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비가 오고, 나는 '부모님 집 누수'에 관해서 보험사를 대리하는 손해사정인과 전화로 합의를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잘못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자동차 사고처럼 나에게도 과실 비율이 나온다고 말했다. 100%를 이기는 게임은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며 과실 비율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번에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누수 관련 보험을 갖고 있어도 '자기 부담금 50만 원'이라는 규정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평소에 매달 보험금을 넣어도 자기 부담금이 있는데, 내 보험도 아닌 가구회사의 보험인데 나의 부담금이 없을 리가 ㅠㅠ
이렇게 두부멘털의 내가 '마음의 맷집'을 세게 키우고 있다.
그리고 아래층에 문자를 보냈다. 언제쯤 복구공사를 원하시는지 의향을 물었다. 바로 누수로 얼룩진 사진을 보내고, 바로 전화를 거셨다.
전화를 받으려는 찰나 끊겼고, 바로 전화를 드렸다.
"사진 봤어요? 아니, 왜 리모델링을 해갖고 이렇게 만들어요."
라고 말하며, 신경질 섞인 목소리로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선 들어주었고, 한 달간 물을 쓰지 않았으니, 추가 누수가 아닌 기존 물 떨어진 흔적이 시간이 지나면서 색이 진해진 것이라고 AI음성처럼 차분하고 건조하게 답했다.
그러자 목소리 톤을 내리더니, 대뜸 어느 인테리어 업체가 복구를 하냐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물었다. 이미 인테리어 업체도, 나도 같이 얼굴 보았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억지를 부리기 시작한 것 같다.
지난달 18일 아래층에 누수 이야기를 듣고, 19일 아침 10시에 누수 전문가, 나, 가구업체, 관리사무소 직원까지 모두 총출동했다. 누수 신고를 받은 지 16시간 만에 원인을 찾았고, 20시간 만에 완전히 문제 부분을 철거했다.
놀라고 당황한 아래층 이웃은 당황했지만 본인이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부분의 인테리어를 새로 해준다는 이야기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사실 아래층의 천장 공사만 해주면 되는 것이지만, 아래층의 말도 안 되는 바닥재 요구까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들어주었다.
이미 두 번째 리모델링이며 오래된 집에 정말 오래 살아본 사람으로서 알고 있다. 오래돼서 낡은 바닥재로 휜 것을, 이번 누수로 바닥이 파였다면서 억지를 쓴다는 것을. 리모델링 공사로 한 달을 시끄러웠을 아래층에게 선물처럼 바닥재를 선물한 것이다.
얼마 전 보험사 대리인과 함께 아래층을 방문했다. 이번에는 안마의자의 교체를 요구했다. 물이 떨어진 부분에 있지도 않았던 안마의자까지... 이젠 이 상황을 즐기고 이용하려는 '교활함'이 보였다. 어이없어하는 나를 뒤로하고, 손해사정인은 '물로 인한 것인지 입증된다면, 감가상각비'로 처리해 주겠다고 말했었다.
다음 요구가 이어졌다. 천장에 물이 닿았다면 '싱크대'에 물이 닿았을 수도 있으니 싱크대도 이번 기회에 교체해 달라는 요구를 했다. 이번 기회에 거실 천장, 바닥, 싱크대, 안마의자까지 풀 인테리어를 하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세웠다니.
눈빛이 당황한 피해자라기보다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고, 이번 기회에 한몫을 챙겨야겠다고 벼르는 독한 여자가 서 있었다.
6개월 전에 나 역시 위층 누수의 피해자였다. 지금의 아래층과 내가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스스로 누수의 원인과 대안, 주택관리법 조항, 대응 방안을 찾아서 동분서주하고, 가끔은 울었다는 것이다.
위층에서 누수가 발견되었지만 위층은 세입자가 살고 있었고, 물 사용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지속적으로 나오는 누수를 매일 시간대별로 확인하려고 천장에 뚜껑까지 달아놓았었다. 그렇게 피해자이면서, 해결사로 활동했고 어렵게 보상을 받았다.
이런 나의 눈물과 고난으로 인해서 부모님 집 아래층 누수에 깊이 공감하고 빠른 결정과 철거를 진행한 것이었다. 피해보다 더 큰 복구를 약속했고, 아래층 역시 나의 신속함에 감사함을 문자로 보냈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고 배보다 더 큰 배꼽처럼 계속 큰 것을 요구했다. 아래층과 친하지는 않아도 인사하는 사이였고, 얼마 전 리모델링이 끝났을 때는 집 구경을 와서는 부러워했다는 이야기를 아빠를 통해서 들었었다.
지나친 호의가 나를 호구로 만든 것일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공짜를 좋아하고 즐기는 인간의 악한 본성이 나타난 걸까?
이번 사건과 지난 일들은 나에게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파노라마처럼 공부하는 기회를 주었다. 이래서 가해자들이 처음에 강하게 나오는 걸까? 처음에 누수로 인한 피해만 복구한다고 했다면 이렇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요구를 막을 수 있었을까?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는 없지만 이번 일로 '손해사정인'이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고, 역시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는 평범한 진리도 깊이 느끼게 되었다.
일련의 사건들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져다줄까? 성공과 실패의 기록이 켜켜이 쌓여가는 나, 누수가 끝나면 이젠 내 일상에 에너지를 집중하고 싶다.
체력이 약해지니, 정신력이 서 있지를 못하고 있다. 운동할 시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