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교가 없다. 그럼에도 가끔 생각한다.
만약 천국과 지옥이 있다면 분명 나는 천국 입장권은 못 받을 것이다. 그래서 교회에 안 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에 대해서 브런치에 글을 쓴다. 너무하다면서.
반대로 내가 가장 크나큰 상처를 주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엄마다. 엄마에게는 같은 말도 참 독하게, 못되게 나온다. 삐뚤어진 마음과 거친 말에 브레이크가 없다. 동생들은 엄마랑 재밌게 수다를 떠는데, 나는 엄마 앞에서 얼굴이 늘 굳어있다. 엄마와 함께 있는 걸 불편해한다.
요새 집 문제로 고민 중이지만 집에는 말한 적이 없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였다. 내 문제는 늘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스스로 동분서주하면서도 인생의 내공도 쌓였지만 그래서 더 외로웠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족이 아닌 친구들이나 지인들에게 쉽게 마음을 의지했는지도 모른다. 그게 모든 문제의 시작점이 아니었을까?
어렸을 때 나는 엄마에게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는 분리불안증의 아이였다고 한다. 지금의 나는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것도 어려워하고 있다. 엄마와 나의 엉킨 실타래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시작점을 찾기도 어렵다. 엄마는 나의 소식을 동생을 통해 확인한다.
어이없게도 그런 나는 친척들 사이에서 '효녀'로 소문이 나있다. 내가 하는 선물이나 경제적 지원이... 즉 경제적인 것이 만들어낸 별명이었다. 마치 헌금을 가장 많이 낸 사람이 '가장 착한 사람'으로 불리는 것처럼 어색했다. 이런 나를 친척들도, 사촌들도 모두 경계했다. 사촌과 외사촌들은 비슷한 나이대에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언제나 비교가 된다. 그렇게 우리는 사이 나쁜 혈연관계의 사람들이고 만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엄마에게 거침없이 모진 말을 했으면 사이다처럼 시원해야 할 텐데... 결과는 며칠 째 찜찜함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나와 엄마는 적정한 거리 이상으로 가까워질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우리는 가까워질 수 있을까? 엄마와 내가 함께 지낼 수 있는 시간은 이틀이었다. 삼일이 되는 날부터는 이성의 끈이 사라졌다.
엄마가 갱년기가 되면서 사이는 더 나빠졌다. 물론 나 역시 나이를 먹으면서 성격이 나빠진 것과 쌍벽을 이루게 되었다. 갱년기라는 건, 호르몬의 마법인지 엄마는 점점 무기력해지고, 귀찮아하는 것이 늘어갔다. 그런 엄마를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는 엄마는 또 충돌했다.
가끔은 두렵다. 나이가 들고 나 역시 그렇게 무기력해질까 봐서. 무기력이 내 몸속 DNA에 내재되어 있을 것 같아서. 쉬지 않고 새로운 걸 계속 배워야겠다고 다짐한다. 난 그러지 말아야지를 반복한다. 어쩌면 나의 의욕은 무기력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예쁜 색연필을 사고도 잘 쓰지 않았다. 그렇게 몇 달을 묵혀둔 색연필을 얼마 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는 날은 마음이 불안하거나 우울하거나 내 마음이 어두울 때다. 그림책을 빌려다가 따라서 그리고 마음에 드는 색으로 색칠을 한다.
엄마에게 올해 들어 가장 못된 말을 했던 날부터 나는 매일 색연필을 들고 있다. 그리고 앙증맞은 동물 캐릭터를 그리고 있다. 나는 이번 생은 어떻게든 살아내기로 했다. 내가 원하는 모습과도 거리가 멀고, 특별히 내가 마음에 들지도 않지만, 그저 살아내기로 했다. 다음 생도, 다음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나에게 해당되지 않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