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소개팅에서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 묻는 질문에 모호한 대답을 했다.
그건 '신뢰감'이었다. 믿을 수 있다는 것, 믿고 싶다는 그 모호한 대답을 했다.
반대편에 앉은 사람은 외향적인 성향의 사람이었다. 반대로 나는 내향적인 사람이다.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사람의 대화는 편안하지 않지만 흥미롭다. 나와는 다른 행성의 사람처럼.
오랜 시간 나의 목표는 외향인이 되는 것이었고, 내가 선호하는 사람도 외향적인 사람이었다. 꼭 남자가 아니어도 친하고, 친해지고 싶은 사람은 나와 정반대 성향의 사람이었다. 대범하고, 쿨해 보이는 그 모습에서 의지하고 싶은 마음과 함께 '믿음'이 갔다. 그때 만나던 지인도, 동료도, 친구도 모두 외향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럼 지금도 과거의 나처럼 외향인이 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을까? 내 주변엔 외향인이 여전히 많을까?
지금 연락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말과 행동이 같고, 성실한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이었다. 내향인, 외향인과는 별개로.
나는 내향인으로서 갖고 있는 강점에 집중하고 있다. 애써 외향적으로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사회생활이라는 기본 틀에서 '사회성 버튼'을 누르고 활발하게 참여는 하지만 본성인 내향성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드러내고 있다. 지키고 싶은 내 시간, 온전한 내 마음을 위해서 연습 중이다.
지금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내향인, 외향인 모두 포함된다. 성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에 대한 믿음은 자신만만한 목소리의 말이 아니라 행동이었다. 나는 '한눈에 척하고 사람을 판단하는 능력'은 없다. 다만 말과 행동의 일치가 보여주는 것으로 사람을 알아갈 뿐이다.
말 잘하는 사람 옆에 앉아 있다가 대신 떠맡은 업무나 허세에 속아서 여러 번 데여도 그런 인생의 원리를 깨닫지 못했다. 늘 다치고 또 다치는 마음의 상처를 셀프로 치유하고자 심리학 책 속에 몇 년을 빠져들었다. 그렇게 얻은 결론은 '진정성'과 '개방성'이다.
진심이고, 틀렸을 때에는 인정하는 자세와 마음이 내가 원하고, 바라는 모습이었다.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는 모습에서 믿음이 갔다. 이러한 마음은 남녀 모두 동일하다. 요새 내가 사람에게 가장 중요시 여기고, 나 역시 지키려고 하는 마음은 진정성, 책임감, 개방성이다.
하지만 소개팅이라는 곳에서 첫 만남에 이런 이야기를 깊이 나눌 수는 없었다. 세 가지를 재밌고, 귀엽게 표현하지 못해서 단순히 신뢰감이라는 말로 퉁~쳤다고 할까.
최근에 한 과정 속에서 사적인 대화를 나눈 적은 없지만 진심을 다해서 일하는 사람을 보게 되었다. 달변가는 아니었지만 말속에 투박한 진심이 느껴졌다. 예전이라면 그런 모습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텐데, 달라진 마음에서인지 한참 동안 그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투박하고, 우직한 사람이 내 이상형이었다는 것을 먼 시간을 돌고 돌아서 알게 된 것 같았다. 과정은 이미 종료되었고 다시 만날 일은 없겠지만... 나의 바뀐 시선과 시야를 알게 해 주었다. 이제야 이상형의 정체를, 실루엣이나마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