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느림보

차가운 공기 그리고 공허

by 그럼에도

멍하게 있다가 갑자기 얼마 전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몇 달만에 만난 모임에서 '내향성과 외향성'이라는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보기보다 내향적이라고 말하는 나의 발언 다음에... B는 이렇게 말했다. 스케치온은 몇 년 전 사람들과 술자리에도 자주 참석하고 여기저기 주변을 맴도는 모습 그리고 정치적 발언도 잘했다면서 큰 소리로 웃었다. 물론 실제로 있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기억은 왜곡되어 있었다. 그때 참석했던 자리에 나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날 정치적인 발언은 지금 내 옆에 있는 B도 함께 했었다. 나 혼자만 그렇게 말했던 것처럼, 모임의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리는 B는 과거의 나를 웃음거리로 삼으며 대화를 주도했다... 분위기는 코믹했지만 당사자인 내 마음은 다소 찜찜했다.

B의 이런 이야기가 처음도 아닌데 씁쓸함은 여전했다. 조목조목 반박하고 싶었는데 하고 싶은 말을 꿀꺽 삼켜버렸다. 오랜만에 모인 사람들의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싶지 않았다. 그저 어색하게 웃으며 대화에 동조했다.


모임이 끝나고 다들 헤어졌다. 지하철 근처까지 걷다가 같이 걷던 일행에게 조금 더 이야기하자고 제안을 했다. 그렇게 한 지인과 나, B는 대화를 이어나갔다. 모두 나와는 다른 분야의 사람이었고 또 나와 정반대 성향이라 흥미가 있었다.


초외향적인 사람들, 승부욕이 강한 두 분은 나와 정반대의 생각과 인생을 살아왔다. 나와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재밌었다.


시간이 흐르고 계산을 하고 자리를 나왔다. 재밌고, 반가우면서 왠지 모를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 씁쓸함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는데, 정신없는 연휴를 보내고 돌아와서 정체를 느낄 수 있었다.


해야 할 말은 꾹 참고,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는 참지 못하고 말해버렸다.


왜 그랬을까? 나는 그날 내향적이지도 않았고, 외향적이지도 않았다. 그저 별로였다. 그날의 나는.


그날 내 마음에는 인정 욕구가 가득했다. 특히 B는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었다. 대화도 재밌었고, 모험을 즐기는 성향이고 인싸인 B가 좋았다. 하지만 B는 다른 사람들에게 대하는 것과는 다르게 나에게는 비꼬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을 갖게 했다. 한마디로 짝사랑 같은 사이였다. 나 혼자 일방적으로 B를 좋아했고, 챙겼다. 그런데 이제는 섭섭했다.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들이었지만 언제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나, 그럼에도 그들에게 인정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었던 내가 보였다. 그렇지만 그럴수록 더 멀어졌다. 타인의 눈빛은 밤공기보다 더 싸늘했다.


예전보다 꽤 성숙해지고 있다고 믿었던 나였는데, 나의 '인정 욕구'는 그대로였다. 그들의 인정을 받는다고, 칭찬을 받는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나의 부족한 자존감을 누군가의 인정으로 채우려 했다.


예전과 달라진 건 높아진 자존감이 아니었다. 그저 '나의 인정 욕구'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처럼 보인다는 점이 달랐을 뿐이었다. 그저 어리석은 내 모습이 거울에 보였다.


내향성은 괜찮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어리숙한 마음을 솔직하게 말했다는 점이 후회스러웠다.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완벽한 소재와 원인을 제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과거의 모습만 반복해서 말하는 타인이 문제일까?(나의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아서 더 인정받고 싶었다) 그들의 인정에 목매는 내가 문제일까? 나는 왜 똑같은 문제를 반복해서 만들까?


주변 사람들과 확연히 다른 조건과 배경화면이 문제일까? 굳이 내 약점을, 약한 마음을 밝힐 자리가 아니었는데, 그날 나는 너무 많은 말을 해버렸다. 그리고 나는 더 외로워졌다. 텅 빈 마음을 며칠이나 부여잡고 있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난 후 더 추웠던 가을밤!


날이 부쩍 추워졌다. 마음을 따뜻하게 다독여야 할 시간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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