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큰 개를 키우는 여자가 산데요. 이것 보세요. 청소하는데 복도에 털이 있잖아요."
현관문을 나오자마자 마주친 건물 청소를 하시는 여사님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자마자 여사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개털'에 함께 분노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나는 여사님이 원하는 말과 정반대로 대답했다.
"그 여자가 저예요. 죄송해요. 지금 털갈이 시기라서 털이 밖에도 나왔네요. 청소를 더 신경 써서 할게요."라며.
당황한 여사님은 그저 웃으셨다. 나도 목례를 하고 나왔다. 둘째 하늘이가 털갈이를 시작했다. 오늘은 출근 전에 대청소를 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대청소를 하는 나처럼 가끔씩 하는 ‘복도 청소의 날’이 딱 겹쳤던 모양이다.
그렇게 나는 건물에 흔적을 남긴 민폐녀로 오전을 시작했다.
뜨거운 태양을 잠깐만 마주쳐도 '숨이 막힐 것 같은 압력'을 마주친다. 실외에 주차한 차에 타자마자 핸드폰을 꺼내서 메시지를 확인했다. 갑자기 차에 '퍽'하는 소리가 들렸다.
옆에 주차한 검은색 팰리세이드 뒷문을 한 남자가 있는 힘껏 뒤로 젖혀서 차문을 닫았다. 그 충격에 전진주차했던 내 차의 '사이드미러'가 닿았던 것이었다. 바로 밖으로 나왔다.
사이드미러에 옆차의 검은색이 묻어 있었다. 바로 큰 소리를 내는 나를 옆차에 탄 네 명의 사람 모두 신경 쓰지 않았다. 아들로 보이는 남자가 트렁크에서 물건을 꺼내다가 힐끗 쳐다본 게 전부였다.
황당했다. 나는 가장자리 끝에 공간이 많아서 차를 바짝 오른쪽에 붙인 상태였다. 주차 경계선이 거의 반쯤 남아 있었다. 아무리 펠리세이드가 공간을 차지해도 문콕이 불가능할 만큼 공간이 넓었다. 마트 쇼핑카트가 오고 갈 공간에서, 옆 차는 풀스윙으로 방망이를 휘두르는 야구선수처럼 차문을 풀스윙으로 세게 친 것이었다.
사이드미러를 내리친 그 자리에 나는 앉아 있었다. 바로 옆차의 번호판을 사진 찍었다. 그제야 반응이 없던 차에서 남자의 부인으로 보이는 50대의 여자분이 나왔다.
대뜸 "무슨 일이에요?"라며 차 문을 열었고, 나와서 미안한다는 말을 했다. 그런데 얼굴 표정은 비꼬는 듯한 말투와 얼굴이었다. 사이드미러에 검은색이 묻었다는 말을 하자 대뜸 말했다. "그럼 보험 처리할까요?"
일 년 밖에 안된 새 차에 검은색이 묻은 것은 기분 나쁜 일이었다. 오후에 바로 일을 봐야 하는데, 보험사를 부르고 기다릴 생각에 아찔했다. 차가 찍히지는 않았기에 기분 나쁘지만 '보험은 됐다'라고 말했다.
대신 부인이 아닌 여태 차에서 숨은 듯이 앉아있는 당사자가 직접 사과하라고 말했다. 그제야 차 유리가 반쯤 열렸다. 뒷모습과 달리 앞모습은 '은퇴한 조폭'이 아닐까 싶은 외모의 아저씨가 노려보고 있었다. 옆에 앉은 아들이 '아빠가 참아요~'라는 말을 했다.
참는 건 난데, 이게 무슨 상황일까?
아무리 봐도 드라마에 출연하는 '조폭 두목' 얼굴을 한 아저씨는 어쩔 수 없이 말했다. '미안해요'라고. 뭔가 그 목소리는 복화술을 하는 것처럼 들릴까 말까 했다.
그렇게 내 차와 옆차는 주차장을 나왔다. 오늘 나는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쳤고, 누군가의 민폐를 참아주는 뜨거운 하루를 보냈다.
다시는 이 주차장에 오지 않겠다는 마음과 함께 '불타는 마음'을 탄산수로 달래며 할 일을 마쳤다. 민폐와 민폐 사이. 잘못한 일이 있다면 정중하게 사과하고 반성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겠다는 마음은 보너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