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느림보

딱 아는 만큼만

by 그럼에도

토익은 오래전에 몇 번 시험 본 적이 있다. 텝스는 처음이었다. 문제집을 사고 리스닝 1, 2를 처음 풀어본 결과... 너무 많이 틀렸다. 하... 이래 가지고 다음 달 시험을 볼 수 있을까 싶었다.


틀린 문제는 영어 발음이 너무 빨랐거나, 연음이 너무 심해서 못 알아들은 게 아니었다. 진짜 모르는 단어와 숙어가 쓰인 문장이었다. 한 마디로 아는 것만 들렸다. 모르는 건 몇 번을 들어도 안 들렸다.


아는 만큼만 들렸다.


인생의 많은 이야기도 딱 내가 아는 만큼만 보이고 들렸다. 내가 이해하는 만큼만 나도, 타인도 이해가 가능했다. 세상도 딱 내 수준만큼만 보였다. 그런데도 나는 다 안다고 자부했던 부끄러운 시절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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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체질은 한 마디로 '은둔형 외톨이'다. 익숙한 환경이 편안하고, 집에 있는 걸 좋아한다. 처음 보는 사람과 새로운 환경은 낯설고 긴장된다. 그럼에도 가끔씩 새로운 배움 자리에 어쩔 수 없이 가는 이유가 있다.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서 '우물 안 개구리'로 왜곡해서 세상을 바라볼까 봐... 길을 나선다.


책모임과 관련한 모임에 갔다가 60대이신 책모임을 운영하는 분들의 대화에 참여하게 되었다. 중산층 이상의 안정적인 경제력은 옷차림뿐만 아니라 언어에서도 알 수 있었다. 문화생활에 충실할 수 있는 삶의 여유로움은 나도 그분의 연세가 된다면 갖고 싶은 '워너비'였다. 하지만 대화 중간에 엄청난 벽을 느꼈다. 60대 분들은 이런 걸 '세대 차이'라고 한다며 웃으셨다. 세대 차이였고, 감성 차이였다. 그리고 더욱 큰 차이는 '배우려는 자세'차이였다.


5년째 운영하고 있는 책모임 진행이 늘 어렵다. 코로나라는 외부적 요인도 있고, 나라는 사람의 매력의 한계가 왔다고 생각했다. 모임 운영에 나라는 사람이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멈추려고 했다. 그러나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된 거, 이왕이면 재밌게 해 보려고 모임 운영 노하우를 배우러 왔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왔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완전히 틀렸다. 다들 본인들의 기준으로, 경험으로만 생각했다. 아무리 새로운 지식을 들어도 새로움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도 나이가 더 들면 내 앞에 앉으신 분처럼 생각하게 될까?


불편하고 낯설지만 그래도 나는 발표자가 말한 것처럼 새로운 곳에 가서 경험해봐야겠다. 365일 중 이런 새로움은 며칠이나 될까? 마음을 단단히 먹고 새로운 곳에 도전해보아도 그런 날은 한 달에 며칠 되지 않는다.


은둔형이지만 가끔은 외향적인 몇 시간의 활동을 하려고 한다. 스트레스는 덤으로 따라왔지만 오늘 나는 한 가지를 배웠다. 배우려는 자세가 살아있는 동안 가져가야 할 필수 덕목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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