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느림보

벌써 일 년(노래랑 상관없음)

by 그럼에도

일 년 전 이맘때 브런치에 올린 글에 '좋아요'를 누른 독자님이 출현했다. 갑자기 일 년 전, 너무나 씁쓸했던 기억이 지난주에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날 나는 괜찮은 척하면서 누군가의 대화에 대답했지만 괜찮지 않았다. '왜 내 주변엔 이렇게 영악하고, 못된 사람들이 이렇게 끊이지 않는 걸까?'라며 주변 환경이 싫었고 나 스스로도 싫었다. 꽤나 외롭고 쓸쓸한 기분이 오래도록 가시지 않았다. 불금 저녁, 나는 낯선 장소로 가보았다. 인기 많은 여행지이자 핫플이라던 수제 맥주집 창가 자리에 혼자 앉았다. 맥주 맛보다 내 마음이 더 씁쓸했다. 평소에는 멀리하던 술인데 그날은 맥주 두 잔을 빠르게 마시고, 취기가 제법 올랐다. 사람들이 환호하는 바닷가에서 버스킹 하는 장면을 보고, 두 시간 넘도록 길 따라 걷고 또 걸었다. 누군가는 환호하는 풍경 속에서 혼자 흑백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핸드폰으로 생각나는 대로 적었던 글이 일 년 전 브런치 글이었다.


그날은 참 외로웠다. 외로움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내 인생에 어떤 계획도 보이지 않았다. 다들 행복한데 혼자만 동굴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외롭다, 고독하다'라고 외쳤던 뾰족한 말들이 모여서 올해의 이런저런 시도의 계기가 되었다.

시립미술관1.jpg 김용관, '각진 원형'

난 여러모로 모가 난 사람이다. 언뜻 보면 거절도 잘 못하고, 좋은 게 좋은 거다라고 하는 둥근 사람으로 보인다. 하지만 내 마음은 여기저기 뾰족하고 직선의 각이 많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모난 면의 일부는 둥글게 변한 면도 있지만 어쩌면 더 많은 뾰족함이 자라난 것도 있다.


나는 '각진 원형' 작품을 보면서 나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뾰족하고 모났지만 그럼에도 그 모난 도형들이 뭉쳐서 둥글게 보이는 사람이 내가 아닐까? 늘 스스로를 사회생활에 적합한 인성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오랜 시간을 이어오고 있는 이유는 뭘까? 난 오랫동안 그 이유는 '돈'이라고 생각했다. 1인 가정의 생계를 담당하기 위해 월급은 필수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 보니 돈이 모든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 모난 마음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려 애썼고, 방향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민 중이다.


수많은 콤플렉스가 있다. 나이를 먹으면서 그 크기가 전보다 작아졌지만 이렇게 많은 콤플렉스는 인생의 슬픔이 되기도 하고, 아주 가끔은 자산이 되기도 한다. 콤플렉스가 많아서 새로운 일을 하거나 알고 싶은 이유가 된다. 나는 아는 게 많지 않고, 세상 물정에 그리 밝지 않다. 특히 재테크는... 아주 부족하다.


30대 후반에 피아노를 시작할 때,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이제 와서 시작한다니 ㅋ. 날 담당했던 선생님마저 눈빛이 흔들릴 만큼 부담스러워하셨다. 아직도 손이 더듬더듬 움직이지만 '유튜브'에서 듣던 클래식 곡 중의 일부를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해보지 않았다면 여전히 특별한 사람의 특별한 취향이라고 생각했을 일인데, 나에게도 그런 특별함이 일상이 되었다.


궁금한 게 많고, 알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 나였다. 물론 늘 재밌지는 않다. 오늘같이 연습을 제대로 못한 날은 학원에 빠지고 싶다. '좋다, 싫다'를 반복하면서 조금 있으면 4년이 되어간다.


작년의 나는 마지막에 이렇게 적었다.


혹시 아는가. 오늘의 내가 미래의 나를 구원할지도.


작년의 나에게 오늘의 나는 말한다.


맞아. 그때의 내가 오늘의 나를 만들었어. 그리고 오늘의 나는 미래의 나를 만들 거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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