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날 잘 키워야 할까?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당연해서 그게 질문인지 궁금할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싱글의 배부른 소리로 들릴 것이며, 나에게는 성장이자 생존일 수 있는 질문이다.
요새 몰입하고 있는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문동은을 괴롭히는 이유는 '괴롭혀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였다. 가장 미미한 존재이고, 어떻게 해도 그 대가를 치르지 않는 존재였다는 것이 괴롭히는 이유였다.
오래전 나에 대한 소문 중에 '된장녀'라는 말이 있었다. 동료 중에 명품으로 도배를 하거나 고가 수입차를 운전하는 사람도 된장녀라고 부르지 않았는데, 반대인 내가 왜? 들리는 말로는 집 주소였다. 당시 살았던 집은 집값이 비싼 동네였다. 본인의 살림보다 좋은 동네에 산다는 이유가 그 증거라고 했다. 또 회사랑 가까운데 집을 얻은 걸 보니, 야망이 클 거라는 허황된 멘트까지 보태져서.
소문 네트워크망에 멀리 살다 보니 누가 그런 악의적인 소문을 냈는지도 모르면서 속앓이를 한 적이 있었다. 몇 년 후 우연히 알았다. 소문의 유포자, 매일 연락하는 가까운 선배였다. 겉으로는 친한 척하면서, 뒤로는 없는 이야기와 있는 이야기를 뒤섞어서 소문과 소문을 생성 중이었다. 엄청난 재능을 글로 풀어냈다면 작가로 이름을 날렸겠지만 그 선배는 말로 풀어내는 걸 좋아했다.
시간이 흐르고 더 악의적인 것들이 쌓이고 쌓였다. 드라마에서 진실은 밝혀진다고 하는데, 현실은 반대로 겹겹이 쌓이는 누네띠네 파이 같다고나 할까. 여하튼 그런 악의적인 소문은 해소되지 않았다. 소문유포자의 재능은 나 한 사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런 악의적인 프레임을 씌었다가 걸린 적이 있었다. 물론 미안해하지도 않고, 오히려 더 크게 대들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소문유포자들은 현재도 좋은 위치에서 잘 풀리는 중이다. 인과응보나 권선징악은 동화책에서만 존재하는 것인지 오랜 세월이 흘러도 이는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프레임이 씌워진 사람만이 감당할 무게가 더 늘어날 뿐이었다.
소문이 얼마나 무거운지 당사자인 내가 제대로 모르는 것이 어쩌면 더 좋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소문의 유포자가 정말 싫어한 것 중에 하나는 내가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이었다. 원서를 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네가 OO학교에 되겠어?"라는 말을 전했고, 현실은 그와 반대로 면접장소에서 바로 합격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잘 되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일그러지는 눈빛과 더 악의적인 소문을 만들어내는 입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드라마처럼 시원하게 복수하는 법도 모르고, 반대로 내가 엄청나게 잘 나가는 사람이 되어 벌할 수 있는 자리도 되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흘러서 보니, 사내에서도, 오랜 친구라고 믿었던 사람들마저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이었다. 겉으로는 달콤했고, 속으로는 곪아 있었다. 나에게 집중하고, 여러 가지 일들로 바빠지면서 서서히 멀어졌다. 그렇게 멀리 오고 나서야 알 수 없는 미로가 한 장의 그림처럼 보였다. 내가 잘될 수 없는 이유를. 오랜 가스라이팅, 스스로를 미워하는 힘과 게으름, 불신까지도.
소문이 어떻든, 평판이 어떻든, 회사에서 잘 나가지 않아도 그저 내 인생에 충실할 것이다. 주변 환경이 날 도운 적은 없으니, 스스로가 스스로를 도울 수밖에. 주변 환경이 아무리 척박해도 싹트기를 멈추지 않는 잡초가 진짜 멘토가 아닐까. 작은 잎사귀로 시멘트 바닥을 뚫어 버리는 강인한 의지처럼 나의 재능을 어떻게 발견하고 키울지를 고민하고 있다.
뭐 쫌 못하면 어때? 쫌 더디면 어때? 한 번 사는 인생, 하고 싶은 거 다하고 살다 가면 되지. 그렇게 궁금했던 분야에 수강신청 결제 버튼을 눌렀다. 3월엔 그림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