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느림보

(위기를 대하는) 민감도

by 그럼에도

다양한 사람만큼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분명 글로 볼 때는 당연하게 인식되는 문장인데 사람의 언어로 표현되었을 때 나의 판단은 달라진다. 즉, 타인과 나의 관점의 차이를 존중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한 번은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대화 중에 '가습기 살균제'이야기가 나왔다. 참고로 나와 옆자리 분 모두 사용했다는 공통점과 구매했다는 사실을 잊은 건망증으로 현재 생존해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큰 일을 겪은 건 아니지만 그 일은 나에게 커다란 흔적을 남겼다.


마케터의 좋은 먹잇감인 얼리어답터의 감성과 구매 습관을 버리는 계기가 되었다. 가장 보수적으로 뒤에 성분을 최대한 읽고(성분을 다 이해는 못해도), 환경 관련 마크가 있는지를 확인한다. 그리고 문제가 된 회사 제품을 현재까지 불매 중이다. 실수나 실패는 할 수 있지만 책임지지 않는 모습에서 나는 oo브랜드를 용서하지 않고 있다.


그런 나와는 정반대로 옆자리에 앉은 분은 재미난 에피소드처럼 말씀하셨다. 아이들에게 "너 어릴 때 엄마가 건망증으로 깜빡해서 너네들 살아있다"라고 농담을 한다고 하셨다. 싱글인 내 한 몸에 대해서도 이렇게 충격적이었는데, 아이들과 본인의 건강에 커다란 문제가 될 뻔한 사건을 농담으로 말하다니......?


사람마다 같은 사건도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아직 마음으로도 이해하지 못했다. 드라마 악마 판사에 과몰입했던 이유도 실제 사례였기 때문에 눈물이 고일만큼 집중했는지도 모른다.


3일 동안 엄청난 비가 내렸다. 강남에 가지도 않았으며 현재 수도권에 거주하는 것도 아닌데 며칠째 재난상황을 초집중하며 보고 또 보고 있다. 퇴근길에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분을 보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지금 내가 고민하는 그 어떤 것도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또 뉴스를 본다. 이번엔 비올 때 지켜야 할 매뉴얼이다. 운전 중에 차에 물이 차면...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를 몇 번이고 보았다. 난 위기, 위험 신호에 민감하다. 특별히 아픈 곳은 없지만 아플 수 있는 가능성에 주목한다.


과거 학교에 다닐 때 어쩌다가 '3박 4일 해외 연수'중에 부조장이 되었다. 그때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관광사에 비상 상황에 갈 병원 지정과 시스템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이었다. 해외에 도착한 순간부터 나는 구급약 박스를 들고 다니면서 80명의 건강을 챙겼다. 다행히 아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무사하게 일정을 마쳤다. 불행을 막고자 철저히 준비하면 괜한 호들갑처럼 아무런 일이 발생하지 않고, 아무 일이 없을 거라고 무사 태평하게 있으면 갑자기 찾아드는 건 왜일까?


난 왜 이렇게 위기에 대한 민감도가 유난하게 높을까? 가족 중에 나와 같은 성향의 사람이 없다. 그나마 조금 비슷한 사람은 아빠?


회사의 구조조정에서 모두 스트레스를 받지만 나는 그 스트레스가 시작한 지 3년이 되었다. 재택근무가 시작되는 순간 느꼈다. 내가 필수 인력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때부터였다. 내가 흔히 말하는 '자기 계발'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고, 새로운 분야에 기웃~거리기 시작한 시점이.


한 마디로 사람들은 최근부터 시작된 스트레스가 나에게는 3년 된 만성질환이라는 게 차이점이다.


난 왜 이런 마음으로 스스로를 힘들게 할까?


난 나를 보호하거나 막아줄 어떤 보호막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게 달랐다. 똑같은 구조조정도 유부 동기들이 보는 시선은 나 보다는 여유로웠다. 배우자의 수입과 희망퇴직금... 뭔가 나와는 배경이 달라서인지 같은 상황도 덜 힘들어 보였다. 난 부모님도 날 도와줄 수 없고, 배우자도 없으니 스스로 생존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 생각은 나를 강하게 만들었다기보다는 스스로를 더 힘들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지금 뭘 해야 할지를 또 고민하고 있다. 나가서도, 아니면 남는다 해도 뭘 더 배워야 할지를. '싱글이라 너는 책임이 없지 않냐? 그냥 나가도 상관없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유부 남직원의 마음을 듣게 되는 순간에 나도 모르게 울컥~한다. 각자 인생의 짐이 있다. 당신이 가진 것처럼, 나에게도. 내 인생을 책임져야 하는 책임감이 있다. 책임감을 사람의 숫자로만 단순히 비교할 수 없다.


내가 가진 가능성, 잠재력은 어떤 게 있을까? 3년 전, 내가 세운 인생 '3대 슬로건'이 있다.


그건 '잘 먹이자(좋은 식재료와 요리), 잘 자자(숙면), 잘 키우자(나를)'이었다. 이 중에 '나를 잘 키우자'가 가장 어려웠다. 뭘 잘하는지 모르고, 뭘 시작해야 좋을지 몰라서, 상관관계가 없는 이런저런 분야를 두드렸다. 이런 점과 점이 모여서 언젠가 선을 이루기를 바라며.


가능성을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근사한 텍스트가 된다.

- 김종원, '문해력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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