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불안함이 감돌았다.
오늘이 그날이었다. 분명 한 달 전쯤에 티 나게 전화를 중간에 끊어버렸는데... 이제는 다시 전화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나의 예감은 한 달 만에 끝나버렸다.
눈치는 빠르지만 언제나 타인을 무시하고, 본인의 감정과 생각만 우선인 사람이었다. 오늘도 전화가 왔다. 바로 전화를 받지 않자 메시지를 남겼다.
나는 C의 전화벨이 울리자마자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또 '막말에 막말'을 듣기 두려워하는 신입사원처럼 심장이 뛴다. C는 한 번 물면 떨어지지 않는 무서운 기질이 있다. 다른 이들도 쉽게 받아주지 않으니, 이번에도 나를 목표로 삼았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다시 전화를 받게 된 건, 앞에 누군가가 있어서였다. 최대한 빠르게, 최대한 간결하게 끊는 게 목표였다. 그런데 그런 나의 마음을 꿰뚫어버린 C였다. 다음에 통화하자고 빠르게 정리하는 나에게 C는 쏘아붙였다.
"바쁘다면서 연락 안 하실 거잖아요."
정곡을 찌른 말에 얼어버렸다. 이렇게 두부멘털의 나는 C에게 끌려다녔고, 겨우 전화를 끊었다. C는 나와 친해지려고 연락한 것은 아니었다. 본인이 원하는 정보가 있었고, 본인 말로는 내가 딱 잘 알만한 사람이고, 나 이외에는 연락할 만한 곳이 없다, 본인의 상황이 얼마나 답답한 지 잘 알지 않느냐며 하소연을 시작했다. 또 공감을 요구했다.
심약하고, 쉽게 공감하는 나는 C에게 정말 쉬운 상대였다.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깜빡 공감할 뻔했다. '이로운 사기'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김동욱의 최대 약점이 '지나친 과공감'인 것처럼 나 역시 누군가에게 쉽게 공감한다는 것이 이 문제의 원인이었다.
나도 드라마 주인공처럼 정신과에 다니면서 적당한 상담이 필요한 환자라는 것을 절감하면서도 C의 언어를 들어버렸다.
정보를 궁금해한다면서도, 중간중간 따지고, 진짜가 맞는지를 다시 물었다. 어차피 믿지도 않을 거면서 왜 전화해서 사람을 이렇게 피곤하게 만들까?
C는 언어 문제로 여려 사람들이 피해 다니는 유명인이다. C의 대화와 질문은 한 때 유행했던 '압박면접'과 닮아있었다. 처음엔 공감하듯 말하다가 상대가 빈 틈을 보이면,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가는 화법. 저런 화법은 어디에서 배웠을까? 어떤 인생을 살면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
심리학책에 나온 전형적인 '나르시시스트'인 C는 오늘도 잠깐의 대화에서 미친 야생마처럼 질주했다. 오늘 야생마는 본인도 과하다 싶었는지 마무리는 내가 좋아하는 반려견 이야기로 급 마무리했다.
나는 십 분이 넘는 대화에 기절할 것만 같았다. 감기 몸살로 처진 몸을 진통제를 먹으면서 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그렇게 카페인과 진통제 기운으로 서 있는 나에게 마지막 화살을 쏜 C였다.
C는 업무 상 볼 일이 있는 사람이기에, 멀리 하고 싶어도 거절이 어려웠다. 물론 이건 마음 약한 나의 변명이다.
집에 돌아와서 내가 왜 C 앞에서 이렇게 작아지는 걸까를 생각했다. 그건 C의 야생마 같은 질주 화법이 아니었다. C는 사람에 대해서 나이, 신상, 성향, 단점 등등의 정보를 라벨링 해서 마음속 깊이 새기고, 여기저기에 퍼뜨리는 사람이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C의 입에 내 이름이 오르내리는 게 싫어서 적당히 상대해 줬다는 게 진짜 내 마음이었던 것이다. 사회생활이라는 이름은 '정신 승리'라는 단어, 즉 자기 합리화에 불과했다.
이렇게 솔직히 내 마음을 고백하고, 정리해 보니 더는 두고 볼 필요가 없었다. 이제는 C의 전화는 수신거부, C와는 메시지로만 소통하는 온라인 사회생활로 명명할 예정이다. 누구나 아는 정보라 할지라도 그 시작이 내가 될 수는 없다.
막 나가는 야생마에게 먹이를 준다는 건,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말이다. 마흔에 가까운 야생마, 본인의 입으로 없던 문제를 만들어가는 사람에게 배려란 사치였다.
나는 허황된 배려, 의미 없는 시간, 후회 가득한 마음만을 남기고 오프라인 손절의 기록을 써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