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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Jul 17. 2023

거절 그리고 자유

 역사책에서 말했다. 자유를 얻는 건, 투쟁과 쟁취의 결과라고. 그건 누군가의 인생도 그렇다.


지금의 내가, 내 마음에 괜찮은 내가 되기까지.


오랜 기간, 내가 불운했던 시기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건 거절을 제때 못하다가… 결국 모든 일도 책임도 나에게 손해배상처럼 청구되었다.


 지금은 나이도 꽤 많아졌고, 연차도 꽤 높아졌음에도 가끔 거절이 필요한 순간을 경험하곤 한다. 요새 나는 사람들의 사이에 '좋은 사람, 일 욕심 많은 사람'의 이미지와 평판을 고이 접어두고, 조금씩 거절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오늘 나는 한 건의 엄청난 거절을 했다. 이번에는 단순히 일을 적게 하고 많이 하고의 개념이 아니었다. 비용을 쓰고, 법적 책임까지 걸려 있는 일이었다.


 시작은 너무나 단순했다. 업무 연락이 왔다. 웃으면서 "OO님~~"이라고 밝게 시작하신 분은 내게 간단한 심부름 같은 도움을 요청했다. 특별히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데... 몇 시간 후에 '뭔가 세부적인 내용'의 메시지가 하나 더 왔다. 그리고 오후에 통화할 때쯤에 진짜 본인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본인이 앞장서서 일은 벌여놓았고, '서류는 내가 작성'하라는 것이었다. 물론 내가 거절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이유를 말하면서.


 간단한 도움 요청이라니, 실제로는 '내가 내 손으로 모든 것을 덮어쓰는 구조'를 만든 것이었다. 그것도 나에게 사전에 한마디 말도 없이. 오후에 나는 '폭발 직전의 화기도구'처럼 아주 위험한 정신 상태였다.


 다행스럽게도 따뜻한 선배의 말에 집 나간 정신줄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할 수 없음을 바로 알렸다. 하지만 상대는 아주 노련하게, 아주 기술적으로 답변했다.


 "아직 시간이 많으니, 천천히 생각해 봐요"


 능구렁이 같은 화법으로 어설프게 나의 거절을 '거부'했다. 나는 기필코 조용히 넘어가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고, 능구렁이에게 우리나라 K 양궁 대표 선수처럼 '목표를 정확히 설정'하고 화살을 날리기로 했다.


 정곡을 찌르는 메시지를 보내고, 위에다 이 사실을 보고하고... 물론 윗선에서는 조용히 내가 하길 원하겠지만... '좋은 사람' 되려다 '호구'로 돌변하는 이 사태를 막아야만 한다.


 '좋다, 나쁘다'를 표현하는 사람에 대한 평가는 언제나 호불호가 갈린다. 소수의 사람에게 지지를 받을 것이고, 다수의 사람에게 '불편한고 못마땅한 존재'가 될 것이다. 대신 '가스라이팅'과 '서류로 인한 책임 소재'에서 자유를 얻을 것이다.


 자유에는 대가가 따른다. 그것이 가시밭길일지라도, 당장은 힘들겠지만 오랜 시간 한숨 쉬거나 후회할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지금의 내가 참 마음에 든다.

‘꽃이 필거야’ 그림책 따라 그리기


 나는 돌아가더라도 내가 걷고 싶은 길을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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