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잠을 밤잠처럼 깊게, 오래 자고 일어나 보니 저녁이었다.
자고 일어나니, 그제야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 세계에 갔다가 현실 세계에 돌아온 드라마 속 주인공 같았다. 오전에 있었던 일들이 과거 세계로 느껴졌고, 과연 내가 잘한 일인지를 곱씹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며칠 전, 열 살이 된 반려견이 개껌을 먹지 못하는 걸 발견했다. 평소 간식을 주지 않아서, 어쩌다 보는 간식을 보면 그날이 파티인 것처럼 환호하는 녀석이, 가만히 눈으로만 바라보다니. 이건 불길한 신호였다. 사람 말을 못 하는 반려견이라서,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거나 반응을 하면, 주시해야 한다. 그건, 예외 없이 어딘가가 아프다는 신호였다.
나이도 나이였고, 평소 양치질을 제대로 안 해준 나의 불찰로 미루어 보면, 치과에 가야 한다고 스스로 판단했다. 그때부터 스케일링 검색을 시작했다. 평소 다녔던 병원보다 치과 전문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비용을 알았을 때, 1차 충격을 받았다.
동물의 스케일링 비용은 사람이 받는 ‘본인 부담 100% 비용’으로 비교해도, 사람의 열 배가 훨씬 넘는 가격이었다. 물론 스케일링 전에 피검사와 수액, 마취료, 항생제 가격이 포함된 것이라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덜컥 결제하기 힘든 금액이었다.
부산 집문제로 매달 고정적인 큰 비용이 발생하니, 전에 다녔던 피아노학원도 시작하지 못했고, 기분 따라 구매했던 인터넷 결제(옷)도 올해부터는 멈추었다. 우선순위를 세워서, 전에 없던 소비 다이어트를 진행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긴축 모드로 살고 있는데, 갑자기 큰 비용이 필요한 순간이 찾아왔다.
삶의 우선순위에서 치과가 필요한 것일까? 사람들도 지갑 사정이 나빠지면, 병원 중에서 치과부터 중단한다고 한다. 불편하지만 죽고 사는 것에 영향이 가장 적다고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내가 살아본 결과, 이건 결과적으로 반대 결과를 가져왔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다'라는 교과서적인 표현처럼 스케일링으로 막을 것을 충치와 잇몸 치료까지.... 긴 시간과 고통, 목돈이 들어갔다.
치과는 자주 방문할수록 목돈도 아끼고, 영구치도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살면서 배웠다. 그런 나의 교훈이 반려견에도 적용돼야 하는 게 아닐까?
치과 병원 중에 후기가 좋았고, 비용이 다른 곳보다는 덜한 곳을 발견했다. 치과병원에 가기로 한 날, 잠을 설쳤다. 계속 꿈을 꾸었고, 동생 말로는 밤새 잠꼬대를 심하게 했다고 했다. 눈뜨자마자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충치는 없었지만 염증 문제와 앞니 일부 파열로, 앞니 모두 발치해야 한다는 소견을 들었다.
발치를 하지 않기 위해 전문병원에 왔는데... 소견을 듣고 전문지식이 없는 나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호흡마취와 스케일링, 발치, 수액을 맞고 병원에 나왔다. 몇 시간의 마취를 하고 온 녀석이 장하기도 하고, 치과치료를 잘한 게 맞는 건지, 나의 결정에 물음표를 던졌다. 오늘 잘한 게 맞는 걸까? 나는 왜 스스로 이곳에 왔을까?
잘 먹지 못하는 낭이를 보면서, 무서웠다. 같이 오래 살기 위해서 오늘의 수술을 결정했다. 사람도 오래 생존하려면 치아 건강이 중요했다. 잘 먹을 수 있고, 치아에 염증이 없어야 다른 장기에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들었다. 반려견도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다음에 치과병원에 또 올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혹시나 다음에 병원에 와야 한다면 꼭 평일에 병원에 갈 거다. 토요일은 누구에게나 설레고, 빨리 끝내고 싶은 강한 충동이 있다. 오후 예약이 없어서인지, 병원 문을 빨리 닫고 싶어 하는 직원들 사이에서, 프로포폴 기운에 비몽사몽 하는 아이를 흔들어 깨웠다. 수액은 반도 넘게 남아 있었는데… 나가야 할 분위기였다.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최근에 얻은 여러 가지 변화의 시작은 무엇이었을까? 나이는 아니었고, '낭이 입양'이었다. ‘공원 산책, 플래카드 보고 저자 특강 발견, 취미, 다른 동선으로 걸으면서 동네 환경 알기, 오래 관찰하기’는 낭이의 취향이고 특기였다. 그런 낭이를 보면서, 나 역시 서서히 달라졌다.
나의 취향의 근원은 낭이.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은 낭이를 입양한 것이다. 십 년간 낭이가 나를 '건강한 어른'으로 잘 키워줬다.
태어나줘서 고마운 생명체, 오래도록 함께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