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느림보

마음에도 경력 관리를

by 그럼에도

새로운 팀에서 나는 중상 정도의 근무 연차다. 연차가 높고 낮음이 내 업무에서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연차가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연차와는 반대로 사내에 여기저기 인맥도 없고, 소통하지도 않고 있다. 처음 입사해서는 우리 팀, 옆팀, 건너 건너 아는 사람들 경조사까지 챙기고, 어떻게든 연락을 했던 나였다. 연차가 올랐다고 해서 갑자기 달라진 건 아니었다. 6~7년 전쯤, 신입 때 같이 근무했던 다른 팀 분과 식사를 하면서 '현타'가 찾아왔다.


과거의 인연도 현재와 미래로 이어가려던 나의 노력을 B선배는 비웃었다. 오랜만에 나의 연락으로 점심을 먹게 되었다. 싫으면 싫다고 했으면 좋았을 텐데, B선배는 차가운 얼굴로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다가 마지막엔 회사 돌아가는 상황을 모른다며 '돌려서 비꼬는 특유의 멘트'를 들려주며 일어났다.


아마도 그때부터 서서히 멀어졌던 거 같다. 체질적인 내성적 소유자인 나는 적극적 '인싸' 성향의 사람들처럼, 아니 보다 열심히 여기저기 챙기는 습관이 서서히 멀어졌던 건.


그렇게 서서히 멀어졌다가 지방 근무와 코로나로 완전히 과거의 나와 달라지게 되었다.


이번엔 새로운 사람들이 있는 새로운 팀에 발령받았다. 신입이 없는 만큼 새로운 팀원 OO님이 궁금하다면 전 팀이나 다른 사람을 통해 수소문해서 평판을 들어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라는 사람의 좁은 인맥과 그동안의 습관은 그럴 수 없었다. 처음 본 후배 중 한 명은 술자리에서 말했다. 나에 대한 평판을 들었다고. 그게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누군가에 대해서 미리 알아본다면 편리할 수도 있다. 피해야 할 성향(?)의 사람이라면 정말 중요한 정보가 될 것이다. 반대로 누군가에게 잘못된 선입관을 가질 수도 있다. 어쨌든 지금 나의 선택은 백지처럼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 누구와도 전처럼 긴밀한 사이를 유지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있었다.


각자의 일을 하고, 팀원을 자주 만나지 않는 일의 특성상 지킬 수 있는 다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회의를 하면서도 각자의 개성과 인성이 서서히 드러났다. 한 후배가 회사의 어떤 사항에 반대를 표했다. 그것도 내 이름을 거론하면서.


"G선배, 스케치 온님도 OO님의 강의가 별로라고 그랬어요. 바꿔야 한다면서요."


본인이 싫다는 말을 하지 않고, 부정적인 의견을 굳이 선배 내 이름을 들먹이면서 반대했다. 그것도 우리가 직접 나눈 이야기도 아닌 팀원 카톡방의 긴 글의 일부를 편집해서...


왜 남의 이름을 들먹이면서 부정적인 의견을 전달할까? 그 전에도 그 후배의 엄청난 멘트를 듣고 뒷목을 잡은 적이 있었다. 그냥 칭찬을 하면 될 것을,,,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모두 도매급으로 내려버리면서 본인의 높은 애사심을 높은 분께 말씀드렸다. 사랑스러운 미소와 함께.


본인의 능력으로 인정받고, 본인의 생각으로 의견을 말하면 될 텐데, 빌런 후배는 남을 이용해서 본인을 띄우는 버릇이 있었다.


이런 빌런 앞에서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한 때, 내가 한 말의 일부를 편집하거나 또는 윗사람에게 수시로 보고하던 선배 악당이 떠올랐다. 이번엔 후배 악당이 등장했다. 이럴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동안의 경험을 보자면 이럴 때 나는 최대한 비대면과 대면 상황에서 말을 줄여야 한다. 빌런의 눈에 나는 이용하기 적당한 만만한 선배였던 거 같다. 팀원들 간의 카톡방이나 대화에서는 상냥했지만 윗사람 앞에서는 돌변했다.


후배 악당의 대화 소재에 등장할 여지를 남겨서는 안 된다. 비대면인 카톡방 이야기 대부분은 업무 이야기였지만 부정적 의견은 남기지 않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또한 대면 상황에서도 후배 악당의 못된 말에는 조용히 웃어넘기지 말아야겠다는 다짐도 함께.


좋은 분위기를 위해 쉽게 넘어갔던 말과 행동이 나를 만만한 대상으로 보이게 했다. 빌런들은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드는 맹수처럼 언제나 만만한 사람의 주변에서 공격할 준비를 한다. '내가 예민한 건가?'라고 넘겼던 한 후배는 이제야 빌런의 본색을 드러냈다.


연차와는 반비례하는 나의 사회생활에 '빌런을 쫓아내는 마음 경력'을 쌓아 보기로 했다. 외유내강이 될 수 있을까? 여기저기에서 흔히 빌런이라고 부르는 악당들을 유형별로 만나다 보니 마음에도 커리어가, 경력이 쌓여간다.


이런 사람 멀리합니다! 건강한 일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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