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틀려서 좋았다!
나의 예감이 틀려서 기뻤다!
오늘 저녁 나는 예정에 없던 부산행 기차를 탔다. 부산 집 CCTV에 한 남자가 잡혀서였다.
위층에서 떨어진 누수 공사로 어쩔 수 없이 현관 비밀
번호를 집주인에게 알려주었다. 구해놓은 다음 세입자를 몰아낸 집주인과는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해 있는 상태였다. 공사가 끝날 때가 되어도 집주인과 가끔은 웬 남자 한 분이 핸드폰만 들고 집에 들어오는 모습이 영상으로 보였다. 그때부터 온갖 나쁜 생각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랐다.
빨리 내려가서 현관 비밀번호를 바꾸고, 거실에 CCTV 한 대를 더 설치하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러나 난 코로나 바이러스를 만났고, 자가 격리되었다. 부산 집 생각은 잠시 잊기로 했다.
그런데 주말에 또 한 남자가 10분간 왔다 갔다. 집주인에게 누구냐고 문자를 보냈지만 여전히 무응답이었다. 부동산이며 집 고치는 사람까지 모두 비밀번호를 안다는 게 내심 찜찜했다.
퇴근을 부산으로 했다. 택시로 시간 아껴서 부산 집에 도착했다. 가구 하나 없이 빈 집인데도 뭔가 따뜻하고 익숙했다. 13개월을 함께 했던 곳의 익숙함일까?
누수 문제가 있던 화장실에 가보았다. 누수 흔적은 사라졌고,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진 욕조에 하얀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다. 덧칠의 흔적은 깔끔하지는 않지만 전보다는 나아졌다.
사는 동안도 페인트칠 한 번에 인색했던 집주인인데, 약이 오를 데로 올라서 소송이라도 걸 자세로 말하는 나의 이야기에 처음으로 응답했던 것이었다. ‘임대인의 수선 의무’라는 법률 용어로 큰소리치니, 화장실 전체 공사를 해줄 것(?) 같은 자세로 답을 했지만 그동안의 행동으로는 뻥이라고 생각했다.
진짜 진짜 하겠다는 말은 페인트 한 통이 전부였다. 하지만 하얀 페인트가 칠해진 욕조와 세면대를 보니 마음에 마데카솔 연고를 바른 느낌이었다.
그동안의 집주인의 말과 행동에서 ‘실행’ 하지 않을 거라고 부동산 소장님마저 확신했었다. 수리라도 했다면 그 금액 이상을 월세에 전가시킬 거라고 했었다.
왠 낯선 남자의 방문이 수리였다는 것을 알았기에 마음 놓을 수 있었다. 정말 편히 마음 비우고 이젠 하늘의 뜻으로 이 집을 맡겨야겠다. 집주인이 수리 중이라고 한 마디만 답문이 왔다면 오늘의 해프닝은 없었겠지만. 그래도 좋았다.
두 눈으로 낯선 남자의 정체를 확인했고, 집주인이 하나라도 행동했다는 것에서 ‘미워하는 마음’ 한 조각을 떼어낼 수 있었다.
사람은 미워한다는 건 너무나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더 이상 미워하지 않을 수 있어서 좋았다.
집에 도착하면 화요일 새벽이 되겠지만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어서 덜 추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