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느림보

조용하고 서늘한 따돌림

by 그럼에도

한 때 '연극 아카데미'에 다닌 적이 있다. 이름처럼 전문적인 클래스는 아니었고, 취미로 하는 '연극 대본 리딩과 발성 수업'을 주로 하는 수업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씩 진행되는 수업에 참여하기까지 많은 용기와 고민이 필요했다. 평소 궁금하기도 했던 세계지만 막상 참여하려고 보니, 여러 가지 고민과 고민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우선 나라는 사람은 흔히 '끼'라고 말하는 타고난 재능은 전혀 없으며, 매우 내향적인 사람이다. 거기다 무대 공포증이라는 지병까지 갖고 있으니, 더 자신이 없었다. 직업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돈 내고 다니는 취미 수업인데도 이직하는 것처럼 오래오래 고민했다.


그렇게 고민고민하다가 수강 신청 마지막 날에 신청과 결제를 완료하고 첫 수업에 참가했던 날이었다. 대부분의 수강생은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람들이었고, 대부분 여자였다. 어색한 공기와 낯선 분위기에 동그란 눈을 하고 있는 나와는 정반대로 차분해 보였다.


첫 수업에서부터 대본 리딩 그리고 바로 '배역을 얻기 위한 경쟁'이 있었다. 나는 여기에서도 머뭇머뭇거리다가 입도 몇 번 뻥긋 못하고 수업이 끝나버렸다.


어색하고 낯선 분위기, 배역 경쟁에서 완전히 밀린 나, 거기다 단체로 방음 공간에서 연습하다가 코로나에 감염되면 어쩌나 하는 새로운 걱정까지... 오랜 고민 후에 도착한 첫 수업을 끝으로 수강을 취소 하였다.




다시 삼 개월이 흘렀다. 연극을 배울 기회가 좀처럼 없었는데, 기회가 막상 다가왔는데 도망친 내가 한심스럽고 또 부끄러웠다. 다음 수강 신청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서 이번에는 수강기간 첫날에 예약과 결제를 진행했다.


그렇게 나의 연극 도전은 시작되었다. 전부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삼 개월 전에 봤던 멤버들이 대부분 재수강을 하고 있었다. 회사로 치면 다들 경력자들, 나는 신입사원 느낌이었다.


수업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건조하고, 사무적으로, 격한 대사에는 열정적인 분위기로 선생님은 수업을 진행하셨다. 보통 '연극반'이라는 단어가 주는 끈끈함이나 재미는 드라마에서나 존재하는 걸까?


나의 고정관념과는 너무나 다른 건조하고 낯선 수업이었다. 수업이 끝났다. 나와는 반대로 편안해 보이는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경력자(?)들인 기존 수강생들에게게 말을 걸었다. 다들 미소를 지었다. 입꼬리만 올라가는 어색한 목소리와 함께.


대답인 듯, 대답 아닌 듯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다들 발걸음을 빠르게 바꿨다. 그리고 곧 사라졌다. 지하철을 타는 나와는 반대로 모두 버스를 타거나 자차를 이용한다고 했다. 궁금함은 많았지만 뭐 그런가 보다 했다.


한 학기, 두 학기를 거쳐서 알게 된 것은 그것이 그들 나름의 텃세이며, 나에게는 '은근한 따돌림'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따돌림의 이유가 수강 기간의 차이인지 나이 차이가 그런 것인지 아니면 서울말을 쓴다는 것이 이질감을 주었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다.


세 번째 학기에는 한 명을 빼고 '오래된 수강생'들이 모두 그만두었고, 어쩌다 내가 '오랜 수강생'으로 변신했으니까. 아쉽게도 나 역시 발령으로 마지막 학기가 되었다.


나이로 구분한다는 것은 꽤 싫어하지만 나이별로 텃세 부리는 방법은 확연한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회사 생활도 포함해서 말하자면, '30대 중반 이상의 텃세'는 다르다.


30대 중반 이상은 '어떤 구실을 핑계로 말과 확실한 행동으로 텃세를 부린다'


20대와 30대 초반의 사람들은 ' 미소를 보이지만 말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 달랐다. 어떤 말이나 반응이 없으니 이것이 따돌림인지 아니면 내가 잘못 물어본 것인지 헷갈렸다. 뭔가 기분은 나쁜 데 딱 집어서 말할 수 없었다. 한 마디로 '묘한 기분', SNL에 나오는 주현영이나 맑은 눈의 광인인 김아영과 대화를 하는 느낌이었다.

알 수 없는 마음의 무게, 소외감


회사에서도 연극 수업에서도 비슷한 반응과 텐션이었다. 뭐라고 말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 그저 기분 나쁜 것은 '내가 예민한 건가'라는 의문과 궁금증만 남겼다. 회사에서는 연극반처럼 대놓고 말을 하지 않는 그런 일은 없었다.


그저 오묘한 느낌, 조용한 서늘함인지 어색함이 감돌았다. 이건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의 문제일까? 아니면 내가 그들에게 잘 호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일까?


여하튼 그런 마음이 들 때면 나는 나에게 속삭인다. 같이 근무하는 사람끼리 친해지려 하지 말고, 잘 지내려고 하자고. 친해지고 싶다는 건 나의 과욕이라고. 그렇게 말해준다. 정말 그들이 원할 때 다가서는 게 맞다고, 나이 차이가 한 바퀴를 넘는 사람의 다가섬이 너무나 불편할 거라고. 스스로에게 대놓고 말해준다.


언제나 무리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 외로움이 있다. 용기가 필요하다.


수업을 처음 수강하러 가던 발걸음에도 용기가 필요했고, 텃세와 조용한 따돌림에도 '그러거나 말거나 잘 지낼 용기'가 필요하다.


유리멘털인 나에게 연극 수업은 '발성'을 얻지 못하고, '작은 용기'를 얻고 떠나게 해 주었다. 이젠 회사에서만 용기를 내면 된다. 매일매일 출근하는 곳인데, 십 년 넘게 일요일 밤은 마음을 다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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