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느림보

과거의 그림자가 정면에 다가왔다

by 그럼에도

갑자기 미운 생각이 떠오른다. 그것도 강렬하게.


분명 들었을 때는 놀랐지만 살면서 잊고 있었는데 말이다. 한 녀석이 결혼한다고 말했다. 나와는 두 자릿수 이상의 나이 차이가 존재하는 사람이었다. 밝고, 언제나 애교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런 B가 한 자리에서 그런 말을 했다. 사람들과 화기애애한 기분으로 모두 맨 정신에도 감정이 취한 그 순간에 말했다.


"누나~너무 좋아요. 누나가 결혼하면 우리 모임 안 챙길 테니까, 누나는 평생 결혼 안 했으면 좋겠어요."


나 역시 분위기에 취해있을 때, 늘 귀엽게 보이던 B가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어안이 벙벙해하는 나를 두고, 다음 약속이 있다며 자리를 떠났다. 그 시간에는 나도, 녀석도 모두 맨 정신이었다.


평소 B의 성격은 유머는 넘치지만 속 얘기는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두 본인보다 훨씬 나이가 위라서 편할 리 없는 자리였다. 그래서 나름 더 챙겨준다고 챙겨줬건만, 내가 들은 말은 위에 적힌 멘트였다.


B에게 나는 '사람'이 아닌 모임을 위한 '도구'로 보였던 것 같다. 물론 지금도 나는 미혼이지만... 전처럼 모임도, 사람도 챙기지 않는다. 지방 발령과 코로나로 고립된 시간을 보내고 온 다음, 분명 나는 달라졌다. 어떤 굳은 결심을 한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자리가 전처럼 재밌지 않다. 특히 술자리는 꽤나 부담스럽다. 출발하기 전부터 마음이 무겁다. 사람들을 오랜만에 만나는 건 좋은데 전처럼 즐겁지 않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B의 예상과는 달리 나는 미혼임에도 전과는 반대의 사람이 되었다. 분명 좋았던 일들이 많았는데, 그런 기억은 저 멀리 사라지고, 씁쓸한 기억이 더 강렬할까? 아니면 믿었던 사람에게 느낀 배신감이라서 더 그렇게 느낀 걸까?


사이좋았던 날들은 더 오래됐고, 씁쓸한 기억은 비교적 최신이라서 그런 걸까? 심리학책에서 읽었던 구절 중에 사람들은 좋은 것보다 부정적인 것을 오래 기억한다는 말이 있었다. 나를 보니 그랬다. 만나면서 사람들을 통해서 다른 생각, 환경, 삶의 자세를 배우는 좋은 경험이었는데 그런 점보다 잠깐잠깐씩 보였던 작은 것에 더 오래 생각났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도드라진 말을 했을 텐데, 그건 기억이 없는 게 아쉽다. 누군가에게 더 해주려는 노력보다 들어서 싫을 말을 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는 단순한 진리를 떠올린다.


또한 모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보다 가끔씩 참여해서 웃고, 기본 매너에 충실한 사람들이 사람들과 가장 오래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노력한 게 많아서 바라는 게 많은 걸까? 그래서 더 쉽게 배신감을 느끼는 걸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적당히 거리를 둔다, 그리고 조용히 관망하는 자세를 갖는다, 기본 매너에 충실하자'라는 마음의 소리가 유난하 크게 들린다. 길에서 올해 첫 매화를 보았다. 봄은 오고, 나는 달라졌고, 세상도 다르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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