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에 딱 알아보지 못했다. 내가 상상 속에 그렸던 탐정의 외모는 ’ 마동석‘ 느낌의 운동선수였다.
임대인을 만나기 직전, 온 정신을 집중하고자 편의점에서 박카스 두 병을 마신 후였다.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순간에만! 일 년에 한두 번 있는 일이었다.
나에게 박카스란 에너지음료를 마실 때 보다 각성 효과가 더 좋았다. 그렇게 사설탐정인 A분, 집주인(임대인)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A님은 호리호리한 체형에 눈매가 날카로우셨다. 평범한 듯 또 평범하지 않은 눈초리를 갖고 계셨다. 일단 집에 가서 현관문 비밀번호를 바꿀 예정이었다.
그런데 뭔가 잘 안 됐다. 손이 떨린 건지, 마음이 떨린 건지… 결국 A님이 현관 비밀번호 변경을 도와주셨다.
A님에게 현재 상황을 간략히 문자로 보낸 상태였다. 말보다 빠른 글로 ‘임대차계약’이 끝나고도 보증금은 못 받고 대신 협박 문자만 받은 것을 보여 주었다.
A님은 이 정도면 경찰에 신고 가능하다고 했다. 오늘 이야기가 잘되지 않으면 경찰에 형사와 민사로 접수하고, 법원에는 ‘임대차보증금 반환 소’를 제기해야 한다고 하셨다.
어떤 법률전문가도 알려주지 않은 노하우였다. 그렇게 약식 법률 상담과 과외를 받았다. 어제처럼 막무가내로 억지를 부리면 바로 경찰서와 법원으로 달려갈 계획이 세워졌다.
약속 시간 삼십 분 전에 집주인은 갑자기 장소를 바꿨다. 다수가 있는 부동산이 아니라 부산집 안에서 보자는 것이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악마.
단 둘이 있을 때, 악마의 폭언과 억지 퍼레이드를 보일 예정이구나. 오늘 A님이 오지 않았다면, 나는 충격에 눈이 흐려졌겠지.
처음 집주인을 알아보지 못했다. 옆집 할머니 같은 편안한 옷차림이 오늘은 화려했다. 새빨간 립스틱은 입술보다 두껍게 칠했고, 화려한 금 목걸이, 뿌리 볼륨을 있는 힘껏 올려서 미용실에 갓 다녀온 외모였다.
어디서 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았다. 나보다 집주인이 먼저 알아봤다. 혼자 올 줄 알았는데 옆에 있는 남자를 보더니 나를 한참 동안 노려봤다. 나는 중요한 계약이라서 사촌오빠와 함께 왔다고 소개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셋이 함께 올라오는데,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집주인의 당황한 모습이라니!
현관문에 들어서자마자 집주인은 왜 집 안에 cctv를 설치한 거냐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집수리를 위해서 들어와야 하는데, 임차인이 ‘허락 없이 집에 들어오면 경찰에 신고한다’ 고 했다며 따지기 시작했다.
보증금 반환 전, 집 상태를 둘러보기 위한다는 건 역시나 핑계였다. 집은 안 보고, 하고 싶은 말만 시작했다. 탐정 A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옆에서 서 있기만 했다.
잠시 후 “집은 다 둘러보셨나요?”라고 공손하게 A님은 집주인에게 말을 걸었다.
집주인이 갑자기 공손해졌다.
“내도 니만한 아들이 있다. 딸도 있고, 사위도 있다. 이런 말하기 그렇지만 나 돈 많다. OO아파트 상가에 상가 자리 몇 개 있고, 집도 좀 있고, 농협엔 VIP다”
“부동산에서 내 돈 많다는 이야기 못 들었나?”
집주인 말은 돈 많은데 왜 나를 못믿고, 먼저 계약서 반환과 집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냐고 했다.
“니 의심병 있나? 그래 못 믿어서 세상 어떻게 살래?”
그렇게 나를 의심병 환자로 몰아세웠다. 조용히 본론만 말하고 넘어가려던 찰나 집주인은 슬슬 약을 올렸다.
나의 공격이 시작되길 바라는 일진짱 언니처럼!
내가 몇 마디 하자마자 A님이 뒤에서 가방을 눌렀다. 그리고 집주인에게 ‘은행은 언제 갈 건지’ 물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람처럼 집주인은 집을 나갔다.