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화,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신은 구불구불한 글씨로 똑바르게 메시지를 적는다.
p.47
구차하게 의존하는 것, 시도와 모험을 가로막는 것을 제거해야만
낡은 삶을 뒤엎을 수 있다는 것을.
안전하게 살아가려고 마음먹는 순간 삶은 우리를 절벽으로 밀어뜨린다. 파도가 후려친다면, 그것은 새로운 삶을 살 때가 되었다는 메시지이다.
어떤 상실과 읾음도 괜히 온 것이 아니다.
지금 나는 어떤 상태에 놓여 있을까? 구조조정의 폭풍 속에서 파티가 벌어지고 있다. 부서에 따라 어떤 팀은 승진 파티가 진행 중이고, 어떤 부서는 감원 파티가 진행 중이다.
내가 속한 곳은 감원 파티가 진행 중이다. 설령 내가 남는다고 하더라도 이번 위기를 넘겼을 뿐, 다음에는 내 순서가 가까워왔음을 이미 다른 회사를 통해서 보았다.
어이없게도 이제와 서야... 그동안 사내 다른 부서에 지원하지 않았음을 후회했다. 가고 싶었던 곳은 있었지만 '지금은 능력이 부족해, 아직은 아니야'라는 변명으로 10년을 넘겼다. 그러다가 지금 이 순간이 왔다. 순간의 유혹이 달콤했다. 익숙한 환경을 벗어난다는 것은 위험하다고 느꼈다. 나쁜 사례만 눈에, 귀에 들어왔다. 새로운 곳에서 낙오된 사람 중에 이직을 하는 사람을 보았다. 이런저런 핑계로 내가 나를 속였다. 가늘고 길게 가자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때는 말이 되는 생각이었다. 정년을 채워서 퇴사한 선배들을 보았고, 내 미래도 정년을 당연히(?) 채울 거라는 모종의 믿음이 있었다. 변화가 적었고, 사기업이지만 안정적이었다. 그때에는.
그때는 한 부서에 오래 있다는 것을 진정성으로 보았다. 지금은 한 부서에 오래 있었다는 것이 경력에 문제로 보았다. 세상은 바뀌었다. 관점도 시선도 바뀌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퇴사가 가깝다고 생각하니, 부질없는 것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남 눈치를 보느라, 팀 분위기에 맞추느라, 윗사람이 원하는 일들을 군말 없이 모두 떠안고 살았던 것, 감정 노동이 특히 후회가 되었다. 내 시간을 함부로 여기며 모두에게 내 시간과 에너지를 환원했다니? 시간이 소중하다는 말을 함부로 여긴 대가를 톡톡히 받는 것 같다.
코로나 시기가 오면서 예전에 잘 가던 모임에 최근엔 참석하지 않았지만... 인맥이라고 부른 많은 인연이 모두 부질없게 느껴졌다. 내 위치가 사라지고, 경제력이 작아진 상태로도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다.
작은 일에도 소심하고, 민감해지는 이 마음. 지난주 며칠은 퇴근하고 도서관에 앉았다. 마침 앉은자리 옆 책꽂이에 류시화 시인의 책이 있었다. 읽다 보니 소심한 마음이 이완되는 기분이었다.
지금의 일이 나에게 어떤 약이 될지 누가 아는가? 지방 발령과 코로나가 내 인생의 엄청난 전환점이 되었던 것처럼 지금의 일이 미래의 나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누가 아는가?
정말 나에게 오롯이 집중하는 인생을 살아가게 될 시기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