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은 불과 같아.
멀면 춥고, 가까우면 따뜻한데,
선을 넘으면 모든 것을 태워버리지
- 배우 윤여정 -
너무나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J는 나보다 다섯 살이 어린 귀여운 친구인데, 정신 연령은 나보다 열 살이 많았다. 귀여운 외모와 똑 부러진 언어, 명석함과 밝음이 공존했다. 내가 갖고 싶은 걸, 모두 갖고 있었다. 게다가 사회생활이나 인간관계의 적절한 선을 아는 모습에 반했다.
J의 매력에 빠졌다. 질투가 나기 보다는 닮고 싶었고, 가까이하고 싶었다. 같은 활동을 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J와 대화할 일도 많았다. 그렇게 언니 같은 안정적인 J에게 나는 마음으로 많이 의지하게 되었다.
사람들 속에서 힘든 일이 있거나, 어떤 변화가 생겼을 때 나는 J를 제일 먼저 찾았다. 시간이 흐르고, 좋은 일보다는 좋지 않은 일이 더 많았다.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과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나' 사이에서 갈등할 때였다.
배려심과 공감 능력이 좋은 J는 나에게 고마운 친구였다. 그런데 나는 조금씩, 어떤 날은 성큼성큼 선을 넘어버렸다. 본인의 일도 힘든데, 나의 힘든 감정을 번번이 털어놓으면서 J를 부담스럽게 했다. J와 한 시간 넘는 전화 통화가 끝난 후, J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늘 후회했었다. 오늘도 J를 괴롭혔구나.
이번에는 내 이야기를 좀 줄였어야 했는데, 이번엔 J의 이야기를 들었어야 했는데... J를 생각하면 좋으면서도 미안함이 앞섰다. 가끔씩 J가 바쁘거나 힘들어 보이면 카톡 선물을 보내기도 하고, 간식을 사기도 했었다.돌이켜보니, 어쩌면 미안한 마음을 말 대신 선물로 대신했던 것 같다.
코로나 시기와 지방 근무로 오래 J를 만나지 못했다. 오래만에 통화를 했고, 또 긴 통화를 했다. 그 후로 J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날도 어김없이 J에게 많은 이야기를 독백해 버렸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차갑다는 인상을 주는 나인데, J에게만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내가 너무 외로워서였을까? 나는 관계에 집착하는 게 아닐까? 다양한 질문을 나에게 던져본다.
J도 처음 살아보는 인생에, 가정과 회사와 육아로 바쁜데... 갑자기 나까지 끼어들어서 가끔씩 훼방을 놓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의 조급함과 욕심으로 관계의 선을 넘고 있었다. 그에 반해, J는 언제나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
일방적으로 혼자만 선을 넘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빌런이었다. J에게 늘 수다스럽고, 걱정과 고민 많은 지질한 언니에 불과했다. 무리 짓는 사람들과 나는 다르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 역시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인정받고 싶었던 소심한 어른아이였던 것이다. 그렇게 J와의 관계는 엇나가버렸다. 오랜만에 연락할 때도 몇 번을 망설이게 하는 그런 이유가 생겨버렸다.
다음에 J처럼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생긴다면, 그때는 물 흐르듯~자연스럽게, 너무 멀지 않은 거리에서 가끔씩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늦은 다짐을 한다.
철없는 나는 누군가에게 그렇게 악당이 되었다. 나는 빌런이다. J에게 기회가 된다면 사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