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바쁘게 다니는 거리를 옆에 두고 나는 두 마리의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즐겼다. 공원 중간에 위치한 동네 언덕을 올라가자고, 벌써 앞장서는 한 마리를 대장으로 모시고, 두 시간의 한낮 산책을 즐기고 왔다.
동네 공원 산책은 종종 해보았지만 언덕은 올라보지 않았다. 하지만 올라가 보니 동네 주민들이 한 분씩 천천히 걷는 산책길이었다. 이렇게 오래 살면서도 몰랐던 길을 반려견의 지휘 덕분에 알게 되었다.
산책대장 반려견과 산다는 건, 일상이 여행이 된다. 매일 동네 여기저기 새로운 곳을 탐험하게 되고, 사람들이 모여있는 장소와 플래카드로 통해 새로 생긴 가게나 지역 이슈도 알게 된다. 동네에 살아도 옆에 뭐가 있는지를 모르고 살고 있다는 것을 산책으로 또 깨닫게 된다.
나는 태생적으로 걱정과 불안이 많다. 작은 스트레스에도 한참을 요동치는 마음을 부여잡고 있다. 그런 정서불안을 가진 나에게 반려견들은 스승이고, 주치의였다. 걷다 보면 멍해지다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최근에 강하게 짓눌렀던 생각들도 뭉게구름처럼 뭉쳤다가 흘려보내곤 한다.
코로나 암흑기 삼 년 동안 나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코로나라는 바이러스에 대한 민감도가 주변보다 높았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되도록 가지 않았다. 과거, 나라는 사람은 어떤 모임이나 회식에서도 빠지지 않는 프로참석러였었다.
프로참석러는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 지방과 서울을 오고 가는 피곤함'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마스크를 벗는 시대가 왔는데도 나는 전처럼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어쩌다 참석한 모임,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너무나 반가우면서도, 대화가 예전만큼 재밌지 않았다. 다른 참석자들처럼 기혼이 된 것도 아니고, 회사가 바뀐 것도 아니었다. 나라는 사람은 냉동인간처럼 삼 년 전과 동일한 조건이었는데, 나는 뭔가 달라졌다.
도대체 코로나 시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취미가 좀 더 많아져서였을까? 오랜 친구, 가까웠던 지인과도 '손절'이라는 상황으로 너무나 가벼운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음에도 많이 외롭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프로참석러였던 과거가 훨씬 더 외로웠다. 어딘지모를 허탈함이 가득했다. 누군가는 여러 모임에서 역할을 맡고, 떠들썩한 자리에도 자주 참석하는 나를 외향인으로도 알기도 했다. 실상은 반대였다. 거기다 모임에 빠지기라도 하면 사람들과 멀어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존재했다. 워낙 내 마음보다 사람들과의 약속이 먼저였던지라 '어떤 의무감'도 강했다. 내가 빠진다고 해서 모임이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삼 년간 '프로참석러'의 무거운 갑옷을 벗어던지고 살았다. 세상 후련하기도 했고, 가끔은 심심하기도 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던데, 나 역시 '심심한 세상'에 금방 적응했다. 남은 일과에 인강도 결제하고, 학원도 다녀보고, 요리도 배우고, 산책도 해보고... 혼자서 노는 방법을 마흔 살 가까이 돼서 터득하게 됐다.
'사람들과 너무 동떨어져서 이래도 되나?'라는 생각도 들었고, 아빠가 좋아하던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그램 주인공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자연에 들어가신 분 중에는 '인간관계에서 배신 또는 사업의 실패'로 산에 들어오신 분들이 많았다.
말로는 코로나 핑계를 댔지만 나 역시 '인간관계의 배신감과 스스로 느끼는 자포자기의 마음'이 사람들과의 만남을 주저하게 했다. 물론 생계를 위해 회사는 다니지만, 사적인 자리 나 회식과 같은 저녁 모임에는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
삼 년간 나는 오랜 시간 숨겨놓았던 나의 내향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리고 당당히 'I'로 시작하는 MBTI를 밝히면서 그게 나라고 말했다.
그럼 나는 전보다 행복한가? 전보다 단단한 혼자가 돼서 좋으면서도 사람들과의 끈끈한 모임을 갈망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원하는 곳을 선택해서 가고 싶다는 마음과 함께 토요일은 아카데미에 간다.
창작 클래스다 보니, 그림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몇몇 작가의 작품 소개와 책을 읽고, 하고 싶은 그림을 그린다. 그런 무형식 속에서 형식이 생겨났다. 여섯 명의 수강생은 아무도 신상 명세에 대해서 묻지 않는다. 그림을 이야기하고, 갖고 온 물감과 도구도 공유하고, 다녀온 갤러리 이야기를 나눈다.
어떤 날은 간식을 공유하지만 그 어떤 날도 부담스럽거나 너무 가깝지 않았다. 신기하고 새로운 모임이었다. 그래서인지 토요일을 기다린다. 그림도, 사람도 기대된다. 가깝지 않아도 따뜻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나 역시 나라는 사람을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전과는 다르게 살고 있다. 지금의 길이 어떤 방향으로 나를 데려다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