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느림보

화려한 칭찬의 대가

by 그럼에도

칭찬 : 좋은 점이나 착하고 훌륭한 일을 높이 평가함. 또는 그런 말.

- 네이버 국어사전-


지난주, 발표를 위한 첫 모임에 6명 중 나 포함 2명만 참석한 그런 날이었다.


밝은 표정의 A님과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다. 첫 모임에 참석자가 적어서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밝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나의 소개를 들은 A님은 '목소리가 좋다, 연극 공연에 있어서 캐스팅되기 좋은 외모다~'라는 칭찬을 했다. 분명 듣기 좋은 칭찬이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춤은 아니어도 기분은 좋았다.


그런데 칭찬이 길었다. 날 낳아준 엄마, 아빠도 이렇게 길게 칭찬한 적이 없었다.


sticker sticker

과제로 만나게 된 처음 보는 사람이 참~ 길게도 칭찬을 했다. 자기 객관화가 부족한 나라도 칭찬은 당사자의 귀에도 이미 선을 넘었다. '이 정도 칭찬을 들을 외모라면 이미 연예인이 아닐까?'현실 속 나는 생계형 월급쟁이인데.


이상함을 느끼던 그때, 본론을 던졌다. 목소리도 좋고 리더십도 있어 보이니 우리 조의 조장이 되어달라는 말을 웃으면서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제안에 당황했다. '다수의 사람이 빠진 상태에서 한 명이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건 아니지 않나요?'라는 말로 웃으면서 거절했다.


거절에도 칭찬과 함께 제안을 멈추지 않았다. 말이 통하지 않았다. 겸손이 아닌 단호함을 보였을 때 A님은 여전히 웃으면서 말했다.


이 정도 말했으면 들어줄 줄 알았는데, 아니네ㅋ


화려하고도 길었던 칭찬에는 무서운 대가가 숨겨져 있었다. A는 제안이 아니라 명령을 했던 것이다. 20분 가까운 대화 속 칭찬은 분명한 목적을 갖고 있었다.


순간 섬뜻했다. 상대방은 웃고 있지만 엽기 드라마 속 한 장면 같았다. 거절에도 계속 제안을 하면서 "조장이 되신다면 스케치온님이 시키는 건 뭐든 다할게요. 적극적으로 도울게요."라는 말이 온라인 회의를 나와서도 귓가에 맴돌았다.


어떤 과제를 어떻게 할지 알고, 뭐든 다하겠다는 걸까? 거기다 오늘 처음 본 나를 어떻게 믿고 따르겠다는 걸까?


그렇게 뭐든 다하겠다는 사람은 주말 공연, 주중 연습을 하는 사람이었다. A님이 가능하다는 시간대에 5명이 일정을 맞췄다. 그렇게 만나기로 한 날, 내가 참석하지 못했다. 머피의 법칙이 시작됐다. 운전 중에 핸드폰이 꺼졌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광복절 인파가 몰린 도로 위에 나는 핸드폰 충전 케이블도 없이 도로 위에 멈춰있었다.


5명 중 이번에도 2명, 지난번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들만 참석했다. A님도 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다음 날에도 가능하다던 시간대에 참석하지 않았다. 참석할 수 없는 이유가 모임이 끝나고 한 시간이 지나서 왔을 뿐.


MBA에서 경험한 수많은 무임승차자들과 A님은 코스가 똑같았다. (해외 출장이나 집안일처럼 진짜 사정이 생긴 사람은 사과의 방법, 언어부터 다르다) 지나치게 활발하다가 회의 시작 때마다 갑작스러운 일이 생기고 언제나 조장이나 가장 힘 있는 사람에게만 이해를 부탁했다. 화려한 미사여구, 슬픈 스토리, 밉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애교와 눈치가 따라다녔다.(남녀불문)


차라리 이름만 올려달라고 솔직하게 이실직고를 하거나, B님처럼 중도 포기를 해도 되는데 둘 다 아니었다. '수료는 하고 싶지만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다. 다른 방법을 모색하겠다. 일단 나를 우선순위에서 제외해달라'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취미로 연극반 수업을 다니면서 본 대사 같았다. 연극은 드라마보다 과장되고 긴 대사를 사용한다. 영화처럼 과거의 장면과 같은 스토리를 화면으로 보여줄 수 없기에 배우의 대사로 모든 것을 담아낸다. 무대에서는 괜찮은 이야기지만 대본으로만 볼 때는 어색하고 과장된 모습을 띠고 있다.


A님의 장문의 메시지는 '연극 대본' 어딘가에 나오는 구절을 복붙 한 느낌이 났다. 바쁜 일이 겹쳤다기보다는 첫 만남의 대화와 참여도, 메시지는 일련의 흐름을 보이고 있었다.


'계획적인 무임승차자'


첫 번째 계획은 내가 조장이 되고 A님은 조용히 묻어가는 전략이었던 것 같다. 난 왜 이렇게 만만한 느낌을 주는 걸까? 이럴 땐 센 언니라고 하는 사람들의 카리스마가 부럽다. MBA에서 이렇게 접근해 온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니었다. 그래서 A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고 제안을 단칼에 거절한 것이다.


사실 과제는 어렵지 않았다. 말이 팀 과제이지 나 혼자서도 1시간 이내에 작성 가능한 워드 문서였다. 모두가 완벽하게 공평하지 않더라도 참여하는 태도, 그렇게 어울리면서 약간의 친목을 도모했으리란 것은 이미 과제 설명에서 충분히 보였다.


이렇게 몇 줄 적는 것도 서로 하기 싫다고 볼멘소리를 하고, 누군가는 다른 이를 등 떠밀고, 잠수를 타는 사람들을 보니 오히려 원칙을 고수하고 싶어졌다. 5명이 한 장의 보고서가 아닌 5명 전원의 각각의 보고서를 내자고 제안한 건 나였다.


경험으로 난 이미 무임승차자의 마음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들은 '표 나지 않고 무임승차+과정 이수'를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무임승차자가 바로 표가 나는 그런 제안은 당연히 분노할 것이다. 예상은 적중했다.


바쁘다던 A가 장문의 메시지를 올렸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무임승차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름 공들여서 본인의 분노를 눈물의 하소연으로 적었다.


어쩜 이런 연극은 틀을 벗어나지 않는 걸까?


피곤한 세상에서 나를 구하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자존감이다. 나를 내가 보호해야 한다. 이건 내적 요소.


둘째, 상황판단력이다.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는 외적 요소. 나의 경우 자존감보다 상황판단력이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난 오랜 시간 운이 나빴다. 그리고 무지했다. 가까이에 심리학 교과서에 나오는 예시와 딱 맞는 ‘소시오패스, 나르시시스트'가 있었다. 가까이에 있을 때는 몰랐지만 멀어지고 나서야 엄청난 수렁에 빠졌음을 알았다. 그렇지만 배운 것도 있었다. 그들의 첫 시작에는 늘 미끼가 있다.


러시아 속담에 '공짜 치즈는 쥐덫에만 있다'라는 말이 있다. 소시오패스는 목표 대상이 생기면 언제나 그들이 원하는 달콤한 칭찬과 인정을 주다가 가까워지면 가스라이팅을 하는 일정한 패턴이 있었다. A가 소시오패스인지는 한 번으로 알 수는 없지만 처음 시작은 많이 닮아 있었다.


세 번째, 행동력이다. 나를 아끼고, 상황을 판단했다면 거절하거나 실행할 수 있는 행동이 필요하다. 나는 오랜 기간 거절을 못했다. 싫은데 싫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일을 혼자 떠맡고, 속병이 나고, 어떤 날은 그런 나를 혐오하기까지 했다.


소심한 내향인이지만 사회성 버튼을 누르고 혼란한 세상을 걸어가고 있다. 넘어지고, 다치고, 그렇게 일어나는 오뚝이 같은 일상이지만 나는 오늘도 나를 지켜내는 방법을 하나씩 실천하고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일복(?)과 화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