리고 나는 삭막한 도시 느낌이 물씬 나는 콘크리트 숲 속에 집을 정했다. 그리고 운명처럼 2년 후, 다시 처음 집을 보았던 아파트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기분이 좋다. 눈뜨자마자 집 앞 생태공원의 풍경이 모네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같은 풍경인데 나의 눈은 전혀 다르게 반응하고 있다. 사람들을 덜 만나고, 아파한 시간을 겪고 난 후, 새로운 여기저기를 다녀온 후 나의 눈과 마음이 다시 태어난 것 같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풍경과 빛의 강도처럼 나의 마음의 풍경도 강도도 달라졌음을 느낀다.


나를 아프게 한 것도 나였고, 나를 기쁘게 한 것도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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