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느림보

발견

by 그럼에도



"서울 사람들은 연극도 많이 보고, 여기저기 문화적 혜택을 누릴 게 많은데~부산은 어디 갈 데가 없어요.”

작년에 문화행사를 기획하는 소모임에 참가할 기회가 있었다. 줌 화면으로 만나는 여섯 명의 사람들 중 작년에 기획에 참여했던 유경험자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진행하는 방법과 시에 지원서를 제출하는 설명은 간단했다. 그 다음에 붙은 서울에 대한 동경과 부산에 대한 불만으로 그 다음 대화가 이어졌다.

시의 지원금을 받고 원하는 강좌를 직접 기획하고 운영해볼 수 있을 거라는 설렘을 유경험자 A의 한 마디로 차갑게 식어갔다. 6명의 사람들은 북카페의 대표이자 모임 운영자인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르는 사람들이다. 듣기로 A는 전부터 이 모임에 참여했고, 성공한 기획자 중 한 명이라고 했다.

만나기 전 들었던 설명과는 달리 줌으로 만나보니 실망감이 컸다. A는 자신이 기획한 행사의 만족감이나 자긍심보다는 서울을 동경하는 마음, 현재 지역에 대한 아쉬움이 컸던 청년이었다.

경청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엔 내가 흐름을 끊어버렸다. "서울 산다고 다 연극 보고, 음악회 가면서 살지 않아요. 그건 일부의 취향이에요. 대개는 맛집에 가거나 영화를 보는 게 다수의 취향이고요. 부산이 문화 수준이 떨어지거나 갈 곳이 없다는 건 잘못된 생각이에요."

A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다른 참가자 B가 한 마디를 더 보탰다. 제 친구도 서울에서 직장 다니는데 서울 사람들이라고 다 연극 보고, 뮤지컬 보고 살지 않는다고 하던데요.”

그렇게 쐐기를 박아버렸다. 당황한 북카페 대표와 일그러진 A, 듣다가 분개한 나와 B, 조용한 청중 몇은 그렇게 대화방을 나왔다.

이해할 수 없었다.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적어도 나의 기준에서 그랬다.

부산에 먼저 내려온 서울 사람인 직장 동료는 말했다. 부산은 문화의 도시라고. 도서관은 왠만한 서점보다 더 빨리 신간이 들어오고, ‘부산체육회’라는 이름으로 여기저기에 가성비 좋은 체육시설이 많이 있고, 동네에서 문화 강좌도 자주 열린다고 말했다.

살아보니 정말 그랬다. 도서관 추천 도서는 유명서점의 추천 도서보다 전문 서적이 많았고, 저자 직강이나 문화 행사가 빼곡하게 열렸다. 그나마 코로나로 위축돼서 축소된 정도가 이만큼 이라니? 문화회관에서는 극단 단원이나 연주자에게 직접 배울 수 있는 문화센터가 주간, 야간으로 개설되어 있었다. 그것도 서울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가격으로.

체육엔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롯데 자이언츠의 고장인만큼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A의 이야기를 인정할 수 없었다.

수도권에 살면서도 이용해보지 않았고, 검색해보지 않았던 문화 시설이나 공간을 찾아보았다. 원데이 그림 강좌에도 가보고, 문화기획을 직접 해볼 수 있는 북카페조합원으로도 참여해 보았다.

한 마디로 그 전의 나는 무색 무취한 사람이었다. 특별한 취향이 없는 사람, 사람들과 어울림이 많았던 사람이었다. 낯선 도시, 코로나세상이라는 완벽한 고립의 공간과 시간 속에서 나는 취미를, 취향을 찾게 되었다.

부산 생활 3년차가 되었다. 나 역시 어느 날부터 서울을 동경하게 되었다. 취향이 생기고 나니, 더 높은 수준의 것을 원하게 되었다. 원하는 것과 다양한 수준의 것들이 모두 모인 도시는 역시 서울이었다.

그리고 다시 서울에 올라와서 서울에 있는 글쓰기 모임에 참가하게 되었다. 문득 줌에서 만났던 A가 떠올랐다. A의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A의 이야기는 마음에 오래 남아 있었나 보다.

서울에 다시 올라오고 나서야 알았다. 서울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곳이 많다. 큰맘 먹지 않아도 지하철로 버스로 여기저기 문화를 누릴 수 있는 곳이 많았다. 부산에서 수준 높은 취향이 생긴다면 일이 복잡 해진다. 원하는 음악회도, 뮤지컬이 내려오지 않거나 바로 매진이 되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날 잡고, 여행하듯 움직여야 어렵게 얻을 수 있는 것이 문화 생활이었다.

A에게 사과한다. 무색 무취한 취향인 나에게는 감사했던 경험이, 취향이 생긴 다음에는 A처럼 서울을 동경하게 되었다. 각자의 기대 수준이 달랐고, 관점이 달랐음을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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