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조카 찌유리는 돌이 막 지난 시기부터 어린이집에 다녔다. 조카는 엄마의 걱정과는 달리 선생님을 너무나 사랑했다. 그런데 그 사랑은 좀 무거웠다^^;;
찌유리는 선생님을 보자마자 목을 꼭 잡고 안겨서는 떨어질 줄 몰랐다. 다른 원생들도 있는데 찌유리는 선생님을 독점하고 싶어 하는 욕심쟁이였다. 선생님도 찌유리 성화에 못 이겨서 담당하는 일 년 동안 어린이집에서 가장 많이 안아주셨다. 찌유리는 어디에서나 관심도, 사랑도 혼자만 받고 싶어 하는 유난한 아이였다.
어제 한 수업에서 나는 찌유리와 닮은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나는 수업 시간 내내 토끼눈으로 두 시간을 보내야 했다.
작문 숙제를 해 온 사람 중에 나는 분량이 가장 긴 학생이었다. 선생님은 다른 사람들과의 시간 배분을 위해 일부는 넘어가고, 일부만 교정한다고 말씀하셨다. 그걸 본 수강생 A는 '선생님께서 미리 분량을 말해주지 않으셨다. 왜 분량을 자르는 거냐'면서 이의를 제기했다. 당황스러웠다. '본인인 나도 괜찮다는데, 옆에서 왜 내 걱정을 해주는 걸까'라는 생각도 잠시였다. 곧 진짜 이야기가 나왔다.
"OO님이 5쪽이나 교정을 보면, 그건 편파적인 거라고 말했다."교정을 받기도 전이었고, 수업 시작과 동시에 수강생 A는 화를 랩으로 노래했다. 오늘 집에 안 좋은 일이 있었을까. 아니면 내가 작성한 글 자체가 보기 싫은 걸까? 언제는 왜 과제를 전부 안 봐주냐고 뭐라고 하다가, 갑자기 편파적이라고 말하는 A의 문장에는 논리는 없었다. 그저 A가 주인공이 되어 무대에서 독백하는 장면만 있었다.
A의 성화에 내 원고 교정은 전보다 더 짧게 지나갔다. 그렇게 화를 내던 A는 본인 교정은 남들의 두 배 이상의 시간을 받았다. 그럼에도 화가 풀리지 않는지, 계속 삐죽거리고, 툴툴거리며 말했다.
마흔이 가깝거나 넘었을 거라고 보이던 A가 하던 말과 행동에서 조카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A가 처음에는 나를 걱정하듯이 말했지만 결국은 '편파적'이라는 말로 본인이 이 수업을 독점하고 싶었음을 고백해 버렸다. 사람들도 그런 A의 성향을 한 번에 파악해 버렸다.
섬세함으로 감정의 흐름을 물 흐르듯 적어내던 A에게 실망감을 느꼈다. 글과 사람은 별개의 캐릭터였다. A의 마음에는 선생님에 대한 존경을 넘어서 나만 독점하고 싶은 대상이었다. 인정의 욕구와 애정의 욕구가 결합된 모습은 타인에게는 피곤함을 안겨줄 뿐.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누구나 철이 든다고 말했다. 정말 그럴까?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는다는 건 철이 들 수 있는 확률이 올라감을 의미한다. 집에서도, 밖에서도 책임도, 역할도 많아지니 성숙해질 확률이 높아져 간다. 확실한 건 철이 든다는 건 그저 확률이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시간은 성숙함을 선물하지 않는다. 어른이 된다는 건 경험과 노력, 고민으로 이뤄낸 결과물이었다.
어떤 사람은 20살에서 시간이 멈춰있고, 어떤 사람은 70살에도 성장을 멈추지 않는다. 나는 몇 살까지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일까? 누구의 인정도 아닌 나 스스로가 인정해 주고, 애정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