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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Oct 05. 2023

임차권 등기를 셀프로 해봅니다

10월의 어느 슬픈 날

 소송으로 모든 게 다 끝난 줄 알고, 오후 여유로웠다. 


 그런데 그런데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비밀번호를 알려달라는 이야기였다. 계약기간이 지나고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못 받아도 계속 부동산에 집을 보여줘야 할까? 당연히 보여줘야 한다는 게 나의 선택이지만 지금 상황은 미묘했다.


 집주인이 계속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요구하는 상황이라서.


 오후 5시가 다 되어서 법률구조공단에 전화를 해보고 '앗차'하는 한숨과 탄식이 나왔다. 빈 집에 짐 일부를 두고 왔는데, 이는 법적으로 '점유'에 해당한다. 점유가 지속되면 임대차계약이 끝나도 월세는 계속 내야 한다는 것이다.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것과는 별개로.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 '임차권등기'를 완료하고 집을 비워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내가 놓친 것이었다. 어제 건너 건너 아는 변호사분께 통화를 했던 것과는 달랐다.


 알고 보니, 소개해준 분이 월세를 '전세'로 잘못 말하는 바람에 생긴 일이었다. 전자소송 한 건만 하면 된 다했던 말은 틀린 말이었다. 난 전세가 아니다. 월세는 소송이 지속되어도 납부해야 한다.


 여섯 시를 목표로 '임차권등기' 신청 서류를 작성하려다 멘붕에 빠졌다. 확정일자가 전입신고 날짜와 달라서 국토교통부 '부동산거래관리시스템'에 들어가게 되었다.(이건 동사무소에 전화해서 발견)


 부동산거래시스템 화면 일부가 열리지 않아서 멘붕에 빠졌고, 사이트 콜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이 사이트는 '에지'에서만 활성화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문제를 해결했다.


 이번엔 전입 신고 날짜! 분명 이사 날짜에 했다고 생각했는데, 왠지 아닐까 봐 불안했다. 정부 24에 '초본'을 떼보면 전입 신고 날짜는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다음 관문이 더 어마어마했다. 등록면허세, 등기촉탁수수료, 부동산 등기사항 전부증명서가 필요했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 어디서 발급을 받나?


 이미 5시 50분이었다. 오늘 접수는 어려울려나? 지금 이 시간 반쯤 마친 서류를 뒤로 하고 브런치에 들어왔다. 가슴에 화가 많아서. 화 내기에는 브런치가 딱이라서!


 나는 꿀맛 같은 휴가일 오후, 세상 처음 보는 사이트 여기저기 회원 가입을 하고, 유튜브를 뒤지고,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다. 


 이렇게 법률의 세계에 가까워지나?


 결국은 손해 보는 내가 집주인이 만나자는 말부터 온갖 변덕을 다 감수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조언을 또 들었다. 그건 '변호사'였다.


 변호사의 의견 일부와 법률구조공단의 의견 일부는 달랐지만 나는 둘 다에 해당하는 요건을 채우기 위해 동분서주 뛰었다.


 지금 나이에도 이렇게 힘든데, 사회 초년생들이 이런 일들을 겪으면 멘붕이라는 단어도 부족하겠지. 누군가의 도움 대신 스스로  찾아가면서 길을 검색하고 있다.


 집주인에게는 주말에 만나자고 연락을 했지만 답은 없다.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은 두려움, 그리고 수수료에 돈 펑펑 쓰기, 휴가 날려 버리기 신공을 모두 발휘한 하루였다. 


 이게 액땜이라면 나는 얼마나 성공하려고 이러는 걸까? 어쩌면 힘든 사람에게는 힘든 일이 쉬지 않고 일어나는 걸까?


 고민할 시간도 주지 않고, 사건이 펑펑 터지는 하루하루~


나의 2023년  10월의 어느 바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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