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느림보

언젠가 시리즈 2

by 그럼에도

이사 날짜가 다가오고 있다. 버려야 할 것도 많고, 준비해야 할 것도 많다.


그런데 그전에 감사한 분에게 인사부터 먼저 할 생각이었다. 이 도시에서 감사했던 사람은 떠올리자면 두 명이다. 한 분은 지난주에게 인사를 드렸고, 다른 한 분은 오늘 찾아뵐 예정이었다.


두 분의 공통점이 있다면 호기심 많고, 도전 정신과 에너지 넘치는 여자라는 점이 있으며 또한 꽃을 사랑하는 점도 닮아 있었다.


지난주에는 시간이 부족해서 꽃집을 이용했지만 오늘은 아침 일찍 도매 꽃시장에 들러서 꽃을 사 왔다. 꽃 도매시장을 가는 것도 나의 '언젠가 리스트'에 있는 곳이었다. 시내에 있는 꽃시장은 몇 번 가본 적이 있지만 더 크다는 도매시장은 아직 가보지 않았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은 귀차니즘을 끝내게 된다.


이 도시의 맛집과 술집을 안 가본 건 그다지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오늘 다녀온 꽃 도매시장을 다녀오지 않았다면 오래도록 후회할 것 같다. 꽃 들어오는 월요일, 갓 도착한 꽃은 싱그러웠고 사랑스러웠다.


리시안셔스, 장미, 베리를 한 단씩 샀다. 가격은 놀랍게도 24,000원이었다. 이렇게 풍성한 재료를 이렇게 저렴하게 사다니!!! 득템 했다. 멀리 가지도 않고, 차 옆에서 신문지를 펼치고 미리 준비해둔 꽃가위와 꽃병으로 5분 완성의 꽃꽂이를 완성했다.


퇴근 무렵에 선물의 주인공에게 찾아갈 생각으로~꽃을 조수석 바닥에 고정시켜두었다.

선물의 주인공 H님은 정말 사랑스러운 61세의 분이다. 연세를 안 지 얼마 안 됐을 만큼 동안의 소유자이지만 가장 어린 부분은 Brain, 두뇌의 가소성이었다. 30대 보다 더 빠르지 않을까 싶을 만큼 새로운 것을 빨리 이해하고 흡수하고, 응용하셨다. 내가 하나의 아이디어를 드리면, 세 가지의 설루션이 나오는 마법이 일어났다.


업무적으로 알게 된 분이지만 H님의 인품, 살아온 길, 업무 외적인 매력에 흠뻑 빠져있었다. 내가 이 도시와의 피곤함보다 헤어짐이 아쉬운 건 H님이었다. 배우고 싶은 롤모델을 만난다는 건 정말 큰 행운이다.


우아한 H님에게는 어떤 꽃이 어울릴까를 고민했다. 우아한 '카라'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그런데 꽃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니 카라와 어울리는 소재를 발견하지 못했다. 나의 꽃꽂이란 제대로 배운 것이 아닌 원데이 클래스로 몇 번 배운 게 전부인 초보이다 보니, 어울리는 꽃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꽃시장에 맨 끝에서 우연히 빨간 열매인 '베리'를 발견했다. 베리를 샀고, 그다음엔 베리에 어울리는 꽃으로 간단히 준비했다. 리시안셔스가 그 주인공이었다.


초보인 내가 가장 많이 산 꽃은 가장 좋아하는 작약이 아니라 흰색의 '리시안셔스'였다. 리시안셔스는 어떤 꽃, 어떤 소재와도 마법처럼 잘 어울린다. 마지막에 고른 꽃은 장미였다. 은은한 색이 H님의 평소 옷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꽃 포장을 못하는 관계로 바로 꽃병에 담아서 선물을 전해드렸고, 좋아해 주셔서 나도 좋았다.


난 내가 적응을 잘해서 이 도시에서 어려운 시간을 잘 보냈다고 생각했다. 떠날 때가 되니 그건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내 마음의 지지대를 형성해 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나의 늦은 적응과 마음의 응어리가 더 빨리 풀어질 수 있었음을 이제야 알았다.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적지만 잠시나마 웃을 수 있는 이벤트를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

선물 후 남은 꽃은 집에서 재밌게 태어났다. 오~많지 않은 소재도 생각보다 고급스러웠다. 부족한 꽃병은 다 먹고 난 꿀병이 대신했다. (꿀병 스티커는 사진의 반대편에 ㅋ) 정말이지 리시안셔스는 어디에서나 두루두루 잘 어울리는 꽃이었다. 문득 나도 하얀 리시안셔스 같은 사람이 되면 어떨까 생각했다.


화려하지 않지만 우아하고, 깨끗하다. 어디에 놓여 있어도, 어떤 사람과도 잘 어울리는 매력을 가진 사람이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은 감사한 분에게 마음을 전하고 나에게는 적극적으로 미소와 행복을 찾아 나선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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